그래서 외교수사란 말이 있는 것이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표현을 거르고 또 거른다.


대외적인 책임은 물론 대내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른다.


특히 절대라 해도 좋을 권위를 가진 독재자에게 자신의 권위를 해칠 수 있는 표현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실무자급도 아닌 정상의 회담은 그 내용이 매우 추상적인 어휘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진짜는 실무자 선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그 두루뭉수리한 수사들 가운데도 진짜가 숨어있기도 한다.


이를테면 완벽한 비핵화, 그리고 무엇보다 4.27 판문점 선언의 계승이다. 


CVID는 결과다. 비핵화를 하다 보니 CVID가 되는 것이다. CVID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자체가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말장난이다. 비핵화라는 자체가 검증과 비가역을 포함하는 것이다.


영구적인 비가역이란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인류의 문명을 석기시대로 돌려도 언젠가는 지금의 문명을 다시 일굴 수 있다.


아예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도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비가역이란 일정 기간 안에 이전의 성과를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을 뜻한다 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말한 20%가 바로 그런 뜻이다. 핵무기의 20%가 아닌 비핵화의 프로세스 가운데 20%를 뜻하는 것이다.


다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해도 주변국가들에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이루는 것은 북한 자신의 의지만이 아닌 주변국들의 의지와 노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손놓고 보고만 있을 리 없으니 그것까지 포함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


그만큼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뜻이다. 손쉽게 협정서의 문장 몇 개로 정의하기는 곤란하다. 


그런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번 합의문의 의미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신뢰하는 것은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체제가 가진 절박함을 신뢰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놓인 환경과 필요와 동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에게는 진실하지 않은 자들마저 진실하게 만들 힘이 있다.


한 걸음을 떼 놓기가 힘들다. 외교의 어려움이다. 남의 나라 정상을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기가 그렇게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단한 이유다. 이 모든 그림을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에서 주도해 만들었다.


모른다면 멍청한 것이고 알면서 무시하면 사악한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다.


위대한 성과다. 그 말이 맞다. 모호한 수사들 가운데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한다.


한반도에 비핵화는 시작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정상의 의지와 확인으로. 위대한 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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