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90년대 어느 드라마였을 것이다. 남자주인공과 가까운 사이였던 여자캐릭터가 라이벌인 다른 남자캐릭터에 강간당하고 그와 결혼하는 내용이 방영된 바 있었다. 비슷한 시기 소설 가운데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유인해서 성폭행하고 임신케 한 뒤 결혼하는 내용이 나온 바 있었다. 원래 당시의 성의식이란 그랬었다. 80년대 초 코미디언 이상해도 그런 식으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바 있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가 싫어한다고 곧이곧대로 들었다가는 오히려 여자에게 욕이나 먹을 것이다. 여자가 싫다는 것은 진짜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여자가 말로 거부했어도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으면 그것은 동의와 같다. 나잇살 먹은 아저씨들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미투에 대해 다수 남성들은 그리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런 식이면 남자들 가운데 미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자기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고백하는 한 마디일 것이다. 다수 남성들이 미투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여자는 그저 한 번 꾹 눌러주면 그만이다. 쌀이 익어 밥이 되었는데 다시 되돌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학가에서도 성폭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함께 술마시고 MT가고 일상적인 대학생활 가운데 여자가 틈을 보이면 그것을 빌미삼아 미처 저항할 여지도 없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는 했었다. 허술하게 당한 여자가 잘못이지 원래 남자는 그런 동물이다. 그러면서 여자가 남자를 경계하면 남혐이네 뭐네 아예 요즘은 메갈이라며 덧씌우는 건 얼마나 비열한 수작인가. 그리고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서로 좋아서 그런 것이겠거니.


한 사람은 좋아서 성관계를 한 것이라 말한다. 한 사람은 그것이 성폭행이었다 주장한다.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최소한 80년대 90년대 대한민국 남성들의 성의식에 비추어 어쩌면 그는 그것이 성폭행인줄도 모르고 좋아서 그런다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집단 안에서 항상 얼굴을 마주하던 선배가 어느날 돌변해서 자신을 위협할 때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혹은 가족으로부터, 혹은 선생님으로부터, 혹은 친하던 직장동료나 상사로부터 갑작스럽게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을 때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으니.


어째서 성폭행에 있어서 협박과 폭행과 같은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지 않았어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었으면 성폭행이라는 법리가 보편적으로 선진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반항해야 할지 판단하기도 전에 이루어지는 성폭력이 현실에서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원래 성폭행이라는 것 자체가 충동보다는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상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거부와 저항을 무력화시켜 안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채울 것인가. 그런데도 단지 성범죄의 동기를 남성의 본능과 충동으로만 이해한다.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가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남성은 성범죄자가 아니다. 아니 아예 남성이 하는 행위 자체가 성범죄가 아니다. 여성이 오버하는 것이다. 굳이 다수 남성들이 배우 오달수의 편에 서려는 이유다. 오달수에게 잘못이 없어야 자기들도 역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달수가 그런 행동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오달수가 한 행동들이 성폭행도 성추행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미투와 관련해서 다수 남성들의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봉주의 경우도 그리 앞장서서 익명의 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가하기도 했었다. 익명인데도 그런 단정적인 인신공격들이 퍼부어졌는데 실명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모욕과 수모를 끝까지 견딜 자신이 없으면 그 입 다물고 조용히 침묵하라. 다수 남성들이 성범죄에 있어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현실에서 다수 성범죄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고죄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터넷등을 통해 남성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무고죄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폭행이었는가의 여부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그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오래도록 고통을 겪어 왔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그는 유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그같은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전제에서다. 당사자가 성폭행이라는데 나는 아니니까 아무 잘못이 없다. 내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니 전혀 잘못이 없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랄까.


내가 남자라서 아는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식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서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실제 자랑처럼 늘어놓는 무용담들을 통해서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것이 있다. 그래서 펜스룰도 나오는 것이다.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억울하게 무고하고 있다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해자들조차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남자라는 동물들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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