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길게 쓸 것도 없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정의한 바 있었다. 사회상부구조는 사회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하부구조가 바로 경제다. 생산양식에 의해 그 시대의 제도, 문화, 종교, 사상, 이념, 체제 등 모든 것이 결정된다. 원래 정치라는 것은 분배를 위한 기구였다.


다른 많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반도의 생산양식은 근대 이전까지 농업이었다. 소유한 토지와 노동력에 비례하여 사회적, 정치적 힘을 가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토지와 노동력의 소유자는 역사상 거의 교체되지 않았다.


아니, 교체된 적이 있었다.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는 대개 두 부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대토지를 소유한 권문세족의 후예였으며, 다른 하나는 중소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향리출신들이었다. 전자를 대표하는 이들이 이색, 조준, 권근, 후자를 대표하는 이들이 정도전, 정몽주다. 원래는 정도전이나 정몽주 같은 향리 출신들이 당당한 문벌귀족의 자제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들의 관직이 때로는 문벌귀족 출신의 사대부보다 더 높은 경우도 있었다. 그를 위해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파 사대부들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려 한 것이었다.


고려의 토지제도를 개혁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바로 그같은 지방의 중소지주인 향리출신의 사대부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이미 강산을 경계로 할 만큼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권문세족의 장원들을 혁파하여 그 토지를 다시 합리적으로 재분배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후기 다시 대토지를 소유한 소수 양반들에 대해 중소규모의 지주인 지방의 양반들이 반발하며 사회의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서학에 흥미를 가지거나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에 동조했던 향반이나 잔반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이었다. 근본적인 변화까지는 무리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사회가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역시 이민족의 침입으로 아예 토지소유 자체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전통적으로 대토지를 소유한 소수 신사층들이 향촌사회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들이 곧 사대부였고, 관리였으며 명청시대의 지배신분들이었다. 영국의 젠트리나 독일의 융커들 또한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중소지주들이었다. 젠트리와 융커를 대신할 부르주아는 산업혁명 이후에나 등장하게 된다.


누구나 기술과 능력과 노력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돈만 있다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돈이 곧 신분이며 지위였다. 그나마 초기자본주의는 얼마간 초기투자가 필요했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단지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정보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출신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고 운이고 노력이다. 사회는 역동적으로 요동친다.


당장 이웃나라인 중국만 하더라도 신흥부자가 거의 상당하다. 일본 역시 매년 새롭게 자기의 운과 능력만으로 돈을 번 젊은 부호들이 탄생한다. 마치 기업이 토지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토지처럼 정해진 기업들만이 생산을 담당하며 그 기업을 소유한 경영자들이 그를 독점하여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신흥부자가 나타나지 않은지가 오래다. it쪽에서도 더이상 눈에 띌만한 성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강요한다.


이른바 보수가 주장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레토릭의 실체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인 것이다. 경제구조마저 안정시킨다. 변화를 억제한다. 그 결과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해야 할 기업들이 가만히 앉아서 썩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을 중심으로 한 봉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봉건영주들이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경제구조가 변화하면 사회구조 역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를 강제로 억누르려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 조선후기가 그랬다. 새롭게 등장하는 중소지주들을 권력자들이 철저히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었다. 시대는 정체되었고 안에서 무너져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더 많은 토지와, 그리고 생산기술의 발달에 따른 그보다 더 적은 토지와, 그리고 나중에는 토지에 기대지 않는 자본과 지식과 정보의 시대가 열린다. 역사의 흐름속에 먼 동쪽의 변방에서는 혼자서만 거스르고 있지는 않았을까. 오랜 뒤 느끼는 교훈 같은 것이다. 그러다 망했다. 조선은. 그리고 고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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