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1야당의 주지지기반은 호남이었다. 호남에 살고 있거나, 아니면 호남에 연고가 있거나. 그리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는 영남에 기반을 둔 통합민주당의 일부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고 있었다. 당대당통합이었던 1991년의 민주당과는 달리 이번에는 와해된 민주당의 잔여인사 일부가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된 것이었다. 지지층도 흡수되었다. 호남기반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영남이 더해지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1991년의 민주당도 그렇게 내부적인 문제로 결국 와해되고 말았었다. 그나마 나은 점은 최소한 새정치국민회의에 이은 새천년민주당에 있어 비호남은 철저히 비주류에 머물고 있었다. 2004년의 열린우리당 분당도 결국 따지고보면 호남 내부의 분열이었지 비호남이 나서서 주도했다 보기는 어려웠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 - 즉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모두 호남출신으로 김대중에 의해 발탁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호남이 보내는 전폭적인 지지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구정치인들의 모습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호남과 분리되는 비호남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바로 친노의 출현이었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서 기존의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바라던 새로운 지지층이었다. 야권분열의 시작이었다.


2016년 국민의당의 창당은 그같은 1야당 내부에 도사린 모순이 제대로 터져나온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봉합하며 버텨왔던 것이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더이상 참지 못하고 표면으로 드러나고 만 것이었다. 1야당은 원래 호남의 것이었다는 고집이 안철수가 가진 대중적 인기와 결합하며 2004년 열린우리당이 그러했듯 새로운 동력을 만나 균열은 분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단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 2016년 4.13총선의 결과였다. 새롭게 국민의당이라는 자신들만의 정당이 생긴 호남은 민주당을 버렸고 대신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이 민주당을 살려냈다. 주도권의 역전이었다. 이후로도 국민의당이 잘나가서 호남의 민심을 대변할 수 있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아다시피 국민의당은 이후 안철수의 지지율마저 바닥을 치며 더이상 수권정당으로서 확장력을 잃어버렸다. 야권의 중심은 다시 민주당에게로 돌아갔고 어쩔 수 없이 호남의 유권자들로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번에는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이 살려낸 민주당에 호남의 유권자들이 다시 합류하는 모양새다. 그다지 마뜩지 않다.


1987년 양김의 분열 이후 야권에 분열이란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었다. 양김이 분열한 결과가 군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그나마 1987년은 양김을 모두 아우른 민주화진영이 군사독재의 후신들에 비해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990년 김영삼의 투항으로 인한 3당합당은 그같은 힘의 우열마저 역전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야권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정면으로 겨루어서 군사독재의 후신인 보수정당에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1996년 김대중의 대권욕심이 빚어낸 야권파괴공작은 또 한 번 보수정당에 압도적 다수의석을 헌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대중의 야당파괴공작의 피해자이면서도 노무현이 신한국당과 합당에 참여한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과 달리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더라도 다시 한 번 야권이 분열해서는 안된다. 민주화진영이 분열되어서는 안된다. 그같은 절박감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이 김영삼을 찾아갔던 것이나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과정에서 대세를 쫓으려 했던 것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다. 야권은 하나여야 한다.


바로 여기에 박원순과 김부겸, 그리고 모인사가 경선룰과 관련하여 어그로를 놓으며 노리는 그림이 있는 것이다. 즉 민주당의 지지율이 지금 고공행진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지금의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싫지만 국민의당이 지리멸렬한 지금 대안이 없기에 다시 원래의 민주당을 지지하기로 한다. 아니면 아예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거부한 채 외곽에 남아 있는 전통지지자들도 있을 터다. 2016년 총선의 결과에서 보았듯 여전히 친노만큼이나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이들 호남유권자들의 지지를 자기에게로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그 명분으로 야권의 통합을 앞세우려 하는 것이다. 국민의당도 안철수도 다 싫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다시 한 번 분열된 야권을 통합해 보겠다. 다시 원래대로 하나로 되돌려 보겠다. 이번 대선이 아니더라도 멀리 길게 본 전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나 정작 분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은 호남유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996년 총선의 결과로도 나타났듯 호남은 자신들만으로도 어느 정도 일정한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국민의당이 다시 한 번 그것을 확신해줬다. 호남만으로도 일정한 의미있는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비호남의 경우 특히 영남에서는 김영삼이 3당합당을 하며 대부분의 지분을 가져간 탓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들이받아서 무려 수십년만에 이루어낸 것이 지난 총선에서 PK 8석 TK 1석, 무소속과 정의당까지 11석의 의석이었다. 그동안은 김대중이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서 깽판을 놔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만큼 지리멸렬한 상황이었다. 괜히 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박차고 나가 다시 도로민주당으로 돌아가려는 정동영을 따를 것을 유시민에게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호남 없이 열린우리당이 살아날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통합을 앞세운 박원순과 김부겸의 명분이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민주당을 원래의 주인인 호남에 돌려주겠다는 정도이기 쉽다. 친노에게 빼앗긴 민주당을 다시 호남이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통합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민주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문재인과 친문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날서린 말들을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들은 친노와 다르다. 친문과도 다르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이 야권을 다시 통합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다시 통합된 야권을 호남에 돌려줄 수 있다. 그 말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결국 호남인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그들이 말하는 야권의 통합은 친노,친문을 배제한 야권의 통합이다. 그들을 배제하고 다시 원래의 야권으로 되돌리는 복고로서의 통합이다. 지역주의를 깨겠다고 적지에 출마해서 오랜 노력 끝에 당선된 정치인의 선택이라는 점이 그런 점에서 참으로 얄궂다. 권력이란 이렇게도 사람을 유치하게 치사하게 만드는가.


더구나 박원순과 김부겸이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은 호남과 비호남을 나누는 것이 단순히 지역적인 구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주하는 곳이 호남이고 출신지가 호남이어도 호남이라는 정체성만을 앞세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비호남이다. 호남보다는 전체 야권을 보고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을 본다. 그 안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호남에 살면서도 호남에서 벗어난 비호남이며 리버럴일 수 있다. 그렇게 분리하면 호남의 지분은 더 작아진다. 국민의당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모두 돌려받더라도 결국 여전히 소수로서 만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저리 무리수를 던져가며 당과 지지자들과 대립하는 것은 아닐 터다. 처음부터 기초적인 계산이 잘못되었다. 호남에는 호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재인 지지자들이다. 기존의 민주당 당원들은 문재인을 지지하려 모인 사람들이다. 밖에서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에 당적을 두지 않으면서 여전히 야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국민의당까지 끌어들일 수 있으면. 그밖에 비민주당야권지지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면. 그러나 결과는 아다시피. 왜 이토록 반응이 없는가 의아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야권의 지형이 많이 달라져 있다. 지지자들의 성향도 전과 크게 달라졌다. 국민의당이 이들의 요구를 받지 않는 이유다. 국민의당이 나서더라도 민주당을 먹기란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강해진 이유다.


2015년이라면 확실히 통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분열을 두려워한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서로 분열되어 좋아진 점이 있다. 긍정적으로 더 선명해지고 분명해졌다. 그런 현실에 만족하는 유권자들이 많다. 이미 자기가 직접 보고 들으며 확인한 결과에 확신을 가지게 된 유권자도 적지 않다. 지금도 나쁘지 않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너무 멀리까지 왔다. 오판의 이유다. 그들만 과거속에 살아간다. 멀지 않지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