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아예 듣보잡이면 문재인 쯤 되는 거물을 상대로 자기 인지도 올리려는 수작이 제법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문재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그와 같은 수준에서 놀려 하고 있다. 최소한 문재인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비판할 정도의 깜냥은 된다. 문제는 박원순의 급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머리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서울특별시의 시장이다. 그것도 재선시장이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 초 높은 지지율로 야권의 최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인지도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대중이 아직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몰라서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거의 알고 야권의 많은 유권자들이 한 번 쯤 지지를 선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지지가 바닥을 치는 이유,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있기 때문에.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정치철학과 구상을 보여주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장으로서 박원순이 구체적으로 그리는 그림은 무엇인가. 서울특별시를 어떤 식으로 바꾸어가려 하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퀴어축제를 앞두고 종교단체에 굴복하여 소수성애자들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 사람은 대선밖에 없다. 대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더 큰 것을 목표로 삼았어야 한다. 문재인 따위가 아닌 더 큰 것을 목표로 그를 향해 칼을 휘둘렀어야 한다. 벌써 여러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원순 시장은 섣부른 판단으로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대중과 척을 지는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중보다 반 걸음 앞에서 대중을 바르게 이끌겠다는 자신감과 포부를 드러낸다. 박원순이 목표로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을 책임지고 5년 동안, 개헌이 되면 어쩌면 4년 동안 이끌어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오로지 묵묵히 대선만을 바라보고 한 걸음씩 걸음을 떼놓고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바꾸려는가. 지금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인가. 그 답을 듣지 못했으니 지지율이 빠지는 것이다. 열심히 지지하고, 지지하면서 박원순에 대해 알아가고, 그리고 실망해서 돌아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문재인 목을 베어 그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지지해줄까?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이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특별시의 시장으로서 재직하며 실제 실천했던 연장에 있어야 한다. 좋은 정책들도 많았다. 성공도 했지만 실패도 있었다. 그 가운데 과연 이 사회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재명이 어째서 아직도 박원순과 다르게 높은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남시에서 이재명이 보여준 행동들이 대선후보로서 이재명이 추구하는 미래이며 비전이다. 사실 지금도 아주 늦지는 않았다. 다만 그럴 수 있는 무엇이 박원순에게 남아있는가가 문제일 뿐.


한 마디로 급에 맞게 놀라는 말이다. 자기의 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알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가 그냥 대나무쪼가리 남아돌아서 덧붙인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어디 있고 상대가 어디쯤 있는가 알면 그에 맞게 적절한 전략을 만들고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차기를 기약하는 것도 애매해지는 이유다. 처음부터 몰랐던 것보다 알았는데 잊혀진 처지가 더 서러울 수 있다. 어차피 이름이 들려봐야 아, 누구 하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없기에 행동은 무도하다. 가엾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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