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남자이다 보니 주로 남자들 하는 이야기를 주로 듣게 된다. 정말 재미있다.


"그게 왜 성추행이야?"

"그게 왜 성희롱이야?"


심지어,


"자기가 모텔(혹은 여관)까지 따라갔으면서 그걸 왜 성폭행이라 그래?"


샘 오취리가 흑형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했을 때도 비슷한 말들을 한다.


"다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거든?"


그러나 당사자가 듣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받은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성추행인가 성희롱인가를 누구를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성폭행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고 싫다고 했다. 피해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사실 의도하지 않았던 성추행 성희롱이었어도 대부분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 사과하면 상대방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사회생활 하면서 그 정도 이해심도 없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반복해서 성추행, 성희롱을 하고 사과만 하면 끝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대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보이지 않은 경우들일 것이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자기도 좋았지 않은가. 그랬다면 암묵적 동의가 아니겠는가. 심지어 가해자인 남성은 물론 경찰이나 검찰, 법원까지도 그런 편견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완전한 거부여야 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저항을 보였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였다면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의도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거기서 그런 행동을 하고서 이제 와서 왜 그것을 문제삼으려 하는 것인가. 대부분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국 법원에서 성범죄로 유죄판결이 나오기란 매우 어렵다.


하여튼 재미있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몇 십 년을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다 호소하는데도 정작 그것을 보면서 그게 왜 성추행이고 성희롱인가 따져묻고 있다. 그게 어째서 성폭행이냐며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묻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대부분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해자는 고통스럽다는데 그 고통을 전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냥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거부하면 물러나서 바로 사과하면 된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한다. 성적자기결졍권은 내가 아닌 상대에게 귀속된 권리다. 상대가 싫다고 거부하면 나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일 텐데도.


남자들의 바닥을 보는 것 같다. 어떻게든 미투를 흠집내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선량한 동성애자들의 경우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말한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할 때도 선량한 흑인들은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선량한 여성들, 선량한 고발자들, 선량한 피해자들. 그런데 어째서 가해자들에게는 그런 엄격한 선량함을 기대하지 않는 것일까. 가해자의 무고는 혹시 모를 피해를 우려해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피해자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어째서 조금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도 그런 주장들이 합리적이라 남성이라는 성 안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어째서 그런 일들이 그동안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는가. 그럼에도 주위에서 제지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하다못해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마저 없다시피 했었는가. 어째서 지금인가. 처벌도 불가능한 지금에 와서야 겨우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어이없고, 그리고 동정하는 대상마저 다르다. 누가 성대결로 몰고가고 있는가. 웃을 수밖에 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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