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특히 남성들 가운데 미투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혹시라도 안좋은 의도가 섞여들지는 않을까.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더 엄격하게 고발자들을 검증하고 비판해야만 한다.


어쩌면 타당한 우려이기도 하다. 당연히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새삼 이제와서 강조하기에는 원래 우리 사회가 그랬었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주위에 알리기라도 하면 먼저 피해자의 잘못부터 추궁받아야 했다. 혹시라도 피해자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은 아닐까. 피해자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혹은 다른 이유들이 그같은 행동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더 지독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그런 사실을 세상에 알린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성범죄를 고발했을 때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주변인들로부터 항상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아들 장래를 망치려 이런 수작을 꾸민다!"

"먼저 꼬리를 쳐놓고서 돈이나 노리고 이따위 수작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일부 남성들이 하는 이야기 그대로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가해자들에게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피해자들을 더 엄격하게 가혹하게 검증하고 심판해야 한다. 오죽하면 성범죄 수사과정에서의 모멸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생기겠는가. 그 사실을 알기에 더욱 선량한 피해자들은 그 사실을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 하긴 그런 사실을 아니까 가해자나 그를 옹호하는 이들도 그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선량한 피해자라면 감히 경찰에 신고따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냥 폭로 몇 번에 대부분 사실을 인정했고, 부정하더라도 이내 진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차마 어디 가서 사실을 털어놓지도 못했었다. 언감생심 법에 호소하지도 못했었다. 어째서? 피해자인데 먼저 자기의 결백부터 증명해야 한다. 티끌 한 점 없는 순백한 자신의 삶을 먼저 검증받지 않으면 안된다. 조리돌림당한다. 아주 사소한 결점만으로도 그런 일을 당해도 싼, 그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 부정한 의도에 의한 것이란 세상의 심판을 받게 된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어차피 세상에 알려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에게 더 엄격한 비판과 심판이 가해졌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세상에서 매장되어야 했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으니 새삼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지금에 와서도 그래야 하는가 묻게 되는 것이다. 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성범죄와 관련한 이슈가 터지면 먼저 피해자를 의심하고 관음의 눈으로 검증하려 들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피해자들에 대한 검증이 부실할 것을 걱정한다. 명백한 성범죄에 대해서조차 피해자의 탓을 하던 대다수 대중들이.


성범죄와 관련해서 실제 현실에서 남성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가관도 아니다. 하긴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여성들이 당시 침묵했고 그동안 침묵했으며 지금에 와서야 한풀이하듯 그렇게 사연들을 쏟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내가 메갈을 혐오하는 이유다. 아니 정확히 메갈을 입에 올리는 자칭 합리적인 남성들을 혐오하는 이유다. 메갈은 핑계가 된다. 자신들이 가진 일방적 편견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니까 더욱 자신들은 자신들을 지킬 수단을 가져야 한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실재하는 현실에서도 혹시라도 무고로 인해 자기가 피해입을 것을 걱정해서 그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내가 듣기 싫고 알고 싶지 않다.


늘 그래왔던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입으로는 가해자의 인권만을 챙기는 대한민국인데, 사실 원래 대한민국은 성범죄에 있어서 피해자가 죄인이어야 했었다. 아니었던 것처럼. 그저 웃을 뿐. 현실이 참 더럽고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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