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성가족부에서 남성들이 회식후 성매매하는 것에 대해 예방캠페인을 하겠다 했을 때 여기저기서 비난이 들끓었었다. 요즘 누가 회식하면서 성매매까지 하는가. 그런데 하는 걸? 내 주위에 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들이 늦은 밤길에서 남성을 보면 경계하는 것마저 시비를 걸고는 했었다. 남성이 모두 예비성범죄자인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성범죄가 남성에 의해 일어나고 대부분 피해자 또한 여성인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평소 보고 듣는 이야기란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특히 딸들에게 항상 강조하며 가르치고는 한다. 밤늦게 혼자 다니지 마라. 남자들 조심해라.


하긴 그래놓고는 밤늦게 혼자 다니다가 성범죄의 피해를 입었다 하면 밤늦게 혼자 다닌 사실을 들먹이며 피해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다수 남성들이기도 하다. 남자를 어찌 믿고 따라갔는가? 집으로 들였는가? 함께 술을 마셨는가? 그래서 따라가지 않고 집에 들이지 않고 술마시지 않으면 마치 자기를 성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그래서 남성심리란 아동심리와 같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유치하다. 먼저 성범죄를 꺼리고 경계하면 남성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것이고, 그래서 피해를 당하면 남성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고. 아니 심지어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도 그럴 의도가 있었지 않은가 제멋대로 추측하기도 한다. 정상적이라면 경계해야 할 상황에서 그러지 않았으니 여성도 동의한 것이다.


미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남성들에게 성범죄 무고가 성범죄보다 더 빈발하는 무거운 범죄다. 대부분 남성들이 성매매 무고의 위협 속에 살고 있고 따라서 그에 대처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범죄란 없다. 성희롱도 성추행도 성폭행도 없다. 그것은 소수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을 음해하기 위한 모략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필사적인 것이다. 실제 사실로 밝혀진 다수의 성범죄보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소수의 사례에 집중하며 미투 참여자들의 힘든 고백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아니 오히려 의심부터 하려 한다. 어떤 악의나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백의 대상이 무고한 피해자인 것은 아닌가. 그것을 합리적이라 여긴다.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은 앞에서 그 사실 자체를 의심한다는 것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어째서 피해자들은 당시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이제서야 겨우 미투라는 대세에 힘입어 조심스럽게 털어놓고 있는 것일까.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으니 믿을 수 없다. 진짜라면 경찰에 신고해서 처벌받게 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남성심리는 아동심리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성이니까 그런 주장들이 합리적이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실제 경험한 사실이다. 어려서 좀 놀았다는 녀석에게서 여중생인가 여고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경험담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던가 죄스럽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었다. 자신들을 신고한 피해자는 단지 합의금이나 바라는 발랑까진 년들이었다. 그때 자신들과 어울린 것부터가 알아 볼 쪼가 아니었는가 말하고 있었다. 부모들도 결국 남부끄럽다고 돈받고 그냥 합의해 주었다고. 아마 대부분 남성들은 들어도 없는 일처럼 무시할 사실들일 것이다. 남성은 성범죄를 자랑하듯 떠들어대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숨기고 도망쳐야 한다. 밀양 집단성폭행 가해자들은 어디선가 떵떵거리고 살겠지만 피해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조차 없다. 가장 최근의 정보도 정말이지 끔찍하도록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시한다. 성범죄란 없다. 성범죄란 없어야 한다. 가해자들 역시 가해자가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두렵고 수치스러운 기억을 털어놓아도 그래서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이유들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내가 김어준을 혐오하게 된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에 정치의 논리를 가져다 붙여서는 안되었다. 그럴 의도가 있을 수 있으니 미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원래 그런 인간인 걸 알고 있기는 했다.


결국 익명이어서 못믿겠다며 고발자에 대해 린치를 가하는 여론에 대한 반발로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피해자가 등장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털어놓았을 때 이후의 일상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그나마 성추행이기 때문이다. 성폭행 피해자라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비할 수 없이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더러 애들 교육에 안좋다며 나가라더라는 가족의 하소연을 떠올려보라. 그런데도 오달수가 유명인이기에 그런 고발조차도 믿지 못하겠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남성들의 민낯이 그야말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서 어떻게든 미투운동을 흠집내려는 그들의 의도에서 그들이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 낱낱이 알게 되었다 할 것이다. 어째서 어른들이 그토록 남자를 조심하라 했었는지. 혐오스럽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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