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민주당이 가진 바 능력에 비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온 이유는 결국 한 가지였다. 당의 승리가 자신의 승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선거에서 이겨도 어차피 당권을 쥔 그들의 승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그러니 어차피 이겨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데 굳이 이기려 애쓸 필요가 없다.


민주당 내부의 여러 계파는 그야말로 정당 안의 또다른 정당들이었다. 정당 안에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어서 선거를 앞두고도 서로의 정략적 이해를 위해 물고 뜯으며 싸우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차라리 새누리당에 정권을 내주더라도 네놈들이 이기는 꼴은 못보겠다. 차라리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더라도 네놈이 잘되는 꼴은 못보겠다. 자기당의 대선후보가 대권을 두고 경쟁하는데 아예 선거운동도 않고 손놓고 보고만 있는 놈들까지 나온다. 아예 수권정당으로서 정권을 가지고 원내에서 다수당이 되어야겠다는 목적의식조차 없이 그저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그래서다. 오히려 당대표시절이나 경선 이전부터 자신에 반대해 온 비문, 반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려 하는 것은. 대선에서 승리하고 문재인 자신도 약속했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 계파나 정파와 상관없이 민주당 모두가 승리의 과실을 누리도록 만들겠다. 물론 책임 역시 그에 따라 지게 된다. 하지만 정권을 가지고 그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정치를 하는 이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청와대로 들어가고, 입각하여 국무위원이 되고, 그럼으로써 나라살림을 한 손에 쥐고 주무르는 경험을 해본다.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에도 어필하기에 좋다. 지역구의 숙원사업을 처리하는데도 국정에 밀착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니 너에게도 한 자리 주겠다.


더불어 국정이 어떤 원리와 과정을 통해 돌아가는지 직접 국정에 참여하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무현이 대권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김대중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면서 국정을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이 이토록 단호하고 과감한 행보로 시원스레 대통령으로서 첫걸음을 떼놓을 수 있었던 것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로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김부겸과 김영춘은 그를 위한 안배의 성격이 강하다. 지난 대선에서 유력했던 안희정과 이재명은 현직지자체장으로서 아무래도 제약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유력한 이들을 골라 그들에게 책임을 맡겨 국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들이 장차 민주당의 정권을 이어나갈 기둥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정부 요직에 배치할 젊은 정치인들의 면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의석이 있든 없든 이들이 민주당의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정권을 쟁취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그 가운데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유력정치인들에게는 대권주자로서 국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재인의 승리가 아닌 민주당의 승리이며, 친문의 승리가 아닌 민주당 전체의 승리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들 차기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경쟁하되 선거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사분오열한 야당들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쩌면 이대로만 계속 이어진다면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자민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문재인의 목표는 하나였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민주당이 계속 집권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민주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여 개혁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한두해 하고 말 개혁이 아니다. 한두사람이 하다 포기할 개혁이 아니다. 나라의 백 년, 아니 그 이상을 내다보는 더 큰 그림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 문재인이 죽고 사라진 뒤에도 민주당은 계속 그 목적을 이어가야 한다.


친문 반문을 말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너무 하찮다. 선거에서 누가 더 큰 공을 세웠는가를 따지는 것도 그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다. 문재인 자신 하나로 끝나는 개혁이 아니다. 문재인 자신 하나에서 끝나는 정권이 아니다. 한 걸음씩 더 큰 그림을 향해 나간다. 인사의 이유다. 내일을 준비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