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북한 대표를 앞에 두고 단도직입적으로 비핵화를 이야기했을까? 이미 평창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협상과정에서 비핵화 이야기를 꺼냈다가 반발만 샀던 전력이 있었다. 북미대화를 이끌어내려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북한을 달래가며 말을 꺼냈어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급하다는 이야기다. 유일한 기회다. 올림픽으로 인해 평화분위기가 조성된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더 어려워진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여론이 저토록 미친 듯 지랄해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오게 될 지 모른다. 북핵 문제로 안보가 불안해지면 당연히 보수진영에 더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진다. 평화보다는 정치적 이익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뒤로 미뤘던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되면 북한으로서도 체면 때문에라도 더이상 유화적으로 나서기 어려워지고 만다. 미국과 한국이 군사훈련을 하는데 그래도 북한의 최고지도자인데 모양빠지게 먼저 대화를 구걸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는 없다. 대화도 대립도 결국은 북한정권의 권력유지라고 하는 최우선 목적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직 분위기 좋을 때 무어라도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미리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을 것이다. 외교적 발언이라는 것이 갑작스럽게 즉흥적으로 나오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구나 대통령 쯤 되면 말 한 마디가 가지는 구속력이 상당하기에 어떤 발언을 할 것인가 상대국과도 상당한 협의를 거친 이후 정제해서 내보내게 된다. 먼저 북한에서 김영철을 파견한 것이 북미대화를 위한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발언을 지렛대삼아 북한 역시 북미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밝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북한 관계자에게 비핵화를 요구하고 북미대화에 대한 동의를 받아냈다는 사실이다. 북한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다름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쥐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통해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매개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미국이 그에 화답한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즉흥적인 발언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민국 정부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외교적 역량이 더욱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잘하는데 그동안은 왜 이렇게 못했던 것일까?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명박이나 박근혜보다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문재인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원칙주의자다. 필요하다면 군사적 행동도 결단할 수 있는 단호한 인물이다. 그러니까 지금 남북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인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전에 협의가 되었다 할지라도 대통령 자신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나서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물론 김정은도 바라는 바였기에 동의했다.


그래서 김영철의 방남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그만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김영남이나 김여정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었다.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면서도 격이 맞는 인물은 북한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미국도 김영철의 방남을 용인한 것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저 길가에 드러눕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야당이나,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도 모르고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보는 소수야당의 대표나, 지난 9년 동안 어째서 대한민국의 국정이 이 모양이 되었는가 새삼 확인케 하는 모습들이다. 그러고도 참 대한민국은 잘 버티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그러나 교활할 정도로 치밀하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따라 묵묵히 나가고 있다. 성과도 내고 있다. 모르는 것은 대한민국 야당과 언론과 그리고 일부 멍청한 국민들 뿐.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필요하고 그래서 무엇을 당장 우선해서 해야만 하는가. 잘 뽑았다. 의심할 여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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