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부전假痴不癲이란 차라리 바보가 되더라도 미친 놈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가 바담 풍 하는데 혼자서 바람 풍 해봐야 따돌림만 당한다. 모두가 외눈인데 혼자서 눈이 두개면 괴물취급만 받는다. 그냥 남들처럼 혀짧게, 남들과 똑같이 눈은 하나만. 그러니까 대세가 그렇게 정해졌다면 아예 바보가 되어서 납죽 엎드려 거스르지 말고 따르라는 것이다. 이기면 이기나 보다, 앞으로 가면 앞으로 가는 거고, 뒤로 물러나면 뒤로 물러나는 것고, 차라리 바보가 되면 비웃음이나 살 뿐이지만 미친 놈 취급을 받게 되면 심지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


순수견양順手牽羊이란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슬쩍 양을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일부러 노리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양의 무리에서도 혼자서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놈들이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양의 무리를 따라가다 보면 양 주인이 모르게 그런 양을 몰고 갈 기회가 반드시 생긴다. 역시나 대세에 순응하며 거스르지 말고 기회를 엿보되 놓치지 말라는 계명인 것이다. 심지어 양을 몰고가는 그 순간에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한참 멀리 쫓아올 수 없는 곳까지 도망치고 나서야 양주인은 비로소 양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화해, 대북포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물론 북한의 전향적인 결단이다. 북한이 먼저 결심하고 대한민국 정부와의 대화에 응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선의와 호의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하지만 설사 북한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할지라도 그때 이미 대한민국 국민의 여론과 미국의 태도가 그에 전혀 호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참여정부 말기 문재인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바로 가까이서 그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국민은 물론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혼자만의 대화란 것이 북한문제에 있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 일인가를.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힘을 받고, 북한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없이는 북한과의 대화조차 의미있는 결과를 내놓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가, 미국과의 관계가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일부러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반감보다 앞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한을 타격할 계획을 세우고, 핵잠수함 등 군사력을 강화할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중국을 자극할 것을 알면서도 사드배치까지 원칙을 잠시 뒤로 하고 강행하여 배치한다. 트럼프가 괜히 문재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범위에서 트럼프와 대립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트럼프의 정책 자체를 부정하지도 괜히 자기 주장을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 함께 간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입장을 거스를 생각이 없다. 미국의 이익이 곧 대한민국의 이익이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이 또한 대한민국의 전략이다. 그러니까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서 대화만큼은 만일 가능하다면 자신들에게 맡겨달라.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미국 정부와 대화하고 싶으면 먼저 대한민국 정부와 대화하라.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 곧 미국의 입장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북한과 대화해서 결론을 내놓아도 미국이 미온적이거나 아니면 비판적이었기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당장 이루어질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것만 가능하면 아직 북한문제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당장 통일까지는 무리더라도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이 나서서 북한문제 해결을 이끌어야 한다.


문제는 과연 그같은 문재인 정부의 의도대로 북한이 움직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과는 크게 다른 인물이다. 집권과정도 그렇고 권좌에 오르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후계자수업을 받으며 단계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았던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아직 상당부분 취약한 상태다. 더 강경한 태도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히 내부에서 다른 말이 나올 수 없도록 더 강한 모습을 보이려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김정일처럼 자기 마음대로 남한과의 대화에 나서기에는 혹시 모를 내부의 반발이나 동요,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마저 김정은을 좋게만 보지 않는 상황에 틈을 보인다면 그것은 곧 몰락으로 이어지고 만다.


차라리 김정일이었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도 생물학적인 나이가 있었을 테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럴 능력도 주제도 여건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시한은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대로 순리를 따라야 한다. 문재인이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대화는 원하지만 순리를 벗어난 대화까지 고집하지는 않는다. 상황이 그렇다면 더 강경한 극단적인 수단도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정부는 국익에 해가 될 수 없는 무리한 수단은 절대 피하고자 한다. 단 하나 원칙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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