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글은 다시 쓰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둘 있었다. 하나는 전에도 말한 이명박이 당선되고 '한반도대운하' 공약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런 공약도 있었느냐며 놀라워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무엇보다 자기 약속시간 늦었다고 민주주의는 개에게나 주라던 어느 노무현 지지자였다.


아마 도심에서 일어난 시위였을 것이다. 대부분 시위들이 그렇듯 당시 노무현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였을 것이고.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던 입장에서야 시위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시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부정이다.


"길거리를 막고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여 불편을 주는데 잘못된 것 아니냐?"


사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정부와 정치인, 지지자들이 도심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일관되게 해 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정부에서도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 지지자들은 똑같은 논리를 반복해 왔었다. 심지어,


"내가 시위 때문에 약속에 늦었는데 시위대들이 보상해 줄 것이냐? 내 약속도 시위의 목적 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 기본인 집회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바로 반박한다. 참고로 대학생이었다.


"그런 게 민주주의라면 개에게나 주라!"


내가 지금도 노빠들 싫어하는 게 괜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안을 노무현과 정부에 대한 유불리로 판단한다. 노무현과 정부에 불리하면 악, 노무현과 정부에 유리하면 선, 그래서 노무현과 정부에 조금만 안좋은 소리를 해도 아예 악으로 몰아붙여 내몰려 한다. 그래도 나름 열성지지자였는데 저런 놈들과는 한 묶음으로 엮이기 싫어져서 오히려 노무현과 거리를 두려 했던 기억이 있었다. 진짜 그런 놈들과 같아지기는 죽어도 싫었다.


아무튼 이 글 읽는 사람 가운데서도 당시 저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지 공감하는 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당시는 민주주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이제 당연하니 다른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더이상 민주주의로 인해 자기가 약속에 늦는 일이 없도록 조금 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주 잘 포장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 미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논리들을 보게 된다. 광우병파동 당시 정부며 여당이며 언론이며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었다. 아니 노무현의 참여정부 당시에도 정부에 비판하는 시위라도 있으면 시위에 참여한 면면을 들어 시위의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었다. 노조의 깃발이 보였다. 진보단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서는 문제가 있는 단체들도 없지는 않았다. 당연히 주제를 벗어난 과격한 주장들도 있었고, 위험한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해서 광우병시위가, 아니면 이후 이명박근혜정부에서 있었던 그들의 실정을 비판하던 수많은 시위들이 부정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정부가 바뀌니 어쩐지 인터넷 여론도 상당히 바뀌어 있기는 했었다.


뭐든 마찬가지다. 어디든 다르지 않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늘어난다. 정상인 사람이 많아져도 비정상인 사람 또한 비례해서 많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촛불시위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해외언론에서 촛불혁명에 대해 대서특필하며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불상사 하나 없었다. 원래 시위라는 자체가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들이 미리 정하고 모인 것이 아닌 이상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문제 역시 다양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소심하고, 누군가는 과격하고, 심지어 서로 가리키는 방향까지 같지 않은 경우마저 있다. 그럼에도 큰 목적에서 동의하기에 사람들은 모여서 집회를 하고 시위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작은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 사소한 차이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부정해야만 하는가.


과격시위도 많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도 상당하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그같은 집회와 시위들을 비판할지언정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이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연대해서 거리로 나와 외치는 것이다. 그런 당연한 권리마저 부정해서는 안된다. 범죄는 범죄, 사고는 사고, 권리는 권리다. 하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심지어 민주정부에서도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원칙이었다. 그래서 촛불혁명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강박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절박하게 행동을 억제했다.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면 시민의 권리는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다.


미투와 관련해서 허위고발도 적지 않다. 아예 되도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글들도 인터넷에서는 넘쳐난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가. 과격폭력시위라고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과격단체나 노조가 참여했다고 광우병시위가 그저 선동에 놀아난 폭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김어준을 싫어하는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결국 김어준은 미투에 부정적인 이들을 위해 아주 훌륭한 명분까지 만들어 준 것이다. 미투에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방해하려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불순한 의도들을 걸러내야 한다. 이명박이 뉴스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미투를 억압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 그를 명분삼아 미투는 실패했다 끝났다 단정짓는 이들까지 늘어나고 있다. 불순한 이유를 찾아내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들추고, 그러므로 순수하지 못하니 미투는 의미가 없다.


사실 말한 것처럼 냉정해지면 되는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바로 반응하지 않고 사실관계가 밝혀질 때까지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위로하며 표현을 자제하고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사실인가 아닌가 대부분 제 3자들인 자신이 알 수 있는 방법이란 거의 없다. 알지 못하면 모르는 채로 당장 확인 가능한 사실만 가지고 판단하면 된다. 가해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니 그 부분은 자제하되 피해를 주장하고 있으니 피해자를 일단 위로하며 편들어준다. 피해자를 편들어주는 것이 반드시 가해자라 지목된 이를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켜보면서 명백히 밝혀진 사안에 대해서만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주장하여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 터지면 우르르 몰려가 있는대로 쏟아내고 그 책임을 엄한 미투에 묻게 된다. 


하긴 그나마 아예 처음부터 미투를 부정하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오달수에 대해서조차 대부분 남자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행동들을 했을 뿐이라며 변호하는 특히 남성들이 아직도 상당한 수준이다. 미투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피해만 주게 될 뿐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성취에 장애가 될 뿐이다. 협박은 일상이었다. 단지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남자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도록 여자들이 미투같은 것은 해서는 안된다. 익명도 안되고, 언론인터뷰도 인정 못하고, 얼굴과 이름을 밝혀도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 여성단체가 배후에 있고 몇몇 문제가 된 사례들이 있으니 미투같은 건 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때도 그래서 노빠들을 싫어했는데 덕분에 지금도 문빠들을 싫어하게 될 것만 같다. 차라리 남성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은 그러려니 한다. 정권의 이익을 앞세운다. 정권의 승리와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을 명분삼는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단 한 마디 다른 의견조차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김어준을 비판하니 아예 역적취급이다. 딱 2007년 이전 노빠들의 모습이다. 노무현을 뼈에 새겼다고 자랑하며 노뼈라 스스로를 칭하던.


말하자면 미투란 그동안 억눌려왔던 성범죄 피해자들의 미디어를 통한 집단행동, 즉 시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나도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겪은 피해를 고백하고 집단화하여 사회에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 당연히 그 가운데는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도 있고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대중에 고백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일부 무고죄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죄로 함께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감수성이라면 만에 하나 억울한 일이 없도록 더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도록 최소한 내버려둘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여부를 판단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말했듯 별개다. 사람들을 믿고 속에 억울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도 가리고 따져야 할 일들이 이리 많다면 누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따위는 개에게나 주라. 시민의 권리나 연대따위는 개에게나 주라. 심지어 그 대통령이 미투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의 부작용을 이유로 미투 전체를 부정하며 아예 지워 버리려 한다. 없는 일이고 있어서 안되는 일이고 이미 실패한 끝난 일이다. 그것이 더구나 문재인 지지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 아주 오랜 옛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왜 김어준을 싫어했는지도.


그냥 이명박이 끌려가고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길래 길게 끄적여봤다. 잠도 오지 않았고. 어제 이명박 소환당하는 뉴스 보고 좋아서 술먹고 일찍 잤더니 너무 일찍 일어났다. 역사는 반복된다. 너와 나에 의해서. 그들과 우리들에 의해서. 우리들인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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