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도 관용구로 흔히 쓰이는 '스파르타식 교육'은 사실 도시국가의 한정된 자원으로 최강의 군대를 이루기 위한 나름의 필연적 선택이었다. 다행히 이웃한 메세니아를 식민도시로 삼으면서 직접 생산에 종사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모든 시민을 숙련된 전사로 만든다. 오로지 혹독한 훈련으로 모든 시민을 전사로 만들어 그것으로써 폴리스를 유지하고 지킨다.


하지만 정작 폴리스를 위해 모든 시민들을 엄혹한 집단생활로 내몰았으면서도 한 편으로 스파르타 역시 다른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같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먹고 입고 자고, 더구나 평상시에도 조를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면서 그 비용까지 모두 개인이 지불해야만 했다. 자식을 아고에라 불리운 학교에 보내려 해도 개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만일 그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면 폴리스의 시민으로서 모든 지위와 권리를 잃어야 했었다. 아예 나중에는 자식을 학교에 보낼 돈이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빈번하게 일어났다. 문제는 그 돈을 지불할 경제력이 모든 시민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돈이 없으니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돈이 없어서 아예 출산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영아살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전쟁을 한 번 치르면 많은 인구가 죽어나간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존에 있던 시민의 수마저 줄이고 늘리기를 포기하니 제대로 사회가 유지될 리 없었다. 심지어 스파르타가 몰락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코린토스 전쟁 당시 스파르타에 시민권을 가진 성인남성의 수는 불과 1천명 정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전성기에는 무려 9천 명이 넘고 있었다. 불과 수백년 사이에 완전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수가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코린토스 전쟁에서도 스파르타는 시민이외의 계급 - 즉 시민자격을 박탈당한 계급에서까지 충원하고서야 겨우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굳이 왜 지금 이런 글을 쓰는가는 아마 거의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부국강병을 기치로 개인을 수단으로 삼으며 집단속에 매몰시키면서도 정작 모든 부담과 책임은 개인에게로 돌린다. 결국 국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도태되거나 사회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다. 과연 소수의 엘리트만이 남아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별 건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것이 어느 사회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을 수단으로 삼아 사회의 부와 번영을 추구한다.


스파르타가 멸망한 이유는 단순히 코린토스 전쟁에서 패배해서가 아니었다. 코린토스 전쟁 이후에도 스파르타는 도시국가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메세니아가 독립하고 스파르타는 더이상 이전과 같은 성세를 회복하지 못한다. 나중에는 그리스에서도 가장 낙후된 도시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전혀 바뀌는 것이 없었다.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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