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도 운동 좀 했다 하면 거의 반드시 걸리는 부분이 바로 반미일 것이다. 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한 발 걸친 인사라면 거의 예외없이 반미와 관련한 이슈에 걸리고 만다. 어째서? 미국이 뭔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한미동맹이 사라지면 그때는 어쩌려고?


한국민주화운동에서 80년은 중요한 분기였다. 70년대까지 많은 민주화인사들은 오로지 미국을 바라보고 운동을 했었다. 미국처럼. 미국을 닮아서. 미국이 하는대로 쫓아서. 하필 70년대말 카터행정부는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기도 했었다. 미국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도와줄 것이다. 80년 광주에서도 미국이 신군부에 압력을 가해서 자신들을 구하고 민주주의를 되찾아줄 것이라 믿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랬던가.


당장 당시 한국군을 동원할 수 있는 작전권은 전시와 평시 모두 한미연합사에 있었다. 아무리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시민을 학살하고 싶어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였던 것이다. 최소한 미군과 미국 정부가 묵인하지 않는 이상 일개 부대장이 임의로 군대를 동원해서 한 도시를 포위하고 시민을 학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벌써부터 광주에서 학살이 저질러지고 바로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 미국은 심지어 시민을 피로 짓밟고 정권을 쥔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지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어째서 미국이?


차라리 민주주의 종주국이자 혈맹이고 우방으로서 미국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크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냥 적당히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냉정한 국제관계 아래에서 미국을 보았다면 그냥 원래 그런 나라겠거니 한바탕 비웃고 지나갔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이야 말로 정의였고, 대한민국을 돕고 지켜주는 은인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전쟁 전부터도 그랬지만 일본을 몰아낸 해방군으로서,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해준 구원자로서 다시 등장한 이래 그같은 대중의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정부의 선전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이 한국의 다수 대중들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토록 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아버지같이 유일한 재산인 소를 북한군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미국놈들이 끌어가서 잡아먹었다며 이를 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전반적인 인식이 그랬다는 것이다.


배신감이었다. 그러니까 반동이었다. 너무 가까웠기에 갑작스럽게 눈에 띈 서로의 거리가 너무 낯설고 춥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원래 자신들의 우방이 아니었구나. 자신들의 혈맹이 아니었구나. 정의도 구원자도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같은 고민이 특히 운동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에게 지금까지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아예 아직까지도 미국이라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극단적인 반미주의자부터 그래도 미국을 현실로 인정하고 냉정한 국제관계 아래에서 미국을 보려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당시 미국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이 미국을 대신할 대안으로서 같은 민족인 북한을 선택하거나 혹은 미국과는 또다른 서방의 한 축인 유럽을 기대는 경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른바 말하는 주사파가 전자고 유럽파는 오히려 PD나 자유주의 쪽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미국 말고. 그러니까 우리민족끼리. 아니면 유럽을 닮아서.


역사적 이해 없이 그저 지금의 시각으로 반미구나, 친북이구나 접근하면 전혀 동떨어진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베다. 사실이다. 80년대 운동권은 미국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북한과 더 가까워지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어째서 대학생이 미국 문화관을 불지르겠다 폭파시키겠다 극단적인 테러에까지 나서야만 했었는가. 당시 한국인들에게 미국이란 어떤 의미였는가?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심지어 반미를 가르치는 NL계열 전교조조차 사실 자체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미국에 반대했는가? 미군철수를 주장했는가? 그래야만 했던 시대였다. 당시 그 정도 주장을 하지 않으면 양심있는 인사라 할 수 없었다. 70년대와 80년대가 갈리는 지점이다.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상당히 낭만적이던 70년대에 비해 80년대는 쾌락적이면서 비장했다. 당장 80년대 초유의 히트를 기록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딱 1960년대 말 일본에서 '내일의 죠'가 보여주던 정서 그대로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래도 오죽하면 극렬좌파인 노정태마저 문재인 정부를 까려고 한미동맹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사드정책을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친일과 친미는 한 편으로 이제 한국 좌파에서도 새로운 트랜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시대는 바뀌고 있다. 어차피 미국이란 대한민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어쩌면 절실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냉정한 현실이다.


미국을 대하는, 그 가운데서도 반미를 대하는 세대별 인식이 지금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앞으로 어떤 의미이겠는가. 반성 없이 정확한 이해도 발전도 불가능하다. 역사는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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