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막말하고,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무례를 저지르고, 그냥 품행에 대한 것이다. 도덕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동습관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런 행동들을 공적인 자리에서 보인다면 그것은 품위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품위의 문제 역시 도덕성의 문제와 직접 연관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덕성은 개인의 양심과 관련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얼마나 잘하고, 주위 사람을 얼마나 잘 돕고 배려하고, 그냥 사람이 좋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고, 주위 사람을 그리 배려하지 않고, 그냥 사람이 싸가지없는 것이다. 역시 양심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냥 사회성에 관련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거리보다 더 밀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한고조 유방은 항우에게 쫓기면서 수레의 무게를 줄이겠다고 자식을 내던졌고, 조선의 태종 이방원은 아들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오랜 공신마저 음모로 몰아 일가족마저 살해하고 있었다. 당장 일이 바빠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친구나 애인과의 약속을 밥먹듯이 어기고, 아예 다른 데 신경쓰느라 주위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가족이든 주위 사람이든 함부로 대하면서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을 했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로소 도덕성의 문제가 나온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에 따른 사회적 규범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 수천년이 지났어도 그 기본은 바뀌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시장으로서, 혹은 국회의원이거나, 아니면 대통령으로서. 아예 법을 어겼으면 범죄자가 되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행동규준을 어겼다면 그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크든 적든 직권을 남용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공적 자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사회적인 규범과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들이다. 특히 공직자의 도덕성과 관계된다면 역시 공직자로서 얼마나 자신의 직무와 관계되어 부정하게 권한을 남용하고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니까 가족과의 사생활이 어떻고, 외간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하는 따위가 아닌 시장으로서 얼마나 사회적으로 보편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저질러 왔는가.


하지만 역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념이다. 방향성이다. 전에도 말했다. 이를테면 아주 유능한 행정관이 있다. 조금도 한 눈 파는 법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그런데 하필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나치였다. 그가 하는 일이 유대인 학살이었다. 그냥 시키는대로 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라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항상 단정하고 예의바르며, 주위와의 대인관계도 좋고, 공직자로서 부정 한 번 저지른 적이 없다. 의외로 나치독일의 군인이나 관료 가운데 보면 그런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명령이니까. 임무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책임이니까. 그에 비하면 법을 어겨가며 사회의 질서를 흐트려가며 거리를 화염병과 부순 보도블록으로 더럽히곤 했던 운동권들은 어떠한가. 이재명의 그 말은 그래서 나에게도 분노였었다. 아, 어떻게 저런 새끼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동안 이재명이 보여준 행보는 결코 민주당이 추구하는 이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오히려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와 여당과 싸우는 최전선에 성남시장 이재명이 있었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을 다 갖춘 인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문재인이 희귀동물이라는 것이다. 다른 인간과는 종 자체가 다르다. 과연 인간이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말이며 행동이며 전혀 흐트러지는 법이 없고, 가족은 물론 주위와의 관계마저 완벽하며 - 하긴 그럼에도 부정한 청탁을 우려해서 일부러 공직에 있을 때 동창들을 외면해서 원망을 들었던 것은 인간관계와 도덕성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도덕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그가 주구하는 이념과 지향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인간이 어디 흔한가. 결국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하는 기준은 마지막 이념과 지향인 것이다. 일단 방향만 맞으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용서하고 타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념과 지향이 맞았다면 그 다음에는 공적인 도덕성이다. 얼마나 사심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가. 대인관계나 평소 품행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인으로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이다.


바로 내로남불이다. 당연히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다. 나와 보는 것이 같고 추구하는 것이 같다면 그만큼 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것이다. 아주 일치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가깝다면 그 사람보다는 더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이유들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향하는 세계와 가치를 그도 또한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는가. 그것을 추구하고 실현하는데 있어 그도 일정부분 함께하게 될 것인가. 그러면 비슷한 도덕적 문제를 가졌을 때 그쪽에 더 우선을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더 문제가 있어도 그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문재인이 두 사람일 수는 없다. 그만한 사람이 또 있기란 힘들다. 그래서 선택한다. 품행도 방정하고, 인성도 좋고,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만 자신과 전혀 바라보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는 차라리 다른 것들은 포기하더라도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굳이 내 편이니 더 엄격해질 필요는 없다. 그것도 일종의 결벽이다. 그래서 내가 진보언론들을 싫어한다.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이념마저 언론이라고 하는 결별적 강박을 위해 희생시키려 한다. 자신들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어떤 이상이 있을 텐데도 그 과정에서 협력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결백을 과시하기 위해 기꺼이 수단으로 모든 것을 내던진다. 실패가 영광이고 좌절이 훈장이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성공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이상도 현실에서 실현되었을 때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선이고 도덕이고 정의고 윤리다. 가치다. 


이재명과 관련해서 제기된 의혹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였다. 하필 경쟁상대가 자유한국당 소속의 남경필이었다. 바른미래당 김영환이 이재명을 저격하며 나서고 있었다. 그렇다고 설마 남경필을 지지하겠는가, 아니면 김영환에 표를 주겠는가. 어쩔 수 없이 이재명을 선택할 것이면 다른 것은 굳이 돌아볼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고 이재명과 관련해서 공직자로서 치명적인 흠이 될만한 사실이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드러난 것은 전혀 없다시피 하다. 소소한 개인적인 부정이나 위법이 문제가 되고 있을 뿐. 공직자가 외간여자와 바람을 핀다고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이 있을까. 클린턴은 그러면 다시 없을 호로쌍놈이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선거에서 솔직해지고 정직해지기란 정치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기는 어차피 그들은 이재명에 엄격한 대신 남경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남경필에 대해서 만큼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한 일들마저 얼마든지 이해하고 용서해 줄 수 있다. 누가 우리편인가. 누가 자기와 한 편인가. 아니면 내가 하니 불륜이고 남이 하니 로맨스인 것인가.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비난마저 그대로 옮겨와서 민주당 지도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누가 나의 편인가. 누가 그래도 최소한 나와 더 가까운가. 부정하지 않는다. 원래 자기와 가까울수록 관대해진다. 대부분 인간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본성이다. 차라리 민주당보다 남경필에 더 가깝다. 차라리 민주당보다 남경필에 더 관대하다. 심지어 남경필을 위해 친문으로 불리던 인사들마저 서슴지 않고 공격한다. 나와 다른 지점이다. 당연히 옳다고 여기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다르다. 난 틀리다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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