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최근 메갈을 핑계로 여성과 관련한 어떤 주장도 의견도 실제 사례도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주장을 하려 하면 바로 메갈이라는 낙인부터 찍는다. 메갈리아와 관계있을 것이기 때문에 네 말을 듣지 않겠다. 원래 이것이 목적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여성의 권리신장이란 남성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바로 이 지점이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강경한 여성주의자들과 남성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양보해 줬기에 여성들의 권리와 지위가 지금처럼 높아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과연 그것이 남성들이 진정으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했기에 그리했던 것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사실상 아직까지 여성의 사회적 지휘와 권리의 신장은 남성의 허락 아래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가 납득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래야 하니까. 그러는 것이 옳다니까. 아니면 틀리다 말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강요당하는 것이 있었다. 선진국은 그렇게 한다니까 어쩐지 그래야만 대한민국도 선진국이 되는 것 같다. 똑똑하고 많이 배운 지식인들은 그같은 주장들에 동의하고 있다고 하니 자신도 마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약간은 허영심이다.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는 소심함도 있다. 하지만 불만은 남는다. 어째서 자신의 권리를 나누어 여성들에게 주는 것인가.


하지만 분위기가 그렇고 현실이 그러니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한 마디 말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집중공격을 당할 수 있었다. 무지하고 무식한 구닥다리로 매도될 위험도 있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해 이해하는 것처럼.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해 동의하는 것처럼. 하지만 어째서 여성과 여성주의는 내가 바라는대로가 아닌 것일까. 나는 여성을 이해하고 여성주의에 동의하는데 어째서 내가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 


그리고 사단이 일어났다. 일부 과격한 여성주의자들이 메갈과 워마드 같은 극단적인 여성사이트와 결합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명분을 잃었다.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것은 그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틈이었다. 여성주의는 별 것 없다. 여성도 별 것 없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진다. 그동안의 불만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성들이, 여성주의자들이 잘못되었다. 진짜 여성주의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바라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에는 이런 여성주의도 저런 여성주의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공산주의라고 하나가 아니다. 자본주의 역시 하나가 아니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이론과 논리가 존재하고 항상 첨예하게 대립하며 갈등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관심도 없던 여성주의다. 현실에 실재하는 여성주의가 아닌 관념으로 이상화한 여성주의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남성이 이야기하는 남성을 위한 여성주의여야 한다. 여성주의마저 자신들이 소유하려 한다.


문제는 뭐냐면 그동안 사회적으로 남성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합의의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째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노력해야 하는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대학만 좋은 곳에 가면 된다.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여자친구도 마음대로 골라 사귈 수 있다. 부모들부터 문제다. 여성을 마치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이야기해 놨으니 제대로 된 여성관이 자리잡을 리 만무하다. 자신을 위한 보상이며 대상이다. 그리고 사회는 남성들과 상관없이 멋대로 여성주의를 현실로 옮겨 놓고 있었다. 남성들이 소외되고 있었다.


남성의 소외는 남녀평등과 별개의 문제다. 사회적인 평등과 별개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남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성들보다 높지만, 남녀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분노와 불만은 누적된다. 기회를 보아 터져나온다.


불과 수십년 전이다. 한 세대도 아직 다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의 지위는 빠르게 신장되었지만 그러나 남성의 의식까지 함께 성장하고 있었는가는 의문이다. 그 부조리가 메갈리아라는 틈을 비집고 현실로 터져 나온다. 남성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이거나 여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이면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 거부반응을 보인다. 더이상은 그대로 당하지 않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작 사회적으로 대화와 합의를 주도하고 이끌어야 할 지식인들, 정치인들, 언론인들의 무관심과 방기가 만들어낸 반동에 가까운 것이다. 여성들 자신조차 남녀평등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토론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여성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것이 과연 여성주의인가 고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의 분노부터 다스려야 한다. 분노가 지나치면 증오가 된다. 증오는 답이 없다. 증오는 오로지 증오만을 생산한다. 발전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냉정과 이성을 찾아야 한다. 물론 개소리다.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참 더 싸우고 알아서 시들해질 때 쯤 진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더 싸우고 질리도록 싸우고 나서야 힘이 빠지면 차근히 현실을 돌아볼 여유도 생길 것이다. 지금은 그냥 지나간다. 바람에 거스르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가끔 내가 왜 이 짓거리 하는가 의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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