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조선을 건국하며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 신진사대부들 또한 권력을 잡으면서 앞세웠던 명분이 바로 도덕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전의 권문세족들과는 다르다. 온갖 특권을 누리며 부패와 타락의 끝을 보여주었던 고려의 지배층과는 다르게 자신들은 세상과 백성들이 더 나아지게 만들고자 하는 고매한 이상과 고결한 의지로 무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리학이었다. 보아라, 우리가 만드는 세상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아름다운가를.


그래서 과연 조선의 사대부들이 자신들이 주장한 만큼 도덕적이고 이상적이었는가. 물론 고려의 귀족들보다는 나았다. 제도나 실천에 있어 분명 고려의 귀족들보다 상당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다. 하지만 권력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다. 처음 조선을 건국할 당시만 하더라도 사방이 적이었고 기반 역시 확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고 지배권력 역시 확고해지자 조선의 지배층 역시 고려에서와 같은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부패를 답습하며 보여주고 있었다. 권력을 이용해서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그렇게 모인 부를 사용해서 온갖 향락과 사치를 누렸다. 다만 전제는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집 대문밖을 나서서는 안된다. 담장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조선의 사대부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던 것처럼 엄격하게 성리학의 윤리를 지켜서 엄숙하고 고결한 삶을 살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봉건적인 귀족신분을 밀어내고 새로운 유럽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르주아가 주장한 것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리였다. 오로지 귀족들에게만 독점되어 있던 모든 특권들을 해체하여 나누기 위한 수단으로써 특정하지 않은 보편의 다수가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원리를 주장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자유로워야 하고 평등해야만 한다.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대중들은 이전의 부패하고 타락했던 귀족들과는 다른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완결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또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부르주아들은 이전의 귀족들과 다르게 엄격하고 엄숙한 도덕을 실제로 지키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를 지배하게 된 명분이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과 실제 행동을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모두가 알게끔 하지만 않으면 된다.


도덕이 새로운 지배의 수단으로 등장한 이래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패턴이었다. 중국의 공산당은 아니었을까? 일본의 유신지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단지 그만한 권력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기에 미처 타락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다. 권력이 있으면 쓰고 싶다. 돈이 생기면 당연히 자신을 위해 마음껏 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도덕적이란 것은 절제와 금욕을 전제로 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있는대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 모르게 - 물론 모두가 알지만 공식적으로는 없는 공공연한 사실로써 온갖 향락과 사치를 누린다.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일삼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들의 지배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명분적인 도덕을 강화하게 된다. 근대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를 위선사회라 일컫는 이유다. 겉으로는 엄격하고 엄숙한 도덕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이전의 귀족들과 다를 바 없는, 오히러 억눌린 만큼 기괴하게 비틀린 타락과 부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조선시대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나 이후의 군사독재 역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사회였다. 그런데 그 구분은 명확하지가 않았다. 고려의 귀족처럼 단지 혈통만으로 상속되던 것이 아니었다. 조상이 양반이라고 양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친일파의 자식이라고 역시 친일파로써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대한민국이 성립한 뒤에는 아예 그런 구분조차 모호하게 단지 지배권력과 피지배신민이라는 현실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배권력으로써 자신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자신들에 의한 지배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 그것은 반공이었고, 그 다음에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내세웠던 것이 조국근대화였다. 이름은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가정의례준칙이라고 조선에서 상조하던 주문공가례와 비슷한 것이다. 이전의 미신과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덕적 규준을 세우자. 단순히 힘으로 누르는 것만이 아닌 개인의 행동의 원리인 도덕을 지배하고자 하는 의도였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이 미개한 나라를 더 낫게 더 잘살게 만들겠다. 물론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뒤에서 했던 행동들은 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박정희에 대해 직접 겪었던 당시의 세대들과 그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뒷세대의 인상과 평가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박정희가 집권하는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대중들에 노출된 박정희의 모습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에 걸맞는 도덕의 화신 그 자체였다. 아직도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에 대한 신화가 당시 대중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유 역시 그 연장에 있었다. 농민들 사이에서 함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는 소탈하고 검박한 서민적인 모습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실 위에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삶만을 걱정하는 초인적인 모습이 있었다. 박정희 자신이 주장하고 대중들에 강요하고 있었던 새로운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항상 부지런하게 검소하게 성실히 열심히 일만 하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자신마저 돌보지 말고 희생적으로 노력하라. 개인의 욕망은 부정한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이기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다. 물론 그 욕망과 이기에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욕구 역시 포함된다. 개인이란 단지 국가와 국민이라고 하는 더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그 국가와 국민은 박정희 자신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의 후계자인 전두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박정희와 전두환의 권력이 살아있던 1980년대는 어쩌면 그나마 나았는지 모르겠다. 왜냐면 그때는 박정희와 전두환 등 독재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바꾸고 지울 수 있었으니까. 차라리 향락과 퇴폐를 통해 국민이 현실을 잊을 수 있으면 자신들을 위해서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같은 절대권력이 해체되고 다양한 현실적인 위협들 앞에 노출되고 난 뒤였다. 이를테면 전제주의 시대의 귀족이 근대산업사회의 부르주아로 내던져진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지금껏 누려온 권력과 권위만큼은 순순히 내놓을 수 없다. 그러니까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와 관련한 논란은 1990년대 IMF사태가 터지기까지 개인이 최대의 자유를 누려가던 전환기에 일어난 상징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서태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서태지와 마광수의 차이라면 이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주류가 된 이들 역시 여전히 이전의 도덕적 엄숙주의를 답습함으로써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권위와 권력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도덕적 엄숙주의에 있어 성이란 가장 흔하고 쉬우면서 명징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기존의 구태적 관습과 도덕을 비웃으며 도전하던 인터넷 여론이 자신들만의 도덕과 정의를 앞세워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도 그런 연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 네티즌이란 전체 대중 가운데 소수였고 당연히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주류의 매체 가운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드물었고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만 나누던 무엇이었지 실제 현실에서 의미있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 만큼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무책임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 모인 개인의 수가 늘어나며 자신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현실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자신들에게 유의미한 권력이 주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혹시라도 훼손되지 않도록 지킬 것인가. 끊임없이 먹잇감을 찾으며 그 희생양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힘을 확인하고 모두가 두려워하게끔 만든다. 타진요는 물론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인터넷과 관련한 논란들이 바로 그를 이유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터넷은 이미 권력이다. 권력의 속성을 닮아가고 있다. 자기들만의 규준을 만들고 그 규준을 잣대로 타인을 억압한다. 현실과 유리될수록 사실과 분리될수록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권위를 증명하게 된다. 타인을 희생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권력은 증명된다. 주체는 달라졌어도 권력의 속성은 언제나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사는 어느서나.


마광수 교수가 억울하게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리고 영영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인 것이다. 하필 1990년대였다. 권력의 교체기였다. 그리고 마광수 교수가 복권을 시도했을 때는 새로운 권력이 자신들의 도덕을 과시하고 있던 때였다. 갑질이 아직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다. 수직적 권력과 권위에 더 익숙하다. 새롭게 주류가 된 계층들 역시 자신들을 권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도덕은 권력의 힘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사회를 혼란케 하고 결국 자신들이 가진 권위와 권력마저 위협한다. 더구나 1992년이면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노골적인 성애소설들이 다수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던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마광수의 소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고 호기심에 소설을 구해 읽었던 이들이 표현의 수위에 실망을 토로했겠는가. 이후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모습이란 소설의 내용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긴 어쩌면 소설 '즐거운 사라'의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남자들이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는 그보다 더 노골적이었고 다수 남성들의 사생활 또한 그보다 더 퇴폐적이었으므로. 일상에서 그런 것들은 당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광수 교수의 현실이 현실의 도덕률을 배반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마광수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가?


당시도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마광수 교수가 죄인이 되어야 했던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물론 머리로는 안다.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어째서인가? 왜 마광수는 그런 실망밖에 주지 못하는 소설을 이유로 죄인이 되어 낙인이 찍히고 주류사회로부터 영영 내쫓겨야 했었는가. 그에 동참했던 시민들이 있었다. 여전히 그에 가담하고 있는 개인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이유로 마광수를 죄인으로 만들고 지금까지 그를 놓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현실 또한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 사람들이 겪는 일상은 그때와 전혀 달라져 있다. 이제는 사실이 아닌 인상만이 남았다. 소설 '즐거운 사라'도 없고 그저 소설을 쓰고 죄인이 되었던 '마광수'라는 인상만이 남았다. 아직도 논란은 남아있다.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세상과 이별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자유주의란 스스로 존엄하고자 하는 정신이다. 삶이 그를 존엄하게 할 수 없다면 존엄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순간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울한 한 시대가 그렇게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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