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타진요 사태가 생각난다. 그때 타진요의 거짓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던 몇 안 되는 블로거 중 하나가 나였다. 항상 그래왔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다. 누군가에게 욕먹는 것도 비웃음을 사는 것도 무척 꺼리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블로그 운영에 필수적인 리플접대를 하지 않는다. 우호적이면 우호적이어서, 적대적이면 또 적대적이어서,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내가 하고픈 말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고픈 말은 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 말이면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 다음은 나중 문제다. 얼마나 욕먹든. 어떻게 웃음거리가 되든. 그런 것 다 따져가며 글쓸 거면 그냥 혼자만 볼 수 있게 일기장에나 끄적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남들 보라고 쓰는 글이다. 뻔히 남이 읽을 걸 알고서 쓰는 글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돌아올 반응 역시 충분히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글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이다. 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드러낼수록 상대의 생각과 주장과 부딪히게 된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따라서 더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읽지 말라 말할 것인가.


하물며 기자다. 물론 기자마다 각각 지향하는 바가 있고 그에 따라 목표로 하는 독자층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밖에 다른 독자들이 아예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까지 모두 각오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사실이고 알아야 하는 진실이라면. 그래서 반드시 자신의 기사로써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고자 한다면. 그 다음 일은 그 뒤에 생각하는 것이다. 잡혀가서 고문당하든, 회사에서 잘려 백수가 되든, 아니면 길거리를 다니다 썩은 계란세례를 받든. 그래서 기자를 시대의 양심이라며 한 사회의 지성으로 취급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정도 각오도 없으면서 독자를 탓한다는 것은 너무 아니지 않은가.


진짜 어이없는 인간 하나가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아예 묻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 덜떨어진 되다만 기자놈 하나만 기억난다. 그것이 대통령에게 직접 국정현안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기자회견장에서 귀중한 기회까지 허비해가며 물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일까.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해서 질문을 받는데 고작 그따위 질문밖에 할 수 없는 빈약함과 빈곤함이 내가 다 창피해질 지경이다. 이런 놈들이 기자짓하는 사회에서 내가 살고 있다. 이런 놈들이 기자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사회에서 내가 정의를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일개 이름없는 블로거도 최소한 자기가 글을 쓰는 만큼 독자의 반응이 다양할 수 있음을 각오하고서 글을 쓴다. 욕먹고 비웃음당하고 그래서 온통 악플로 도배되도 차라리 안 본 척 못 본 척 애써 무시하며 자기가 써야 할 글들을 쓴다. 만일 그럴 수 없을 것 같으면 거기까지가 자기의 한계인 것이다. 악플 다는 놈들도 문제지만 어차피 악플없이 글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므로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면 일찌감치 손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의 선택이다. 그렇게 악플이 싫으면 기자짓 때려치던가. 아니면 모두가 좋아할만한 기사를 쓰거나. 그정도 각오도 없이 기자질을 하려 했던 것일까.


하여튼 덕분에 그때가 생각난다. 타진요가 정의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 보기도 기분나쁜 리플들을 많이 달았었다. 다행이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약소블로거라 차라리 그런 악플조차 거의 없었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아랑곳않는다. 내가 보기에 틀렸으니까. 그건 잘못된 것이었으니까. 그러면 쓴다. 사람들이야 뭐라 말하든. 참 한심한 주제들이다. 그래도 언론인이라는 것들이. 가방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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