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대선에서 4월 말쯤 되면 이미 문재인의 당선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던 안철수의 낙선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4월 초의 유치원 발언과 이은 4월 23일 TV토론회에서의 'MB아바타'발언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고 있었다. 아무리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국정을 책임질 국가원수를 뽑는 선거인데 부패한 것은 참아도 무능하고 멍청한 것은 못참는다. 하물며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과연 5월 5일 선거를 앞두고 급히 문재인 아들과 관련한 녹취록을 조작해서 발표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모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얼마의 표를 얻는가가 문제지 다음 대통령은 당연히 문재인이다. 홍준표든 안철수든 유승민이든 심상정이든 어차피 낙선한 것 얼마의 표를 얻는가가 관심사일 뿐이었다. 설사 지금 단계에서 실명도 밝히지 않은 녹취록을 공개한다고 이미 굳혀진 표의 흐름이 한순간에 뒤바뀔 리는 없다. 가능성은 셋 중 하나다. 진짜 녹취록을 조작해서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거나,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당선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거나, 마지막으로 어차피 떨어질 것 문재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상처를 입히려 한 것이거나. 마지막은 호남계를 의심할 수 있다. 문재인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면 설사 선거에서 지더라도 호남에서 자신들의 지분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다.


아예 정치를 모른다. 아니면 알더라도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는 동기가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미씨의 카톡내역을 보더라도 녹취록 조작이 안철수의 당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하기까지 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즉 이유미나 이준서 같은 정치에 막 발을 딛인 신인들이 뭣모르고 가담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다못해 기초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정치신인들의 그같은 공작을 노회한 당의 지도부가 아예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부화뇌동해서 따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의 노회한 정치인들마저 믿어야 했거나 혹은 믿는 척 해야 했던 어떤 이유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이유미와 이준서에게 지시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위의 두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이 한 사람 있었다. 남들 다 안된다 말해도 혼자서 된다고 무작정 밀어붙여 당이 따르게 만들 한 사람이다. 누구이겠는가?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차라리 경악스러울 정도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수단도 조잡하고 졸렬해서 그래도 40석이나 차지한 원내 제 3당에서 저지른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정치밥 먹은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뻔히 속이 보이는 수작을 벌이고 있었겠는가. 마찬가지로 문준용씨를 물고늘어지던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의 방식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지시를 했더라도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아주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어설픈 의도로 벌인 사건이다. 국민의당 지도부에서 그럴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단 한 사람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고 당황케 만든 상당히 독특한 선거포스터를 기억한다. 심지어 포스터를 기획한 사람조차 자기의 작품이 아니라 말했었다.


물론 단순한 추론일 뿐이다. 사실일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바로 활동을 재개하며 다음 선거를 노리고 있었다. 원래 자기에게로 왔어야 할 표가 홍준표 때문에 문재인에게로 갔을 거라면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자기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역시 단 한 사람이었다. 판세가 그런데도 자신만큼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당내 인사들의 조언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정황이 증거가 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의 논리에 따른다면. 흥미롭다.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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