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놈들은 이래서 문제다. 모든 걸 공식만 적용하면 답이 나오는 산수문제로 여긴다. 자기 머리로 모든 걸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까 비박의 협력만 얻으면 박근혜를 탄핵시킬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혼자만 문제인가?


비박은 몰랐을 것이란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마 그놈들 정도일 것이다. 정치인들이야 자기 계산이라지만 그래도 대학까지 나온 언론이라면서 한겨레, 경향 모두 그 말 그대로 믿고 비박도 탄핵연합국 소속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잘못은 오로지 박근혜와 그 측근들에게만 있다.


사실 비박 입장에서도 퇴로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 자기당 대통령이랍시고 탄핵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그대로 친박과 함께 휩쓸려 침몰할 뿐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얼른 청와대와 거리를 두고 국민의 편에서 탄핵에 동참해야 한다. 다만 전제가 붙는다. 전쟁에서 패한 패군으로서인가, 아니면 또다른 승자로서인가.


이를테면 2차세계대전 당시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이탈리아가 무솔리니까지 실각시키고 연합국에 항복했을 때와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아니면 전쟁 내내 독일과 한 편이 되어 싸웠던 핀란드가 추축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소련과 강화협상을 맺었을 때 소련이 핀란드로 하여금 독일에 적대적인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명백한 전범국이었다. 그래도 이탈리아가 끝까지 독일의 편에서 싸워서는 곤란하기에 항복을 받아들이고 더이상의 책임은 묻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탈리아에 연합국과 동등한 승자의 지위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었다. 핀란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쫓겨가는 독일군의 뒤를 원수이던 소련군과 함께 공격해야만 했다. 그것이 패자에게 허락된 항복의 방법이다.


비박이라고 전혀 상관없는 남이 아니다. 여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 정부 내내 많은 것들을 받았고 누렸던 당사자들이었다. 그래서 비박까지 포함해서 박근혜의 여러 실정을 감싸며 오히려 국민과 야당에 맞서고 있었던 것 아닌가 말이다. 지난 4년을 돌아보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에서 비박이 끝내 누구의 편에 섰었는지. 최순실과 관련해서도 증인출석을 거부하며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몰고가는데 한 몫 거들고 있었다. 그래도 정히 자신들이 친박과 별개라 주장하고 싶다면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먼저 친박을 치고 박근혜의 목을 베어 와서 우리는 저들과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그래도 승자의 지위를 허락할 수는 없다. 심판의 주체로써 자리와 자격을 허락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그들은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심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단지 심판의 대상으로써 죄를 면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였으므로 정상참작은 하겠다. 그런데 어떤가. 아예 박근혜를 희생제물삼아 개헌이니 제 3지대네 거론하며 자신들이 오히려 승자가 되려 한다. 심판의 주체가 되려 한다. 여전히 주류로써 자리를 지키려 한다. 그것을 열심히 옆에서 부추기고 도와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민의당과 한겨레, 경향이다.


탄핵에 성공하려면 비박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박근혜를 물려나게 하려면 비박과 협력해야 한다. 어떤 지위에서 어떤 역할로써 그 과정을 함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 저들도 이미 공범이다. 죄를 면하고 싶다면 말한 것처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런데 행동으로 보이기 전에 먼저 대가부터 요구한다. 그것을 용인한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심판자인가.


여전히 기승전노무현이다. 여전히 기승전문재인이다. 여전히 기승전민주당이다. 한겨레와 경향의 민주당에 대한 비토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한겨레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친노이고, 경향이 박근혜보다 더 경멸하는 것이 문재인이다. 차라리 이들에게 정권을 넘겨주느니 개헌을 통해 비박들과 국민의당이 권력을 나누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상적이다. 그렇게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이 현실의 논리를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선후를 봐야 한다. 무엇이 더 우선인가를 살펴야 한다. 너무 똑똑해서다. 개인은 단지 숫자 1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 높은 곳에서 굽어보며 살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저들이 승자가 된다. 저들이 심판의 주체가 된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민주당이 끊임없이 비박을 자극하며 저들의 전면투항을 요구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누가 죄인인가. 누구에게 죄가 있는가. 심판의 대상인가 아니면 주체인가. 저들은 단지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여기는가. 저들이 심판의 주체가 되어 민주당과 어깨를 나란히하면 그제서야 공정하다 공평하다 여길 것인가 말이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인 것인가.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에서 진보언론들을 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하려 했고 편들어주려 했었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다. 한계를 느낀다. 저놈들은 그저 새누리당 권력의 연장을 돕는 부역자에 지나지 않는다. 부역자라는 말에 발끈하는 이유다. 어이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