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회사의 지시로 거래처와 계약을 맺으려 할 때 상사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으면 행동하기가 더 편해질까?


"전권을 맡길 테니 마음대로 해봐! 팍팍 밀어줄게!"

"이 이하로는 절대 안돼! 안되면 그냥 돌아와!"


얼핏 전자일 것 같지만 실제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더 편하다. 당연한 것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사장이 확실하게 지침을 주면 그만큼 일하기가 편해지고 쉬워진다.


"사장님이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심지어 진상을 부리는 손님을 쫓아낼 때도 사장을 핑계삼으면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당당하게 가게에서 몰아낼 수 있다. 굳이 내가 거기서 판단할 필요 없다. 굳이 내가 거기서 계량할 필요 없다. 내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내 재량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권이 주어지면 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계량하고 갈등하다가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르바이트 할 때도 제일 짜증나는 게 그것이었다. 군대에서도 점호할 때 제일 사람 피말리게 하던 것이 '기본적인 것'을 보겠다 했을 때였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정부가 북미대화를 위한 대북특사를 보내려 하는 지금 미국에서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쓸데없이 고민하고 갈등하지 말라는 것이다. 괜하게 더구나 북한의 최고권력자인 김정은을 앞에 두고 섣불리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등을 받쳐주는 것이다. 어차피 대한민국 정부가 파견한 특사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북한핵문제에 대해 강경한 미국이 버티고 있다. 그런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가지 못하면 결국 특사의 방북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선택지를 대북특사가 아닌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에게 넘긴다. 그래서 북미대화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를 위해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을 내놓을 것인가, 아닌가. 


아무 협의없이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특사가 북한에 가서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너희는 지금 대한민국의 특사를 상대하고 있지만 실제 결정권을 가진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다. 대한민국 특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을 대리한 것이다. 미국 정도 되면, 더구나 트럼프 쯤 되면 그 자체로 협상을 위한 훌륭한 압박의 수단이 되어 준다.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 사이의 불협화음이 아니다. 외교적 균열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미국이 그러는 것을 이해하고 미국도 대한민국이 이해한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북한 또한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선 안에서, 최소한 이 선을 기준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 입장에서 그것은 너무나 큰 압박이다.


모두가 북한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해 버린 때문인지. 특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너무나 쉽다. 생각을 않거나 아니면 못하거나. 어느때보다 지금 북한핵문제 해결을 앞에 둔 한미동맹은 튼튼하다.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언론이 간첩이다. 언론이 적이다. 하긴 알면서도 북한 들으라고 그리 보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잖지도 않게. 


최대의 압박이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화도 협상도 압박일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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