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선순위인 것이다. 수 년 동안 올림픽 출전을 준비해 온 선수들의 입장과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와의. 바로 얼마전까지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공공연히 언급되던 상황이었다. 나 역시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오히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응징의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던 바 있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전까지와 같은 극한의 대치가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필요한 선택을 할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데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이다. 당장 성과는 없을지라도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화의 물꼬를 터야만 한다.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면 왜 하필 남북단일팀이어야 하는가? 한 마디로 마음에 드는 이성과 우연히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길게 이어가기 위해 아무거라도 대화거리를 찾는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은 사람을 붙잡아 세우기 위해서라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끄집어내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더불어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오고 싶으면 지금 이 손을 잡으라.


올초 있었던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더라도 북한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답답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당장 그나마 믿고 있던 중국마저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명분상 그것을 거부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만만한 위치는 아니라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야금야금 중국정부의 제재 역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그같은 고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핵개발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은 더이상 핵개발에 매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에 대한 협박은 그 사실을 인정해달라는 애걸이기도 한 것이고. 하지만 미국은 전혀 그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었고 앞으로도 더욱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에 응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 다른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겠는가.


그래서 순조롭게 회담이 진행되던 도중에도 이것저것 서로 잽을 날리며 나름대로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평창올림픽과 관련한 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언급한 것은 국내여론과 국제사회를 의식한 제스쳐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평창올림픽 참가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북핵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궁극적으로 회담의 목적은 북핵문제의 해결이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북한은 탈북종업원들의 송환을 주장하며 - 당연히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 한국 정부가 어디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탐색을 시도한다. 그것은 한 편으로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재량의 범위이기도 하다. 전과는 다른 강경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그들의 선택 역시 제한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회담을 이어갈 것인가.


아마 물밑에서 이런저런 계산들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서로 다른 자신들만의 생각이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이해와 목적과 이유가 계속해서 부딪혀야 한다.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트고 방법을 모색해야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말했듯 나는 아직도 군사적 선택의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지 않고 있다. 대화로 안되면 결국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안되면 그때는 전쟁 뿐이다. 오히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전쟁을 위한 확실한 명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상대를 붙잡아 앉혀 아무것이든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하나라도 더 접점을 만들고 하나라도 더 공유할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이 협상의 기술이기도 하다.


예전 남북단일팀과 분위기가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선수들도 대중도 그래서 아는 것이다. 이것이 남북의 민족적 화해나 공존, 나아가 평화통일이라는 낭만적인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정치적 협상의 수단으로서 남북단일팀이 이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불쾌감이다. 그냥 아무 의미없이 목적없이 그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단일팀이 이용된다. 선수들의 기회가 소모된다. 이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정치에 옳은 일은 없다. 정치에는 오로지 필요만 있을 뿐이다. 개인의 선이 반드시 국가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선의가 반드시 정치적인 선의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며 당면한 북한핵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분주히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를 오가며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었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당장 필요하다. 옳은가의 여부는 그 다음에 판단한다. 부디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보람이 있기를 바라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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