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어느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한 남자가 있다. 그래서 바로 뒤쫓아가서 여자에게 제안한다.


"잠시 저와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여자가 대답한다.


"먼저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면 그때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뭔 뜻일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면 그때는 대화할 수도 있다. 그러면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다.


핵개발을 포기하면 대화하겠다. 군비를 줄이면 대화하겠다. 통일하고 나서 그때 대화에 나서겠다. 대화가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대화라는 것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오해를 풀고 더 깊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대화를 통해서 맺힌 것이 있으면 풀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기 위해 먼저 걸림돌이 되는 문제부터 해결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물론 북한이 한국에 약점이 잡혀서 대화에 목매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 해서든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한국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배짱을 한 번 배짱을 튕길 만도 하다. 아쉬운 건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조건도 세게 붙인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지부진 끌게 되면 누구에게 더 큰 손해인가.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이유는 당장 자기들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미국에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고 싶으면 한국이 먼저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듣고 한국정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조건이면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는가. 만에 하나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한다면 한국정부는 어디까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든 군사적인 위협이든 그같은 대화를 전제로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바를 따른다면 당장의 위협이나 곤란함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아예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같은 대화를 할 창구를 닫고 기회마저 차단한다. 핵개발을 할 때까지 북한과 대화는 없다. 그래서 지금껏 어떻게 되었는가 말이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다. 국가전략은 오로지 좋고 싫고의 개인적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과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싫은 놈이라도 필요하면 대화를 한다. 당장 전쟁을 하게 될 - 아니 심지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대화창구는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아예 끝장을 볼 것인가. 적당한 수준에서 서로 타협하고 이쯤에서 멈출 것인가. 수많은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천만의 운명이 바로 그 한 번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무거워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싫고 믿을 수 없는 놈이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북한에 대해 아주 강경하게 압박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 자체는 이어오고 있었다. 아주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가능성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국가의 의무이고 책임이기도 하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북한이 잘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못하고 있다. 잘못하고 있으니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북한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대로 북한을 내버려두는 것은 당장 한국 국민들의 일상에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겠다. 북한이 밉다고 핵개발을 포기하라는 말 한 마디와 함께 대화 자체를 단절한 지난 9년은 그 교훈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어느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핵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이 독도에서 일본국왕의 사과를 요구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아예 위안부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본과 대화를 않겠다며 버티다가 졸속으로 협정을 맺었던 박근혜도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감정으로 외교를 하다가 빚어진 참사였었다. 위안부문제는 해결해야겠지만 그와 별개로 일본과의 우호관계는 계속 이어가겠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양국의 협력관계는 훼손치 않겠다. 그 전 정부들의 인관된 기조였다. 그리고 현정부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위안부협상은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일단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하겠다. 두 가지를 연계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일본은 한국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잘해서 대화를 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믿을만해서 대화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핵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어떻게든 대화의 물고부터 열어야 한다. 그동안 단절된 관계를 하루아침에 모두 복원하기는 절대 무리다. 북한이 나쁘다는 것은 따라서 전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북한이 모든 것이 좋고 아무 문제도 없다면 대화 자체도 그리 절박하지 않다.


하기는 그래서 그냥 일반 시민들이다. 국가적인 단위에서 외교라는 것을 이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개인의 감정이 곧 국가의 감정이다. 그동안 보수정권들이 이용해 온 것들이다.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며. 때로 국민의 요구와 별개로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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