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캐스팅보트라는 말 자체는 포지티브보다 네거티브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캐스팅보트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캐스팅보트로 무엇을 아느냐, 궁극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수에서도 힘에서도 다른 주류정당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 힘의 균형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함으로써 최대한 정치적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 마디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남들 하는 것을 따라가며 그 가부만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누구에 의지에 의해 시작되고 추진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처음 발제한 의원들과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 가운데 누구에게 대중의 관심이 쏠리겠는가? 더구나 국회표결의 경우는 그나마 발제자보다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의 수가 더 많다. 그들의 역할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 그런데 캐스팅보트의 경우는 정작 자신들이 손을 들어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에 비해 오히려 소수인 경우가 더 많다. 다수인 주류정당이 제안하고 추진하고 그리고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표가 나지만 찬성은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다. 주역은 처음 그 정책이나 법안을 추진했던 주류정당에게 있다. 캐스팅보트는 단지 그런 주류정당을 좌절시킨 반대표로써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지난번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었을 때는 그토록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쏟아지더지만 정작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었을 때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증거인 것이다. 안철수가 추전한 인사가 아니었다. 국민의당이 적극 지지하던 인사도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천하고 민주당이 동의해서 찬성을 이끌어내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인사였다. 민주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와 중진들이 어떤 식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키고자 야당을 만나고 야당의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있었는가 언론환경이 편향되어 있어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더구나 지난번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부결로 인해 역풍이 심했기에 어쩔 수 없이 국민의당이 대세를 쫓았다는 인상마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 그 공이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캐스팅보트라는 어찌보면 꽃놀이패처럼 보이는 위치가 가지는 딜레마다. 정작 가져갈 공은 없는데 책임만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반대상황이라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지지자 입장에서 반드시 김명수 대법원장도 김이수 헌법재판관처럼 낙마시켜야 했는데 국민의당이 찬성하면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고 말았다. 그나마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민의당에 그다지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국민의당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낙마 때는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기에 반응이 그처럼 폭발하듯 일어났던 것이기도 했었다. 어차피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아류정당이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낙마로 인해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데 또다시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낙마시킬 수 있을까? 기대는 했겠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더구나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낙마했을 때도 정작 그 이익을 가져간 것은 자유한국당 뿐이었다. 바른정당도 아니었다. 누가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반대를 주도했는가. 누가 정면에서 적극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과 맞싸우고 있는 중인가.


그 사실을 정작 당대표인 안철수만 모르고 있다. 아마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저 순간의 승리에 도취된다. 모든 것을 가진 양 의기양양해진다. 하지만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40석 정당이 299석 몫을 다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실제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당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면 자신들보다 더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다른 정당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먼저 승자인 양 주인공인 양 오만을 떨고서 자신들보다 현실적으로 우위에 있는 다른 정당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국민에 보여야 한다. 하는 것은 없으면서 반대만 한다. 할 수 있는 것이란 없이 결국 대세에 휩쓸려 찬성표를 던지고 만다. 중간자의 비애다. 누구의 편도 될 수 없지만 모두의 적은 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민주당과 극한대치중이라 망정이지 두 정당이 조금만 사이가 좋았어도 아예 존재가 지워질 수 있다.


한심한 것이다. 처음부터 캐스팅보터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낙마에 대해 그 모든 책임을 자유한국당이 아닌 국민의당이 뒤집어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많은 반대표를 던진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한국당이었다. 처음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것도 다름아닌 자유한국당이었다. 자유한국당이 승리한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에 그 모든 책임까지 지워진다. 작은 승리에 도취된 결과 그 책임까지 모두 국민의당이 대신 지고야 말았다. 자유한국당 지킴이다. 자유한국당이 들었어야 할 모든 욕을 당대표 안철수 때문에 국민의당이 들어야 했고 그 부담을 안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표결에 참석해야 했다. 정작 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캐스팅보트가 오히려 자신들의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나 할까? 캐스팅보트가 가지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저 손에 쥐어진 카드에만 눈이 멀어 오판하고 말았다.


생긴 것은 없이 잃은 것만 잔뜩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지지층의 상당수가 민주당과 겹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유한국당과 겹치던 지지층은 바른정당으로 많이 갔다. 지역기반인 호남에서도 보는 눈이 마뜩지 않다.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국민의당이나 그를 지지하는, 혹은 부추기는 언론이나 그 사실을 잊었다. 안철수는 말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퇴화하는 것 같다. 인간은 진화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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