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판단이 상당히 느린 편이다. 정확히 판단은 빠르다. 하지만 그 판단을 항상 의심하며 경계한다. 더 많은 더 확실한 근거를 확인하고 확신을 가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무 말이든 하게 된다. 그래서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에 대한 판단도 상당히 느렸다.


한 마디로 칼에는 눈이 없다. 당연히 머리도 없고 손도 발도 없다. 칼의 역할은 한 가지다. 칼을 쥔 손의 주인의 의지에 따라 목표한 대상을 베는 것이다. 칼이 과거 무슨 일을 했고 어디에 쓰였는가는 그래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적의 무기도 빼앗아 쓰는 것이고, 정히 쓸 무기가 없으면 녹슬고 부러진 무기도 들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무기를 사용하는 자신의 의지다.


일개 기관장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 요구되어야 할 도덕성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모두 국민에 의해 선출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다음 선거가 있기까지 사실상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방법은 없다시피 하다. 박근혜의 탄핵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결국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물러나게 하려면 정해진 임기가 끝나거나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판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 동안에는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 아래 주어진 권한을 얼마든지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반면 대부분 기관장들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판단에 의해 얼마든지 아무때든 그 자리에서 내쫓길 수 있다. 즉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그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모든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의 도덕성이나 능력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과연 김기식이라는 개인이 야당과 언론들이 주장하는대로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과연 문재인 정부 안에서 그동안 해 온 것처럼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 도덕적으로나 능력면에서나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단순히 과거의 인연이나 친분만을 이유로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장의 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믿음으로 일단 지켜보며 기다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인사라면 그 책임은 말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까지 지워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과연 지금 밝혀진 의혹들이 그같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훼손할 만큼 심각한 것들인가.


남들도 다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국회의원 대부분이 관행적으로 그러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전인가 김종인 전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며 남은 정치자금을 동료국회의원들에게 기부하는 형식으로 나누어준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다. 남은 정치자금을 국고로 귀속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바로 그 시점에 남은 정치자금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다. 그 전까지는 목적에 합치된다면 국회의원이 그 돈을 어디에 쓰든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임기도 끝나는데 이제 곧 실직자가 될 보좌관들을 위해서 퇴직금을 나누어주고 함께 출장을 가는 행위 역시 그렇게 도덕적으로 크게 흠결이 될 사안도 아니다. 어차피 국회의원이 국회 예산만으로 출장을 가려면 한 번이나 겨우 갈 수 있을 정도인 것도 분명한 현실일 것이고. 그래서 나름대로 법과 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만의 문화와 습성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른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마땅히 칭찬받아야겠지만 모두가 그러는데 덩달아 그랬다는 자체만으로 비난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국회의원을 다시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단지 자신의 도구로, 수단으로 쓰고자 한다면 그렇게 크게 흠결로 여겨질만한 문제들이긴 한 것인가.


차라리 국회의원이 문제라면 더 문제여야 할 것이다. 말한 것처럼 금감원장은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대통령이 바로 해임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모두 감수하겠다 하면 아예 법적인 처벌이라도 받게 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도 온갖 막말에 갑질에 부정까지 저지르고서도 국회의원들끼리 담합하면 심지어 행정부와 사법부마저 농락하며 정해진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 과연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임기가 좌우되는 임명직과 헌법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가운데 누구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책임지 지워져야 할 것인가. 하물며 그 국회의원들과 국회의원 시절 단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었다.


나름 쓸만한 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김기식이 얼마나 노무현 정부를 집요하게 악랄하게 괴롭혔는가 기억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상당히 성가신 존재로써 정부를 곤란케 만들고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일을 너무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었다. 그대로만 한다면. 그대로만 할 수 있다면.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기식을 금감원장에 임명하고 그 임명을 지키고자 하는 것일 터다. 그러니까 과연 그 칼의 주인인 문재인에게 쓸만한 도구인가 아닌가. 아주 크게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않다면.


그래서 청와대가 승부수를 띄웠다. 이기든 지든 결국 국민이 이기는 수다. 그러므로 과연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했던 행동들이 법에 위배되는가.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공직에 제한을 받을만한 심각한 문제인가. 선관위의 판단에 따라 자칫 야당국회의원들은 그동안 해오던 행동들 가운데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국회가 그동안 누려온 많은 부정적 관행들을 일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름대로 야당국회의원들도 그동안 누리던 많은 것들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냥 지켜본다. 청와대의 승부수로 이기든 지든 결국 국민인 자신은 이기는 싸움이 되고 말았다. 김기식이 재벌을 개혁하거나, 아니면 김기식을 계기로 국회를 개혁하거나. 민주당이 전과 같지 않다. 아무튼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한다. 편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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