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맥주 한 캔 씩 마셨었다. 요즘 살빼겠다고 그것을 사흘에 한 번으로 줄였다.


2008년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뉴스라는 것을 아예 보지 않았었다. 확실히 요즘 뉴스보는 재미가 있다. 오히려 게임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뉴스 보느라 즐기던 게임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 양반이 검찰에 출석하는데 전송주 한 잔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일하느라 실시간으로는 불가능하고 뒤늦게 뉴스를 보면서 한 잔 마시려 한다. 왜 이리 맥주가 달고 시원한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만큼 똑똑한 양반이라. 징그러울 정도로 철두철미해 보였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지 않는 이상 주변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했을 터였다. 하다못해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과정에서도 자기 돈을 쓰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원래 사이코패스란 자체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나 거짓말을 남들에게 감추는데 상당히 서툰 편이다. 당연한 것이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무심하고 둔감한 사이코패스가 효과적으로 그런 타인을 속여넘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측근들조차 단지 이용의 수단으로 보았을 뿐 목적을 함께하는 동지적 관계로 여기지 않았었다. 이익을 주어 이용하려 할 뿐 그들과 진정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이용가치가 사라지면 가차없이 버리고 만다. 그런데 정작 버린다는 행위를 이용한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이익으로 묶인 관계 이익이 사라지면 이용당한 쪽에서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굳이 자신을 버리고 배신한 이를 위해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마치 무협소설에서 천하제일의 세력과 무공을 지녀서 도저히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인데 단지 주위에 너무 매몰차고 잔혹하게 대했던 탓에 내부의 반란으로 인해 몰락하고 마는 악당을 보는 것만 같다. 이렇게 주변관리를 허술하게 했을 줄이야. 하다못해 피를 나눈 형제조차, 형제의 자식들인 조카들조차 결코 혈육은 그의 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박근혜는 그래도 어린애같은 유치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이해와 목적을 함께하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박근혜에게는 상당한 동조자와 추종자들이 남아 있는 편이다. 검찰출두하는 모습도 참 쓸쓸하다. 어째서 인생을 저리 살아왔던 것일까.


하긴 그런 인간에게 표를 주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이 대한민국 국민일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컸었다. 공중파 주말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것도 여러 추문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하여 서울시장을 넘어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어주고 있었다. 인상이었다. 이미지였다. 그보다는 믿음이었다. 저 인간이 더럽고 썩어 있지만 그래도 내게도 얼마간 이익을 남겨줄 것이다.


세상에 없을 도둑놈이고 강도이고 파렴치한 사기꾼일지라도 내게 이익만 된다면 아무 문제없고 오히려 더 자격이 있다. 물론 당시 민주당 후보가 정동영이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아무리 이명박이 싫어도 차마 정동영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 진짜 그 정도 후보였다. 노무현을 부정했기에 노무현의 유산도 모두 물려받지 못했고, 열린우리당 분당을 주도한 원죄로 민주당의 전통지지층조차 모두 끌어안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 중도층을 아우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참여정부의 장관에 여당의 대표까지 역임했음에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환멸까지 느꼈었다. 아마 당시 그나마 괜찮은 후보가 이회창이었지만 그는 또 하필 배후의 정당이 당시 한나라당 그 이상이었다. 어쩌겠는가.


일단 또다시 한 번 정동영과 열린우리당 당권파들을 욕하면서,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능력에 닿지 않는 대통령자리에 앉아 혼란을 키웠던 노무현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면서, 그러나 결국 그런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국민 자신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해먹을 것이란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여겨 표를 주었고 지지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끝까지 자기가 살아온 그대로 솔직하게 다 해쳐먹었다. 이제와서 탓하기도 때로 민망해지는 이유다.


어찌되었거나 긴 싸움이었다. 사실 박근혜를 무너뜨려야 했던 또 하나 이유이기도 했었다. 박근혜가 보수의 정신을 대표한다면 이명박은 보수의 욕망을 상징한다. 박근혜가 보수의 이상이라면 이명박은 보수의 현실이다. 박근혜가 보수의 정신이며 이명박은 보수의 실재하는 육신 그 자체다. 보수가 지향하는 것이며 보수가 실제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모두 이렇게 박근혜와 이명박을 통해 함께 무너져 내린다.


뉴스를 다시 보기를 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아니 지난 총선에서의 승리 이후 자주 즐겁게 뉴스를 찾아보게 되었다. 체념과 절망만이 가득하던 나의 손끝에도 웃음과 희망이 머금어진다. 아, 이렇게 세상은 즐겁고 아름답기만 한 것을.


세금을 그리 탐냈으니 세금으로 지은 더 큰 집에 독박까지 마련해서 아예 영영 지내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아마 버진아일랜드에 숨겨져 있을 재산을 원하는대로 국고와 하나가 되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나라재산이 자기 재산이었으니 자기 재산도 나라재산이다.


침을 뱉을 가치도 없다. 그저 평생을 크고 멋진 집에서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오늘은 기념일이다. 한 잔 더 마신다.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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