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주장한 불완전한 신 데미우르고스는 사실 그리스의 신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리스의 신들은 불멸일지는 몰라도 전지하거나 전능하지 못했다.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완전하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의 세계가 넓어지고 사고가 깊어질수록 그같은 불완전한 자신들의 신들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축적되어갔을 것이다. 만일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들이 아는 신들과 달리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일 것이다.


아마 시작은 오르페우스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오르페우스를 한때 지중해세계에 유행했던 미스테리아, 즉 비의주의의 시조로 여기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아다시피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사후세계까지 찾아갔던 인물로 유명하다. 오르페우스 자기가 그렇게 떠들고 다녔을 것이다. 자신의 아내가 죽어서 직접 지하로 내려가 죽은 이들의 왕을 만나 아내를 구해서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에 죽은 자들의 왕 하데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내를 지하세계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시까지 그리스인들에게 사후세계란 그저 막연한 관념으로만 존재했는지 모른다. 원래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도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막연했었다. 자신들의 신을 신실하게 믿으면 죽은 뒤에 구원받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지옥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헬'은 그래서 북유럽신화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는 죽은 뒤에도 살아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주장하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삶이 다하고 난 뒤에도 지하세계에서의 삶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이집트 문명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철학자라 일컬어지는 피타고라스 역시 이집트에서 신의 비밀스런 지식으로 여겨지던 수학을 배우고 그를 기초로 자신의 학파를 만들고 있었다.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도 원래 피태고라스가 처음으로 만들어 썼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인간은 죽지만 죽은 뒤에도 영혼은 남아있어 언젠가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와 부활하게 된다.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육신이 죽은 뒤에도 영혼은 불멸로 남아 언젠가 있을 부활을 대비하게 된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언제고 영혼이 다시 돌아와 깃들 수 있도록 살아서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 막대한 비용과 수고를 들여 미이라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들이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라면 인간의 영혼 역시 신과 같이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과 신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조상신숭배와 만나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헤라클레스가 신이 되는 과정에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육신을 불사르고 불멸의 영혼만이 하늘로 올라가 신들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는 이후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필멸의 육신과 불멸의 영혼이라는 대비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의도를 짐작케 한다.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으며 그것은 신과 같은 신성을 가지는 진정한 자신이므로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신성에 이를 수 있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배워 온 신화들은 모두 거짓이다. 신들에 대한 모든 지식은 가짜다. 그래서 거짓신들을 대신할 새로운 신을 찾으려 한다. 이데아다. 그리고 그 이데아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이다. 피타고라스가 시작했고 이후 많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동참한 일종의 종교운동이었다. 당시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이성이란 그동안 자신들이 믿어온 거짓신들을 대신할 진짜 신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리스도교가 지중해를 지배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 철학이 추구했던 이성과 진리는 그리스도교의 신이 대신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며 오만하게 외쳤던 이제 비로소 완전한 진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선언은 그 연장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이야 말로 전지하고 전능하며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그리스인들으 추구했던 진짜 신 그 자체였다. 아니 거꾸로 그리스도교의 신 자체가 그같은 그리스 철학자에게서 시작된 완전한 진리와 그를 구현한 절대의 존재에 대한 추구를 반영한 존재였다. 진짜 신이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그래서 그리스 철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교의 야훼야 말로 자신들이 찾던 진짜 신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을 믿느냐가 아니었다. 역시나 불멸의 존재인 자신들의 영혼을 보다 신에 가깝게 끌어올릴 방법과 대상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들은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로 인간세계에 내려온 것 역시 그를 위한 상징으로 여겼었다.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서 태어나 인간의 육신을 죽이고 지고한 신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오리시스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신이 되었던 것처럼. 그것은 지중해 세계에서는 당시 이미 보편적인 믿음이기도 했었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넘어 인도까지 원정하며 자연스럽게 섞여들어온 인도의 사상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몸으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정확히 인간의 몸을 버리고 불멸의 영혼을 통해 진정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단순한 신앙의 대상인 야훼는 그런 점에서 그들의 신이 될 수 없었다. 진짜 신은 자신들을 불멸로 이끌 무언가여야 했다. 여전히 진리와 지식은 그들에게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괜히 영지주의를 오히려 이교도보다 더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를 지탱하는 근본을 그들은 철저히 부정하고 폄훼한다.


아무튼 인간이 필멸의 존재로써 불멸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집트의 사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의 비밀을 알면 된다. 신들만이 가진 진정한 세계의 지식을 깨달아 알면 된다. 그래서 영지주의다. 정확히 영지를 뜻하는 그노시스는 지식 그 자체를 뜻한다. 세계는 수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원자라는 물질의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잰다. 지구의 지름을 계산해낸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지식을 쌓으면 신들만이 아는 진정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의 지식과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야 말로 진정한 신의 진리에 다가가는 길인 것이다. 현대의 과학자들을 과학이라는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라 일컫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적확한 지적인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이신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짜 신은 구체적인 이름과 형상이 아닌 세계의 진리 안에 존재한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신의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유럽문명이 세계문명을 지배하게 된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엄밀하게 세계의 구성요소를 찾아내고 그 법칙과 원리를 밝히는 과정은 그를 계승한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 거의 쓸데없는 노력들이었다. 그렇게 알아낸 지식들이 실제 현실에서 쓸모를 가지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은 엄숙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었다. 아무 의미도 없고 크게 이익이 되는 것이 없어도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을 밝히고 진리를 쫓는다. 그 자체가 어쩌면 유럽인들이 진정으로 섬겼던 진짜 신이었는지 모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째서 유럽에서 과학문명이 유독 크게 발달할 수 있었을까? 사실 유럽만이 아니다. 천문학과 수학의 지식은 많은 문명에서 신과 관련된 신성한 지식으로 비밀스럽게 전수되고 있었다. 그것을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세속권력의 권위를 담보하는 중요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다만 더 철두철미하고 더 엄밀했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처럼. 근대 유럽문명의 진정한 뿌리는 이집트라는 것일까? 그냥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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