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삽질한다'라는 말은 '언 땅에 삽질한다'는 말을 줄인 것이었다. 실제 그래서 나이 좀 있는 사람 가운데는 '삽질한다'고 할 때 앞의 말까지 붙여서 문장 전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리고 이 말의 유래는 바로 군대였다.


언 땅을 파려면 곡괭이가 필요하다. 사실 곡괭이로도 부족하다. 언젠가 삼성건설에서 아파트 건설한다고 재개발지역 철거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도 한겨울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것은 곡괭이와 삽. 참고로 그때 일을 한 것은 나와 아는 동생 두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돈 받을 때 보니 꽤 많은 사람 이름이 적혀있더라. 그리고 사실 굳이 그날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거의 일도 하지 못했었고. 뭐 그런 일도 있었다 치고.


곡괭이만으로 언 땅을 파려 해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곡괭이가 잘 박히지도 않고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면 어이없이 튕겨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자칫 다치기도 한다. 언 땅에서 곡괭이질하는 것도 보통 노련한 솜씨가 없으면 안된다. 그런데 하물며 삽질이라면야. 삽 하나 주고 언 땅을 파라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군대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나 역시 경험한 일이다. 한겨울에 땅을 파야 하는데 곡괭이 없다고 삽만 잔뜩 주고 일을 시켰다. 그러다가 삽이라도 부러지면 주임원사의 오만 소리를 다 들어야 했으니 진짜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었다. 삽날 위에 올라가 체중을 실어 찍어보기도 하고, 그대로 수직으로 세워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내리찍기도 하고, 그래도 땅은 파이는구나 기적을 경험해야만 했다. 진짜 다시 하라면 못할 짓인데...


그게 바로 대한민국 군대다. 18개월로 줄이면 전투력 저하된다? 곡괭이만 제대로 보급해주어도 삽질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굳이 곡괭이로 팔 필요 없이 장비만 제대로 지원해도 땅파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요즘은 모르겠다. 가을이면 싸리비만든다고 하루왠종일 산을 돌아다니며 싸리나무를 꺾고, 연병장의 자갈이며 잡초 제거한다고 뙈약볕에 하루종일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러고서도 전투력이 유지될까. 정작 전투훈련을 할 때는 장비도 교보재도 부족해서 거의 말로만 설명하고 말 뿐이다. 말만 잘한다.


아무튼 군생활 이야기가 나오길래. 문재인을 군생활로 안철수가 저격하며 한바탕 또 군대얘기가 나오고 있다. 군생활을 경험했는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군생활의 불합리를 경험했는가. 혹은 아닌가. 썰전에서 장교로 복무한 전원책이 군대에 불합리란 없었다 주장하는 것이나 같다. 병출신인 유시민은 안다. 그리고 같은 병출신인 나 역시 그런 유시민의 주장에 동조한다.


언 땅에 삽질할 경우도 없지는 않다. 겨울에도 땅은 파야겠지. 겨울이라고 전쟁 않는 것 아니고 참호 안 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냥 삽만 준다는 것이다. 기합과 근성. 딱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그러다 망하고 있었다. 남 일 아니다.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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