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국가란 군주의 사유물이었다. 군주에게 국가와 백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도 바로 그것들이 군주의 소유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너의 소유이니 그에 대한 책임 또한 네가 져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군주가 거부하면 뜯어말릴 방법이라고는 반역 말고는 없었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란이다. 역사상 수많은 암군과 폭군과 혼군이 존재했던 이유였다. 그들조차도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시대에 국가의 재정은 곧 군주의 개인금고이기도 했었다. 왕실의 개인재산이 따로 있어서 국가재정과 별개로 운용되었던 조선의 경우가 오히려 특이하게 여겨질 정도다. 당장 명나라만 해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강한 나라였음에도 정작 그 재정의 대부분을 황제의 혈족인 종친을 예우하는데 쓰느라 항상 압박을 받고 있었을 정도였다. 근세 유럽에서 부국강병책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중상주의 또한 그렇게 거둔 세금의 상당부분을 국왕의 애인이나, 전애인, 사생아, 혹은 친척, 우호적인 귀족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느라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심지어 유럽의 어느 군주는 자신의 국민과 자식들까지 다른 나라에 용병으로 팔아넘긴 돈으로 수많은 손님을 초대해서 연회를 열고 값비싼 보석을 선물로 뿌리는 사치를 부리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도 허용되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군주 개인의 소유였으니까.


그래서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보고 있으면 어째서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처음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해하게 된다. 군주가 거두어가는 세금도 나의 재산이고 군주가 동원한 노동력도 나의 육신이다. 그런데 어째서 군주가 마음대로 나의 재산과 육신을 가져다 쓰면서 자기에게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가. 너무나 당연한 의심이고 분노였을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도 일찌기 공자가 군주에게 자신의 소유일 국가와 백성들에 대한 소유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었고, 심지어 맹자는 국가도 백성도 군주의 소유는 아니라며 역성혁명을 긍정하는 사상을 설파하기도 했었다. 걷분에 맹자는 북송 말까지도 중국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감히 신하로써 왕을 끌어내릴 수 있는가. 그러나 군주가 군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군주로써 자격이 없는 것이고 자격을 잃은 군주는 그 자리에 더이상 있을 수 없다는 일종의 사회계약론이었던 셈이다. 근세 유럽에서도 귀족과 군주들의 전횡과 폭압에 일방적으로 권리를 침해당해야 했던 주로 시민계급에 의해 혁명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리는 같다. 네가 거둬가는 세금이 내 재산이고, 네가 동원하는 노동력과 군사력이 나의 몸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권리를 인정하라.


국가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하니다. 국민은 어느 개인의 소유도 될 수 없다. 근대 이후 그것은 마치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이들 잊는다. 불과 얼마전까지 국가를 사유화한 권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런 권력이 어떻게 국가를 개인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사용해 왔었는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피해받아왔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사회에서도 불과 얼마전까지의 일이었었다. 권력이 무고한 개인을 임의로 잡아들여 고문하고 재산을 빼앗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잡아다가 고문으로 죄를 만들고 개인을 처벌하고 그 가족마저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았었다. 정당한 자신의 사유재산과,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과 권리마저 권력에 의해 임의로 짓밟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었다. 수많은 재야인사들이 목숨걸고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것이었다. 더이상 국가가 몇몇 권력자의 소유로 있어서는 안된다. 아니 권력 자체가 몇몇 개인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의와 공론에 의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엄격한 규범과 제도와 절차에 따라서만 권력은 존재하고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란 국가를 이루는 모두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박근혜가 집권하는 과정이 그랬었다. 박근혜에게 대통령은 아버지를 잇는 자신의 가업이었었다. 그 지지자들에게도 박근혜는 자신들에게 군주였던 대통령의 딸이자 상속인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를 비판하는 이들마저 상당수 한 번은 대통령이 되어야 했을 것이라 인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대통령을 군주로 여기고 국가를 대통령의 사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국민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딸이니까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의 자식이니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런데 국가의 권력이나 재정은 여전히 공적인 대상으로 여기며 남겨둘 수 있을까? 국가는 곧 나의 것이고, 권력도 또한 나의 것이고, 재정도 또한 나의 재산이다. 국가의 안보 또한 나의 일이다. 얼핏 들으면 대단한 책임감으로도 들릴 수 있을 테지만 결국 그를 통해 보여준 것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의 예산을 개인의 비자금으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하긴 이명박이라고 다를까?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몇몇 대주주의 사유물인 사기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경영을 잘했으니까 나라경영도 잘할 것이다. 딱 기업경영하듯 나라도 경영했다. 사기업에서는 기업을 소유한 사주의 의지가 절대적이다. 사주로부터 위임받은 경영자가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주의 이해와 목적에 맞게 기업은 구성되고, 그 아래서 철저히 모든 구조와 구성원들은 그 이해와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단위로써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국가도 기업처럼 만들었다.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이익과 목적에 맞게 바꾸고 운영하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만들고서도 아무 책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자칭 시민들에게 환멸만을 느낄 뿐.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다행일까? 그나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개인을 엄격히 구분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국민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모양이다. 국가권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국가권력이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는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도 없고, 권력이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되어서도 안된다. 보수며 진보언론들이 문재인을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때도 진보언론이 노무현에 반감을 가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국가도 권력도 사유물이 아니니 정작 같은 편이라 여겼던 진보언론들에게도 따로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보수정권에서 보수언론들은 그들에 협력한 대가로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 차라리 보수정권의 이명박이 진보언론을 더 많이 챙겨주었다. 이명박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은연중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제동을 걸려는 듯한 기사와 사설을 흘리고 있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에게도 뭔가 몫을 챙겨달라.


최근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참담함을 넘어 아예 허탈함까지 느끼게 된다. 87년 6월 흘렸던 그 뜨거운 피가 이런 역사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그나마 아주 높게 쳐서 노태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역사의 발전이 국민의 선택에 의해 이런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누구의 책임인가? 세상에 미친 놈도 개새끼도 쌍놈도 너무 많다. 모두가 대통령이 되지는 못한다.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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