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트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뻔했었다. 대선초기 지지율만 놓고 보면 상당히 위협적인 순간이, 더구나 조사기관과 방식에 따라서는 심지어 여론조사에서 역전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유치원 발언과 TV토론에서의 실수로 알아서 자기 무덤을 파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거의 모든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안철수의 대통령당선도 마냥 허튼소리라고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안철수와 여당이 될 뻔했던 국민의당이 고작 이런 수준이라니.


처음 제보조작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런 말을 했었을 것이다. 이건 국민의당 지도부가 직접 가담했어도 문제고 전혀 몰랐어도 문제다. 그래도 원내 제 3당이고 대선결과에 따라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정당인데 민주주의를 직접 유린하고, 설사 아니었어도 그런 중대한 사실을 제대로 검증조차 못하고 있었다. 국민의당이 발표한 녹취록의 내용을 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진위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정치를 한두해 해 온 것도 아니면서 전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가운데는 범죄수사가 전공인 검찰출신도 몇 명이나 끼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멍청하면 문외한도 알 수 있을 허술한 조작에 넘어가 그것을 사실처럼 대선 당일까지 모든 언론에 나와 떠들 수 있는 것일까?


박근혜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알았어도 문제고 몰랐어도 문제인 것과 같은 이유다.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원수다. 나라 안의 거의 대부분의 중대한 일들이 다름아닌 대통령을 거쳐서 비로소 결정되고 실행에 옮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보좌진 또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최순실이 그런 식으로 멋대로 대통령을 팔고 다니며 사고를 치는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순실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라를 아예 절딴내려 시도했어도 전혀 모른 채 방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른다고 끝나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모른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기가 해야 할 바를 다하지 못한 무능이고 방임인 것이다. 그 자체로 오히려 탄핵도 과분하다 할 수 있다. 다른 자리는 무능이 허락될지 몰라도 책임이 무거워지면 무능마저 죄가 될 수 있다.


만에 하나 선거에서 안철수가 이겨서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의당이 여당이 되었다. 주위에서 누군가 정보를 조작한다. 사실을 위조한다. 그래서 대통령 안철수와 여당인 국민의당의 오판을 유도한다. 잘못된 협상에 나서도록. 잘못된 정치적 결정을 내리도록. 잘못된 정책을 채택하고 실행하도록. 그런 것들을 거를 수 있어야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자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되겠는가? 그야말로 박근혜 시즌2인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는 최순실 한 사람이었지, 고작 이유미 한 사람에게 그렇게 놀아났을 정도라면 각 부처 국장급 하나가 나서서 장난을 쳐도 안철수나 국민의당 지도부는 그것을 걸러낼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안철수 자신의 삽질로 고스란히 관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지만.


자랑할 게 아니라는 뜻이다. 검찰이 무혐의라 했으면 오히려 더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무혐의라 발표했다고 좋아라 하는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조작된 제보를 근거로 현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했던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위여부를 의심했던 허술한 근거만으로 대통령과 여당을 마냥 공격했던 사람들이다. 바보들 아닌가? 그런 놈들이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어 나라살림을 책임지겠다 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원내 3당이랍시고 여당을 견제하며 국정을 바로 이끌어보겠다 떠들어대고 있다. 나같으면 쪽팔려서 후쿠시마 앞바다에 그냥 뛰어내렸겠다. 하긴 자살이란 자체가 자아가 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는 하다. 자아가 없다면 그 자아를 죽이는 행위도 할 수 없다.


결국은 언론이 침묵해주니까. 언론이 감추고 가려주니까. 언론이 전혀 그런 사실을 비판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어리석은 대중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지지율 4퍼센트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이 국민을 우습게 여기면 돌아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오차범위 포함 최저 0에 수렴하는 지지율인 것이다. 그런데도 잘났다. 무슨 배짱인지. 그리고 그런 와중에 안철수는 정치를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대선이 끝나고 이제 겨우 석 달도 안 지난 시점에서.


나같으면 정말 부끄러웠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제보조작을 지시했다 항변했을 것이다. 나는 제대로 하라고 했는데 아랫것들이 멍청해서 이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한 탓에 들키고 말았다. 내가 직접 했다면 이런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멍청한 것보다야 사악한 것이 낫지 않은가. 방향이 잘못되어 그렇지 제대로 하면 잘 할 수 있는 인재다. 염치도 수치도 명예도 모른다. 살아서 숨만 쉰다. 같은 포유류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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