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정치와 리더가 아닌 이의 정치는 다르다. 당연히 지키는 자와 도전하는 자의 정치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리더의 정치란 관리의 정치다. 통제의 정치다. 리더란 룰을 만드는 사람이다. 자기 영향력 아래 모든 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체계와 구조를 만든다. 자신이 내세운 이념과 신념대로 모두가 따르도록 기준을 세우고 규범을 만든다. 만에 하나 따르지 않는 이가 있다면 엄격하게 제제한다. 반면 리더가 아닌 이의 정치란 타인이 만든 룰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순종하거나, 아니면 도전하거나.


지킨다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해진 룰 아래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도전한다는 것은 따라서 그 룰을 부정하고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정하지 않겠다. 받아들이지 않겠다. 반드시 자신이 의도한 새로운 룰을 만들겠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의 수단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따른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당시는 무척이나 합리적이면서도 열정적인 투사였던 이들이 정치인이 되어 급격히 타락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동하던 당시의 방식 그대로 정치를 하려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철수는 책임지는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에도 김한길이라는 공동대표가 있었다. 사실상 김한길이 주도하고 자신은 그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스스로 룰을 만들어 본 적도, 그 룰을 따르도록 강제해 본 적도 없다. 기업과 다르다. 기업에서 CEO는 월급을 주는 사람이고 CEO가 주는 급여는 직원들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주체들이 존재하는 정당에서 월급으로 누군가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초선의원에 자기세력이 없는 입장에서 주위에 더 많이 의지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자신의 의지를 주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럴만한 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시절에는 편했다. 아무 걱정없이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다. 나중은 생각지 않고 아무것이든 질러댈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이 그에 대해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공격만 하면 되었다. 비난만 하면 되었다. 그런 때는 누구나 정의로울 수 있다. 야당시절의 한나라당을 떠올려 보면 된다. 야당이던 시절 그들은 누구보다 정의롭고 유능했다. 오히려 야당으로서는 지금 야당보다 더 뛰어났었다. 반면 여당으로서는 지금 야당보다 한참 미치지 못한다. 마침내 자기 당을 만들고 자기 측근으로 주위를 채웠을 때도 그저 초선의원시절이던 때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정의를 주위에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안철수가 가진 리더십, 정치력의 한계인 셈이다. 자신의 측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아니 측근들이 오히려 안철수의 머리 위에 올라 그를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철수가 알았을까? 차라리 몰랐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자기 주위에서 그런 부정이 저질러지는데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어느 분이 생각난다. 차라리 자기가 모든 것을 주도하여 저질렀다면 바보는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정치초짜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문재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서투르고 어설펐다. 그리고 무능했다. 자신의 측근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차이라면 그럼에도 단지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모인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능력이 없다면 인덕이라도 있던가. 직접 강제하여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사람을 심복시키는 것도 정치인의 능력이다. 그마저도 없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고 그를 유력 대선후보로 여기는 것일까.


몰랐으면 몰라서 문제고 알았어도 알았으니 문제다. 차라리 초반에 빠르게 결론짓고 확실하게 대처하느니만 못했다. 시간을 끌면서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가진 리더십의 한계만 드러내고 말았다. 정치할 깜냥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주체들을 조율할 역량도 인격도 가지지 못했다. 자신의 측근들마저 제대로 심복시키지도 통제하지 못했다. 자기 당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그릇이다. 뒤늦게서야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정치는 타이밍이다. 남 공격할 때는 좋았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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