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먼저 물었어야 했다. 국민의당 사무총장 이태규가 검찰로부터 이유미의 단독범행이라는 팁을 받았다 했을 때 기자들이 먼저 따져물었어야 했다. 도대체 언제? 누가? 수사대상이었다. 이번 제보조작사건에 있어 국민의당 관계자 다수가 용의선상에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수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검찰이 완결되지도 않은 수사의 결론까지 은밀히 전달하고 있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언론들이 추미애 대표와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이태규 사무총장의 어조를 그대로 옮겨적는데만 급급하다. 정부여당만 비판할 수 있다면 검찰의 내통도 상관없다.


국민의당이 오히려 궁지에 몰릴수록 더욱 강경한 어조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사태가 이쯤 되면 과거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천막이라도 치고 바짝 엎드려서 죽여달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어찌되었든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선거를 위해 이용했으니 국민의당에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당시 당대표와 선거관계자, 무엇보다 후보인 안철수 자신이 무한한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아예 먼저 나서서 그렇게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모르긴 몰라도 국민의당에 대한 동정여론도 슬슬 올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서 그랬겠는가. 국민의당도 어쩌면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들이 알아서 조사하고는 특정 개인의 단독범행이니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라며 더 사납게 정부와 여당을 쏘아대고 있다. 왜? 그래야 언론이 자기들에게 더 우호적으로 써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국민의당에 몸담고 있는 과거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 안에서 해오던 짓거리가 바로 그것이었었다. 멀리 참여정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여당이었다. 정부와 함께 국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잘보이자고 여당의 주요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었다. 정작 야당이 아닌 여당이 청와대와 대립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 대통령과 정부를 싫어하는 언론들은 자기들은 더 크게 더 좋게 기사로 써 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식으로 언론의 공격을 받고 여론으로부터 외면받게 되면 여당은 괜찮을까? 결국 그 결과 정권을 내주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도 민주당에 대해 무언가 부정적인 기사를 쓰고 싶은 언론의 의도를 읽으면 앞다투어 나서서 공격하기 좋게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누가 더 독하고 강하게 민주당을 안에서 비판해야 언론이 더 좋아할지 자기들끼리 경쟁하기도 했었다. 아무리 당시 정부와 여당이 실정을 저지르고 인심을 잃어도 정작 민주당의 인기는 여전히 바닥이었던 이유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니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이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다.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언론의 지원을 받는 것 뿐이다. 언론이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쓰도록 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 어째야겠는가? 당장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마저 국민의당이 정부와 여당을 욕하기 시작하면 국민의당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내용만 충실하게 옮겨적기에 급급하다. 국민의당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고 따라서 어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보다 앞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그 내용만을 더 중요하게 살까지 붙여서 보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의당의 살 길은 정부를 욕하는 것이고 여당을 비난할 소재를 제공하는 것 뿐이다. 어차피 모든 언론이 정부와 여당을 싫어하고 있으므로 자기들이 그렇게만 하면 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실제 그러고 있었다.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당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하자 앞뒤사정은 상관없이 그저 그 말 자체만 트집잡아 여당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기사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언론기사만 보면 이제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게로 넘어간 듯 보였다. 바로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알고 있는 언론의 속성이고 그들이 노린 의도였었다.


그러니 조심성이 없다. 어쩌면 거꾸로 국민의당이 그동안 언론을 길들여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이 원하는 기사거리를 내준다. 언론이 바라는 기사거리를 자기들이 제공한다. 그러면 언론은 자기들을 위한 기사를 써준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눈에도 의심이 드는 허술한 녹취록마저 검증할 생각을 안했던 것이었다. 설마 지도부가 나서서 녹취록을 조작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사실일 것이니. 최소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어찌되었든 그래도 언론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검증없이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실제 언론 어디도 녹취록의 내용이 과연 사실인가 직접 취재해서 보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녹취록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실제 파슨스 출신 지인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그에 대해 취재하고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거의 없었다. 언론의 현실이 이런데 어차피 여론이 언론의 보도에 따라 움직인다면 국민의당이 괜히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삼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어디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도 알아서 언론이 축소하고 은폐해 준다.


당장 일개 청와대 행정관인 탁현민의 여성관을 문제삼으며 청와대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진보언론들이 정작 국민의당의, 그것도 원내수석부대표씩이나 되는 국회의원 이언주가 당시 강경화 외교부장관 지명자가 여성인 점을 공격하며 남성이 장관을 해야 한다 말했을 때는 침묵했던 것도 그런 대표적인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추미애 대표가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제보조작이라는 중대한 범죄와 연루된 국민의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문제삼으면서 같은 국회의원 이언주가 파업중인 노동자를 비하하고 비난한, 더구나 성차별적인 언사까지 쏟아낸 것은 사소한 단신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기준이 다르다. 비판의 기준부터 정부와 여당과 국민의당이 전혀 다른 것이다. 더욱 국민의당 정치인들은 말조심할 필요도 없고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국민의당의 잘못도 언론을 거치면 민주당의 잘못이 되어 있을 터였다. 검찰이 수사대상인 국민의당과 수사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초유의 상황조차 정부와 여당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에 비하면 언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국민의당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정확히 국민의당에 얼마나 철저하게 농락당하며 이용당하고 있는가? 뻔히 알면서도 이용당하는 것이니 피해자라 말하기도 뭣하다. 악어와 악어새다. 국민의당이 언론이 원하는 똥을 싸주면, 언론은 그 똥을 받아멱고 독을 뿜어낸다. 독과 똥의 콜라보다.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자유한국당이 상식적인 집단이라 여겨질 정도다. 부패한 언론이 어디까지 정치를 타락케 만들 수 있는가. 이보다 더 강하게 언론의 비호를 받던 정치집단은 역사에 없었다. 심지어 서슬퍼렇던 박정희, 전두환조차 최소한의 감시와 비판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권력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지금 민주당은 얼마나 조용한가. 모든 언론을 꺼리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국민만 무서워하며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도 그 안에는 언론에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은 종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최소한 유권자가, 자신들의 목숨줄을 쥔 당원을 무서워 할 줄은 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공당의 사무총장씩이나 되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어차피 언론이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던 것일까? 검찰이 수사정보를 유출했다. 피의자인 국민의당에 수사의 결론까지 미리 통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언론 가운데 누구도 그 점을 비판하고 나선 곳이 없었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더니만 그래서 야당은 그 대상에 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나라의 언론이 어디까지 썩었고 망가져 있는가. 국민의당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정치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참혹할 따름이다. 분노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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