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권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을 위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당원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은 불과 얼마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매우 낯선 일이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함부로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서도 안되었다. 그런데 하물며 당원가입이라니.


그래서 훨씬 전부터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당을 꾸려왔던 소수 진보정당을 제외하고 거대정당 가운데 당원이란 단지 구색만 갖추는 수준으로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당헌당규에도 명문화되어 있고 이것저것 구체적인 내용들도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알고 당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유권자의 수는 매우 적었다. 어차피 소수 유력정치인들에 의해 이합집산하며 멋대로 만들어졌다 사라지고는 하던 정당이었다. 당원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 전혀 관심도 없이 소수의 유력정치인들이 그러자 하면 그렇게 결정되고 행동에 옮겨지는 것이었다. 그런 정당에서 당원이란 결국 소수 유력정치인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하려 할 때 명분으로 앞세울 숫자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 당원을 과연 누가 바랐을까.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했던 때문이었다. 유권자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라는 자각도 없었고, 정치의 주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배운 바도 없었다. 그저 타자로서 비평가가 되거나 아니면 방관자가 되어 일방적으로 정치와 정치인들을 지켜보며 판단하려 할 뿐이었다. 정치를 바꿔야겠다. 정치를 다시 유권자에게로 돌려주어야겠다. 처음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이른바 천신정이라 불리우던 소장파들이 앞세운 명분도 그것이었다. 유권자 스스로 당의 주인인 당원이 되어 당을 이끌어갈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 진성당원이란 그를 위한 화두였다. 일정한 절차를 거치고 정해진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에 대해 당의 대소사를 묻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 그리고 그 다음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지금도 내가 유시민을 개새끼라 욕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깟 열린우리당을 위해서 천 년을 가는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말만 믿고 가입했던 개혁신당의 동지들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당원의 숫자도 충분하고 당원으로 가입하고 권리당원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야 당연히 당원에게 모든 것을 묻는 것이 옳다. 열린우리당 이전에 새천년민주당도 최소한 형식을 그렇게 갖추고자 했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는 한나라당이 새천년민주당보다 앞서는 부분도 있었다. 소수의 유력정치인이 아닌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당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실이 그러했는가. 어차피 정당의 당원이 되는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희귀한 일이던 시절에 당원가입까지 할 정도면 상당히 적극적인 동기나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대개는 누군가의 조직이었다. 실명이면 그나마 나았고 심지어 차명으로 종이당원만을 만들어저 자신의 조직으로 활용한 정치인이 적지 않았었다. 과거 정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경선을 해도 그 결과가 전혀 공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당비마저 조직을 거느린 정치인이 대신 내주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그런 정치인들의 부담을 키워 조직의 규모를 제약하기 위해 당비를 더 높게 정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었을까. 박스떼기가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뚝 떨어지듯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짓들을 조금 더 규모있게 노골적으로 저지르다가 상대편에 들통난 바보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째서 과거에는 권리당원이 아닌 국민경선이었는가. 그러니까 과거에도 권리당원이란 지금의 권리당원과 같은 존재였는가. 특히 당시 1야당의 권리당원은 호남에 지나치도록 편중되어 있었는데 1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것도 한 이유였지만 결국 대부분은 호남에 기반을 둔 특정정치인들의 개인사조직으로 관리되어 온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선을 해도 자신들이 만들고 관리하는 조직을 이용해서 당원의 결정이라는 명분으로 안전하게 공천을 받고 확실하게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권리당원들에 당의 요직이든 후보의 선택이든 마음놓고 맡길 수 있었겠는가. 다시 한 번 열린우리당을 처음 만들 때 내세웠던 명분만 정동영이 당권을 쥐고 지켜주었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은 여전히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가운데 이미 있는 권리당원마저 소수 정치인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으니 후보를 결정한다해도 지지자조차 반드시 그들에 투표할지 자신할 수 없었다. 정동영이 그 대표적인 예 아니던가. 심지어 정통야당의 지지자들마저 정동영에게 투표하기를 포기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소한 지지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도 당 밖에 여부를 묻지 않으면 안된다.


당원이 10만이 넘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종이당원이 아닌 자발적으로 본인인증까지 마치고 당비까지 낸 말 그대로 진성당원들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시끄러운 다수다. 저마다 요구도 다르고 이해도 다르다. 지향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잘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한도가 넘도록 후원금을 입금하기도 한다. 내 정당이다. 내 정치인이다. 더구나 한창 당이 흔들리며 쪼개지려는 상황에 당을 지키겠다 모여든 당원들이었다. 당에 대한 동기나 요인이 이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높다. 대 손으로 내 당의 대표와 내 당의 대통령후보를 뽑겠다. 그런데도 지금에 와서도 당원이 아닌 국민인가.


국민이라고 별다를까. 국민 가운데 지지자가 있고, 지지자 가운데 당원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국민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그래서 배심원제니 뭐니 이상한 소리들을 한다. 모바일도 못믿겠다면서 당원을 불신하며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당원을 배제하고 문재인에 유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배제하고. 권투시합을 하려는데 상대의 주먹이 세니 팔을 묶고, 발이 빠르니 발을 묶고, 맷집이 좋으니 일부러 몸에 멍까지 내고. 그러고도 공정한 경선이라 말한다.


지지율이 높고 본선에서 승리가능한 후보가 선택되는 것이 바로 공정한 경선이다.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충실히 실현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후보가 당원과 지지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공정한 경선인 것이다. 약자와 강자를 인위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닌. 평등은 경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자체가 평등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평등한데 어떻게 경쟁이 되는가.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어떻게 평등을 전제해야만 하는가. 그럴 것이면 지지율이 높든 낮든 사이좋게 손잡고 모두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옳다.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수도 없이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몇 번이나 포기한 끝에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10만의 진성당원이 당을 지탱한다. 당을 지키겠다고 모인 10만의 당원이 당의 모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한다. 아직도 부족하다. 100만, 200만, 지지자는 모두 당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다. 당원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원이란 과연 정당에서 어떤 존재인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달라진 시계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려 한다. 2017년 대한민국의 내일을 결정할 대통령후보로 나서겠다는 이들이다.


정말 괘씸하다.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본다. 지지자들의 필사적인 열망을 본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만 선출될 수 있으면 광화문에서 똥을 싸도 문제없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다. 진짜 입으로 똥을 싸고 있다. 원래부터 반대하는 입장이기는 했었다. 특히 특정인의 경우 정동영의 지지자이기도 했었다. 정동영이 열린우리당시절 당원들을 어떻게 대했었는가.


오로지 진성당원으로만 경선하자는 말은 않는다. 말했듯 아직 당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100만은 넘어야 당원의 뜻이 지지자의 뜻이고 유권자의 뜻이라 여겨도 크게 무리가 없다. 하지만 당을 지키겠다 모여든 당의 주인들이다. 그 당이 요구하고 명령하고 있다. 내가 내 당의 후보를 뽑겠다. 누가 당의 주인인가. 당은 누구에 의해 존재하고 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한심한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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