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취직을 했다. 가까운 곳이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실 그것 때문에 지원한 것이기도 하다. 월급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대신 가깝고 근무환경도 좋다. 내가 무슨 큰 영광을 보겠다고 지금 돈 많이 주는 곳을 찾아서 고를까? 아무튼 그래서 요 몇 주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하여튼 보이는 것이 문닫은 식당이고 또다시 보이는 것이 새로 문여는 식당들이다.


편의점에서도 하루 일해 본 적이 있다. 편의점 알바라도 해볼까 했는데 인간적으로 손님이 너무 없더라. 15분 거리 안에 같은 브랜드 편의점이 최소 두 개 이상이다. 다른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대여섯개 이상은 된다. 내가 하루 일을 배우며 일했던 편의점도 새로 생긴 곳이었는데 사장이 은퇴한 직장인이었다. 나이 먹고 결국 직장에서 퇴직하고 받은 돈으로 따로 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궁리한 결과가 편의점이고 식당이다. 대부분 신규창업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같은 직장퇴직자들이다.


나이 먹고 직장도 그만두었는데 따로 할 일이 없으니까. 불러주는 곳은 없는데 일단 퇴직금으로 상당한 목돈이 들어왔으니까. 그러니까 아무거라도 해야만 한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강박이다. 사실 지금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상당수가 노동에 대한 어떤 강박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놀고 먹는 것은 안된다. 무엇이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제법 큰 회사에서 상당한 위치에까지 올라갔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아파트 경비라도 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누구와 경쟁하게 되는가? 젊은 창업자나 혹은 구직자들과 경쟁하게 된다. 아파트 경비도 큰 아파트에서는 젊은 세대로 구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까 더욱 젊은 구직자들과 비교해서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문제라고 본다. 만일 나이먹고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창업이나 재취업에 나서지 않으면 사실 그만큼 젊은 세대에서 창업이나 취업에 있어 불리한 요소가 사라지게 된다. 나이 먹으면 놀아야 한다. 어차피 퇴직금도 있고 연금도 있는데 그냥 놀고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 복지선진국에서는 나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은퇴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즐기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동안 번 돈으로 열심히 연금을 부어서 그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즐기려 한다. 이들 복지선진국에서 실버산업은 그래서 새로운 경제의 화두다. 돈은 많고 그만큼 소비를 많이 하기에 생산자 입장에서 중요한 시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나이 먹으면 돈이 없다. 돈이 있어도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은퇴할 나이에 젊은 사람들과 창업과 취업을 경쟁해야만 한다. 결국 그렇게 경쟁에서 도태되면 그나마 벌어놓은 돈까지 다 날리고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그런 노년들로 인해 더 가혹한 경쟁으로 내몰려야 하는 청년층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만에 하나 노인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그저 벌어놓은 돈과 연금만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며 자신의 삶을 즐기려고만 하면 어떻게 될까? 정년퇴직한 직장인들의 창업이나 재취업이 크게 줄어들면 경제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될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나의 경우 국민연금 30년 가입연수를 채우고 나면 더이상 일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30년치 국민연금을 더 부을 돈만 미리 확보할 수 있다면 일찌감치 일을 그만두고 그저 벌어놓은 돈이나 쓰면서 국민연급 수급나이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놀고 먹는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번 대가로 나이 65세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는 연금만 받으며 아무 일 않고 그저 놀고 먹는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하나같이 생산과 상관없는 나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소비적인 지출들이다. 만일 그런 노인들이 이 사회에서 다수를 이루게 되면 또한 이 사회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국민연금이 제대로 제도화되고 시행된 것이 불과 20년 안쪽이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아직 국민연금은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충분한 수입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가입연수가 중요하다. 얼마나 오래 연금에 가입해서 보험금을 납입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고서도 연금을 받으려면 일정기간 거치해두어야 한다. 그 것이 또 한 10년 쯤 된다. 아직까지는 5년 정도다. 내가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받은 유인물의 내용대로만 연금을 받아도 아껴쓰면 일같은 것 하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는데.


복지가 그저 단순히 지출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노인들이 충분한 수입을 가지고 지출만 하며 살 수 있다면 사회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된다. 창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재취업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노인들이 바라는 일자리가 바로 청장년층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로 주어지게 된다. 노인들이 쓰는 돈이 새로운 산업과 경제구조를 만들게 된다. 가장 큰 소비자다. 가장 큰 손이다. 노인이 한 사회를 먹여살릴 수 있다.


유일한 희망이다. 10년만 더 일하자. 아니 12년만 더 일하고 그때부터는 벌어놓은 돈을 쓰면서 버티다가 나이 되면 국민연금을 받으며 우아한 노년을 보내자. 기초노령연금이라는 것도 있다. 국민연금으로도 부족한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최저한의 소득이다. 나이먹어서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나이를 먹으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다. 그런 환경이 되어 있다. 어쩌면 미래를 낙관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멀지 않았다. 노동은 결코 신성하지 않다. 단 하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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