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올림픽을 앞두고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쪽에서는 헤비급 선수 하나가 다른 선수들을 그야말로 양민학살하며 결승전까지 모두 1분 안에 KO로 끝내고 있다. 그 옆 링에서는 라이트급에서 선수들이 매번 판정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대표가 선발되고 있다. 복싱팬의 입장에서 둘 중 어느쪽에 더 관심이 가고 어느쪽 선수에 더 기대를 가지겠는가.


착각하는 것이다. 그냥 민주당 대통령후보 하나 뽑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굳이 국제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를 뽑는 것은 선수 개인에게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다. 국가대표로 뽑히고 난 뒤에도 글서 국가대표선수들은 훈련소에서 합숙하며 보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다. 똑같이 자기의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겨루어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겨루었으면 이겨야 한다. 우승까지 하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러기를 바라는 국가와 국민의 기대가 있다. 자체로도 개인의 영광이지만 국가와 국민을 대신하는 국가대표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다. 당연히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는 대회에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선수를 우선해서 선발하는 것이 옳다.


마찬가지다. 이제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대선후보가 되면 장차 치러질 대선에 자기당의 대표로서 출마해야 한다. 상대당 후보와 겨루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가져와야 한다. 그를 위해 치르는 경선이다. 그러기 위해 당원과 지지자들 역시 어떻게든 대선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고르려 눈에 불을 켜고 후보자들의 자질과 품성과 정책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당의 이름을 걸고 대선에 나가 승리하여 정권을 가져올 수 있겠다.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후보가 결정되면 그때부터 당과 당원, 지지자들은 자기당의 후보가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수단을 동원해 돕게 된다. 그렇다면 대선후보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겠는가.


다시 앞서 예로 든대로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주최측이 특정 선수가 너무 강하니 이대로는 경기가 너무 재미없다며 일부러 그 선수에게 불리한 규정을 적용한다. 한계체중도 차이를 두고, 글로브도 다른 것을 쓰게 하고, 무엇보다 판정에서 포인트에 가산점을 준다. 약한 선수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어야 경기가 재미가 있다. 일정부분 맞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선발된 대표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다른 나라 선수와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밖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자기네 선수가 불리하다고 경기의 룰을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테지만 당장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선발된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 겨뤄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렇게만 한다면 대회에 나가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이기고 우승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쓸데없는 노력이고 수고다.


정작 대통령선가가 시작되고 상대당 후보가 자기당 후보에 대해 지지율도 더 높고 강하니 선거의 룰을 바꿔달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의 룰을 바꿀 수 있게 협력해달라 요청하면 과연 좋다고 들어주겠는가. 그런데 오로지 자기당 후보를 선발하는 경선에서만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하겠다 말한다. 약자가 충분히 강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도록 인위로 강제하겠다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대통령후보가 되면 실제 선거에서 다른 당의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


정동영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미련일지 모르겠다. 정동영은 실패했지만 자기는 성공할 수 있다. 정동영이 실패한 그 방법으로 자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정동영의 혐오스럽고 한심한 모습들이 많은 야권지지자로 하여금 그에게 투표하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이명박의 집권을 막기는 막아야 하는데 그래도 도저히 정동영에게 표를 주고픈 마음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바로 자기당의 당원과 지지자들과 등돌리고 거리를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부터 그런 식으로 후보가 결정되면 대선을 보이콧할 수 있다. 표를 주지 않은 유권자의 탓이 아니다. 표를 줄만한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의 탓이다. 전적으로 민주당이 자격있는 후보를 내지 못한 잘못인 것이다.


하여튼 우습다. 고작 그런 깜냥들인 것이다. 대통령후보가 목표다. 대통령후보만 되면 끝난다. 그동안 도저히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되었던 탈당파들이 하던 짓거리 그대로다. 정권은 뒷전이다. 총선의 승리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한가지 당권이다. 당의 주도권이다. 그래서 당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유권자의 냉소만을 받아도 자기 손안에 국회의원 배지과 당권이 쥐어져 있으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 그러니 자기당 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나섰는데 싫다고 지지는 커녕 훼방이나 놓으며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대통령이 목적이 아니다. 문재인을 꺾고 친문을 꺾고 그래서 제 1야당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민주당 경선만 통과하면 잘하면 대통령도 거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생각해보면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많은 종목에서 국가대표선발전을 치를 때마다 잡음이 일고는 하는 것부터 거의 동어반복인 셈이다. 실력은 안되는데 대표는 되고 싶고, 그래서 그런 부류들이 자격도 없는 선수를 대표로 삼아 국제대회에 내보낸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국제대회에서 어이없이 망신을 당하는 이유가 된다. 정당이 추구하는 정권교체라고 하는 목적조차 사유화하려 한다. 떨어져도 내가 떨어진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룰마저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꿔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떨어질 배짱조차 없다. 바로 그놈들의 정체다.


재미있으라고 하는 경선이 아니다. 반드시 경선의 흥행을 노려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도 아니다. 이미 다수의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민주당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것은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자기들끼리 즐기는 게임과 같다. 당원도 지지자도 전혀 상관없이 당이 추구해야 할 목적마저 잊고 만다. 바로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다.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주위도 보지 못한다. 내가 한심하다.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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