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채플이라는 것이 있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들어온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권력을 앞세워서 종교를 강요하던 시간이었다. 더구나 무려 필수과목이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 채플을 반드시 듣지 않으면 낙제처리 되었었다. 바로 그 채플의 한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배우고 돌아왔다는 목사였는데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소재로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네흘류도프가 구원해주려 했음에도 카츄샤는 그를 거부하고 타락의 시베리아로 떠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워낙 인상적이라 지금도 그 대강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어째서 교회에서 미투운동이 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그럼에도 다른 사람도 아닌 신자들에 의해 철저히 묻히게 되었는가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카츄샤를 타락케 - 정확히 매춘부로 전락케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네흘류도프 자신이었었다. 오히려 카츄샤를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려 했던 것도 네흘류도프 자신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카츄샤는 네흘류도프에 대한 증오나 원망조차 없이 차라리 홀가분하게 유형지 시베리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더이상 네흘류도프라는 남성에, 러시아의 구체제에 의존하거나 구속되지 않겠다.


철저히 남성의 입장에서 본다. 하긴 다른 설교에서는 첩으로 삼았던 여자노예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고대유대인들의 여성인권, 정확히 야훼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호하기도 했었다. 듣는 내내 이 뭔 개소리인가 어이가 없어 웃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야훼도 예수도 대부분 교회에서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카츄샤를 강간하여 고통을 주고 마침내 타락하여 죄인이 되게 한 것도 네흘류도프였으며, 그럼에도 카츄샤를 구원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인 네흘류도프였다. 카츄샤는 오로지 남성인 네흘류도프에 종속된 타자이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기독교와 설교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생각나서 끄적여 보았다. 전부터도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던 개신교였지만 그 몇 번의 설교로 개신교에 대한 나의 인상은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건 도무지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 믿을 종교가 아니다. 저런 인간들이 성직자라 불린다면. 그렇다고 다른 설교자들이라도 멀쩡했으면 좋았겠는데 보다시피. 채플 때문에 평생 개신교 믿을 일은 없어진 경우라 할까?


그런데도 자기의 설교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개신교를 믿고 있던 제법 똑똑하고 행동거지도 바른 친구녀석도 저 설교를 열심히 변호하고 있었다. 원래 종교라는 것이 그렇다. 믿음이 이성을 망친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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