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가운데 하나만 선해도 그것은 선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악설을 좋아한다. 성선설은 더 노력할 것이 없다. 악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모두가 선할 수 있으니 그저 악한 것만 찾아 야단치면 된다. 반면 성악설은 어차피 인간이란 악한 존재이기에 그만큼 더 선하려 노력해야 하고 아주 작은 선이라도 마땅히 칭찬해야 할 성취가 된다. 그래서 성선설에는 악인이 많고 성악설에는 선인이 많다.


과연 오뚜기 절대선인가 묻는다면 아마 '갓뚜기'라며 떠받드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동의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기업문화가 그렇다. 아니 그 전에 기업이 그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과 제도와 대중의 인식이 그렇다. 그런데도 굳이 몇 가지 알려진 장점들만을 가지고 오뚜기를 '갓뚜기'라 부르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이 바로 대중이 기업들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몇 가지이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상생과 호혜를 원칙으로 삼으며, 가장 기본이 되는 세금을 회피하거나 탈루하지 말라. 몇 가지 회장 개인의 선행도 여기에 추가된다. 그 만큼이라도 받은 만큼 사회에 기여를 하라.


그만한 정도는 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더 큰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포기했고, 더 작은 기업 가운데 법과 공공의 가치와 윤리를 지키면서 선행을 베푸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중견기업이라 말하는 것은 단지 식품 한 가지에만 주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품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는 시장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한 강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기업이 될 수 있으면 정규직을 고용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면서, 하청업체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고 있다니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다. 최소한 다른 기업들도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오뚜기가 모든 점에서 완벽해서 '갓뚜기'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문제가 없을까?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남들 만큼 해야만 경쟁이 되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남들 아끼는 만큼 아껴야 한다. 줄이는 만큼 줄이고 늘려야 한다면 역시 비슷하게 늘려야 한다. 그래야 뒤쳐지지 않고 다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 유독 다른 기업들과 비교되는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라도 더 나으니 네가 최고다. 다만 몇 가지라도 다른 기업들보다 나으니 네가 훨씬 더 낫다. 그것이 '갓뚜기'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갓뚜기'가 아니라며 열심히 반증자료를 퍼나르는 사람들이나 그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 본질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재벌총수들과 대화하는 자리에 격에도 맞지 않는 오뚜기를 부른 것을 두고 보수언론들이 저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확실해졌다. 한겨레와 경향은 이미 진보라는 노선을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굳이 재벌이라고 하기에 너무 떨어지는 오뚜기를 재벌총수들과 함께 초대하여 대화를 나눈 것은 대중들에 노출된 오뚜기의 미덕을 치하하는 한 편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오뚜기에 문제가 있어도 다른 기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나마 오뚜기만의 다른 기업들과 다른 강점을 재벌총수는 물론 초대받지 못한 다른 기업의 사용자나 경영자들에게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장점은 다른 기업들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은 보수의 가치와 크게 배치되는 것이었다. 보수의 가치에서 대기업이란 자신들과 같이 대중의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세간의 상식이나 윤리, 정의, 법에 구애되어서는 안된다.


청와대도 모르지 않는다. 오뚜기에도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대부분 네티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가 결국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정부로 흘러가게 된다. 더구나 일개 네티즌까지 알 만한 기업의 사정이라면 경제부처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속속들이 꿰뚫을 수 있다. 그런데도 오뚜기를 불렀다.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부른 것이다. 그러면 그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한겨레도 경향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맹목적 증오에 눈이 멀어 그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은 공산주의 혁명을 하듯 아예 기업을 적대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나마 더 나은 기업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인가. 단 하나라도 더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른 대상보다 더 나은 것이다.


그러려니 한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갓뚜기'라는 말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었다. 원래 이 나라에 그런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좋기만 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원가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 어디선가는 다른 기업들만큼 원가를 쥐어짜고 마진을 높여야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장점이 있다. 그들의 선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인정한다. 선이란 원래 선한 것이 아닌 선하려 노력하는 데 있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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