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서, 그러면 FHD라고 하는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며 그 격차가 확연해진 가정용게임기의 그래픽은 이제 PC와 비교해서 도태되는 과정에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한다. 이제는 가정용게임기보다 PC의 그래픽이 더 좋다. 더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자 한다면 당연히 가정용게임기가 아닌 PC에서 게임을 즐겨야 한다. 가정용게임기는 서서히 사양세에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래서 굳이 지난 글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가며 원래부터 가정용게임기의 게임그래픽이 PC의 그것에 비해 우위에 있지 않았음을 역설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었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었다. 사람들이 가정용게임기의 게임그래픽이 PC의 그것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다 여겼던 시절에도 PC의 게임그래픽은 가정용게임기보다 최소한 한 발 이상 앞 서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차이가 나오는가.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


PC로 게임을 할 때 모니터와의 거리는 아무리 멀어봐야 1미터 이내다. 그런데 가정용게임기로 게임을 할 때는 TV와의 거리 만큼 자연스럽게 벌어지게 된다. 아무리 TV가 좋아도 PC모니터처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머리까지 바짝 갖다대고 보지는 않는다. 거실에 있는 TV는 항상 그 이상 거리가 벌어진다. PC모니터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40인치 이상의 크기마저 자연스러워지는 거리다. 과연 그 정도 거리에서 게임화면의 픽셀 하나가, 이펙트 하나가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거나 느껴지게 될까?


320*240의 저해상도지만 29인치 이상의 TV화면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만큼의 거리를 벌렸을 때 낮은 해상도로 인한 픽셀의 크기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세세한 표현 하나 효과 하나가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PC의 환경과 다르다. PC환경에서는 27인치 크기에 FHD의 해상도도 픽셀이 너무 크게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TV에서는 그보다 더 큰 화면에 그보다 적은 해상도에서도 픽셀의 크기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느껴지지 않는다. 보다 더 생략하고 간소화해도 거리가 멀어진 만큼 그 크기는 상쇠된다. 대신 PC모니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화면만이 남는다. 서로가 느끼는 체감도 목적도 다르다.


더구나 PC에서 가능한 최상의 그래픽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아직도 가장 성능 좋은 그래픽카드는 대부분의 소비자에게는 아직 너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메인스트림급 그래픽카드조차도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요구한다.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 있는 사람들이 사실과 전혀 다르게 가정용게임기의 게임그래픽이 PC의 그것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 기억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고사양으로 모두 맞추려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사양만으로 컴퓨터를 맞추고 그 범위 안에서 사용한다. 가정용게임기는 이미 모든 것이 최적의 게임환경을 위해 맞춰진 채 출시된다. 게임만을 목적으로 하기에 불필요한 부분이 제거되어 가격까지 저렴하다. 가정용게임기의 운영과 관련한 수익모델 역시 한 몫한다. 그래픽카드 하나 살 돈이면 아예 가정용게임기 본체 하나를 살 수 있다.


매번 하고 싶은 게임을 위해 최적의 하드웨어를 갖추지 못할 것이면 아예 하드웨어에 맞게 세팅되어 게임들이 출시되는 가정용게임기 쪽이 훨씬 경제적으로 이익일 수 있다는 말이다. 최소사양이 어떻고 권장사양이 어떻고 따지기 전에 개발사에서 이미 기존의 가정용게임기를 기준으로 게임을 만들고 세팅해서 내놓는다. 유저가 게임을 위해 해야 할 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메뉴얼에 적힌 대로 전원을 넣고 게임을 구돌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PC는 간단한 작업을 하려 해도 부팅부터 번거로운 일이 적지 않다.


어째서 외장형 그래픽카드의 시장이 가정용게임기의 시장보다 더 커진 지금도 사람들은 가정용게임기만을 이야기하는가. 그동안 리테일시장에서 팔려나간 외장형 그래픽카드의 절대다수는 가정용게임기 이하의 보급형 모델인 경우가 많다. 게임을 즐기는 거의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정용게임기 이하의 환경에서 게임을 즐긴다. 당장의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부담스러워 게임 자체를 망설이는 경우마저 적지 않다. 가정용게임기는 게임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지금의 모델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전혀 아무런 걱정도 궁리도 필요없이 그저 가정용게임기만 구동할 수 있으면 모두 즐길 수 있다.


가정용게임기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게임을 하는 장소다. TV는 거실에 있다. PC는 개인의 방에 있다. 가정용게임기는 거실에서 가족은 물론 찾아온 모두와 함께 즐길 수 있다. PC용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니터 앞에 앉은 한 사람 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정용게임기에 대해 부정적인가. 이미 첫머리에 썼다. TV와 PC는 최적의 거리가 다르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 아직 게임은 가족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방에서 자기 혼자서 즐기는 것이다. 자기 방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TV와 PC의 거리차이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오히려 크기의 차이로 인해 TV의 단점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아직 게임은 혼자서 즐기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다. PC와 가정용게임기가 놓이는 장소다. 그것이 두 하드웨어의 차이를 만들었다. 두 하드웨어에 대한 오해의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고려하여 각자 자기가 원하는 플랫폼에 맞춰 게임은 발매된다. PC의 성능이 아무리 가정용 게임기의 그것을 한참 넘어섰어도 여전히 가정용게임기가 유효한 이유다. 하드웨어의 차이와 상관없이 가정용게임기여야만 하는 게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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