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데, 국가의 정책과 예산은 오로지 국가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 기업의 정책과 예산 역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 물론 순수하게 학술적으로 지원하는 예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학문은 순수할지 몰라도 국가의 정책까지 순수해서는 안된다. 그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라 할지라도 연구결과에는 국적이 따라붙는다. 당장 노벨상수상자만 하더라도 이름 뒤에 어느 나라 출신인가를 함께 쓰고 있다. 공동체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보다 문화적으로나 학술적으로도 고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학계나 역사마니아들의 우려에도 공감하는 바가 있기는 하다.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하면 대개 엉뚱한 지역행사에 눈먼돈으로 흘러들어가기 쉽다. 실제 학술적 연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 소모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역사연구를 하라면서 연구예산은 없고 그를 빙자한 지역사업만 늘어난다. 오히려 역사가 소외된다. 하긴 그런 점에서 시작부터 허튼 짓을 못하도록 단도리를 칠 필요도 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 그러니까 국책사업으로 국가적 목적을 위해 역사연구에 지원하려면 제대로 연구자들에게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결과야 연구자들의 양심과 능력에 달린 일이다.


국가정책이란 정치적이어야 한다. 당연히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정책도 수립되고 예산도 배정된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인간이 이루는 모든 사회는 정치적인 원리와 동기에 의해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바라는 것은 영호남의 통합을 위한 가야사연구다. 가야사연구를 통해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최소한이나마 해소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인가는 최종실무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학자들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그런 목적의 연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야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관심이 있는 이들이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아 해당 연구를 해야만 한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모든 연구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앞서도 말했듯 정책연구가 아닌 순수연구에 대한 지원은 이전과 동일해야 한다. 아니라면 내가 먼저 까고 본다.


우려도 이해하고 이유도 동의하는데 그럼에도 너무 앞서가지는 말았으면 바라는 이유다. 학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학문연구에 개입하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여건이다. 연구자의 절대수도 적고 환경도 지원도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하다. 정부가 기침 한 번 만 해도 뒤집힐 정도로 초라하다.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도 좋지 않을까. 의도와 다른 글이 되고 말았다. 정말 힘들다. 한국 고대사라는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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