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화폐가치의 과잉에 대해 우려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실물가치보다 유통되는 화폐가치의 총량이 3배나 많다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안있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자본주의란 화폐 그 자체를 수단으로 삼아 생산을 하는 체제인데 정작 투자대상이 되어야 할 현물가치가 따라오지 못하니 결국 그런 무리수가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넘쳐나는 화폐가치를 소비해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최근 비트코인을 필두로 끝을 모르고 오르는 가상화폐시장을 보며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과연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하는 가상화폐들이 실제로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 가상화폐가 얼마나 화폐로서 쓰일 수 있을 것인가 확실한 전망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그다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상화폐로 몰려드는 이유는 돈을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돈은 있는데 그 돈을 불릴만한 마땅한 대상이 없다 보니 투자처로서 가상화폐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하면 오른다. 일단 사놓으면 가치가 뛴다. 그런 대중의 믿음이 가상화폐의 가치를 담보한다. 부동산 거품과 같다. 부동산을 사면 오른다는 믿음이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동산에 투자하게 만들고 실제로도 부동산의 가치가 오르도록 만든다. 다만 그같은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나 일본의 버블붕괴처럼 대규모 공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실제와 믿음의 괴리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결국은 시간싸움이다. 거품이 꺼지기 전에 완벽하게 가상화폐를 현실화폐로 통합시키느냐. 가상화폐를 현실에서 실제 유통함으로써 실질가치를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가. 그렇게 되면 가상화폐는 더이상 투자가치가 아니게 된다. 지금 투자대상으로서 가상화폐가 주목받고 끝도 없이 가격이 오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불확실성에 있으니까. 어떻게 될 지도 그러니까 앞으로 얼마의 가치를 가지게 될 지도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확실한 미래와 가능성을 보고 돈을 투자하게 된다. 잘되면 대박이고 안되면 쪽박이다. 물론 쪽박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거의 없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오를 것을 알면서도 감히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유다. 설사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부러워하지만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용기다. 나는 그런 불확실성에 무리하게 돈을 쏟아부을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국민연금에 더 넣어둔다. 그동안 납부하지 않은 국민연금을 추가로 더 납부해 둔다. 그에 비하면 그들은 그런 불확실성에도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한 탓에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 공짜가 아니라. 리스크가 크기에 이익도 큰 것이다. 그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으면 돈을 벌고 아니면 벌지 못한다. 나는 당연히 후자다.


과연 가상화폐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원래 부동산의 가치라는 것도 떨어지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거품으로 평가받는 법이다. 떨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높아도 그것이 실제의 가치다. 부동산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결국 시장에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남아돈을 투자하기에 가장 안정적인 대상이 부동산이기에 생산이 증가하는 만큼 부동산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투자해서 돈 벌 곳이 없다. 그러나 과연... 아직까지도 불안하다. 역시 믿을 건 연금이다.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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