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오래전 글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이 블로그에 쓰기는 했던가? 나는 내가 쓴 글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튼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번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미국의 달러와 천문학적인 적자라고.


경제가 성장하면 비례해서 더 많은 화폐를 요구하게 된다. 물론 많은 경우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더 많은 화폐를 유통시킬 여유를 가지게 된다. 문제는 근대 이후의 실물화폐 역시 절대량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무한정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의 양을 늘릴 수 없었다. 일단 광산이 있어야 하고, 채굴해서 정련해야 한다. 그 양과 속도가 경제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바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 역사상 화폐의 부족으로 인한 공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 화폐제도 자체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근대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근대 이후의 화폐들도 대부분 태환화폐로써 발행되고 있었다. 정부가 보유한 금의 양을 전제로 언제든 사용자가 요구하면 교환할 수 있을 만큼의 화폐를 발행해서 유통했다. 화폐의 양은 곧 정부가 보유한 금의 양이었다. 따라서 경제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통화정책 자체가 불가능하다시피 했었다. 수없이 그로 인해 공황이 일어나고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 만일 지금까지도 미국의 달러가 전통적인 태환화폐로써 존재하고 있었다면 지금 세계의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다시피 하게 된 순간부터 미국 자신이 가진 자산만으로 달러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가지는 세계에서의 지위와 그에 따른 신용을 바탕으로 달러를 불태환화폐로 바꾸었다. 미국 자신이 가진 신용으로 달러의 가치를 보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재정 및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세계에 그 달러를 풀었다. 오히려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은 달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무한히 증식하는 화수분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래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만.


아마 비트코인의 총량이 2100만 코인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발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제다.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화폐의 총량은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한데 정작 화폐의 양 자체가 고정된 채 더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이다. 달리 전황이라고도 부른다.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탓에 더이상 화폐를 교환수단이 아닌 투기의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 시장에서 화폐가 사라진다. 과연 지금 비트코인을 화폐로 쓰게 한다고 시장에서 물건 사는데 쓰는 간 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트코인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세계의 경제가 성장도 후퇴도 않는 절대안정 상태 뿐이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무한히 발행한다면 그 가치는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 한정된 발행이기에 가지는 가치인 만큼 그 자체로 이미 화폐로써 기능을 제약당한 상황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 주장한다. 비트코인은 실제 화폐로 쓰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금과 같이 여기면 될 것이다. 어폐가 있는 것이 금이 얼마의 화폐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가 얼마만큼의 금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가치다. 화폐 자체가 금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달러는 얼마 만큼의 금의 가치를 가진다. 1프랑은 얼마 만큼의 금의 가치를 대표한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화폐들이 무게의 단위로 통용되고 있었다. 금 뿐만 아니라 은이든 구리든 자신이 가진 가치로써 화폐의 형태로 거래되고 있었다. 돈 한 냥은 은 1냥이었고, 구리돈 1문의 가치는 은 1냥에 대한 구리의 가치변화에 따랐다. 기준은 은 한 냥이 구리돈 100문이었지만 은이 귀해지거나 아니면 구리가 부족해서 구리돈이 가벼워지면 최대 400문까지로 가치가 바뀌고는 했었다. 그래서 비트코인에는 어떤 실질적인 유의미한 가치가 존재하는 것인가. 굳이 교환수단이 아니더라도 귀금속으로, 혹은 산업용으로 큰 가치를 갖는 금에 비해 투자가치 이상 비트코인이 가지는 가치란 무엇인가.


발행주체가 없기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화폐라는 주장부터가 몇몇 공장에서 비트코인을 독점적으로 채굴하고 있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차라리 기존 화폐의 발행주체는 공적인 기관인 정부였었다. 이제는 사인들이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며 지배하고 있다. 탄력성이 없다는 주장을 철회한다. 가장 많은 화폐를 보유한 이들이 사적인 목적으로 그 지위를 이용하려 했을 때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면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린다. 정부의 규제대상이 되는 순간 지금의 자율성은 위축되고 투자의 가치도 훼손된다.


지금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바로 후발주자들의 참여다. 모든 투기가 그렇다.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후발주자들을 끌어들여 거꾸로 지속적인 가치상승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전형적인 다단계의 방식이다. 새로운 참여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가치를 유지시키고 상승시킨다. 그래서 어느 순간 더이상 새로운 참여자가 나타나지 않게 되면? 더이상 그들의 논리와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사람들이 참여를 거부하게 된다면? 그러면 오히려 가상화폐의 가치는 안정되어 화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곧 더이상 가상화폐가 투자대상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당장 세계적으로도 가상화폐의 거래에 열심인 나라가 셋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나가 미국, 다른 하나가 최대거래국인 일본, 또 하나가 한국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중국에서도 열심히 채굴만 할 뿐 정작 거래 자체에는 소극적이다. 언제까지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가상화폐가 뭔지도 모르고 얼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돈이 된다니까 뛰어드는 묻지마 투자가 밀려들고 있다. 그래서 불과 몇 주 사이에도 비트코인의 가치가 몇 백만 원이나 오르고 심지어 해외보다도 더 비싼 값에 거래 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것을 정상이라 여겨야 할까?


하지만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말조차 귓등으로 듣는다. 오히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앞세워 반발한다. 어찌되었거나 돈이 벌린다. 이익이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참여자가 나타난다. 쉽게 끝나지 않을 막장의 릴레이다. 그게 무서워 당분간은 상승할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지 못하겠다. 어리석은 욕망이 이어질수록 가상화폐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2000만원이 넘었다 한다. 역시나 그래도 후회는 된다. 나도 좀 넣어봐야 했을까? 하지만 역시 간이 작은 사람이 할 짓은 못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할 짓도 못된다. 과연 내가 넣었다면 때맞춰 뺄 수는 있을까? 남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알아서 하겠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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