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이야기들에서 해피엔드라면 주인공은 부자가 되고 신분이 상승되는 것으로 끝나고 했었다. 아니 아예 이제는 처음부터 부자이고 귀족인 주인공들의 자신과 다른 삶을 지켜보는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 이야기속에서라도 자신은 그들이 된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바란다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란다고 모두가 신분이 높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사회가 보유한 전체 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 부자가 되기 위해 더 가져간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을 덜 가져야만 한다.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사회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부자라면 부자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다. 부자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부자다. 모두가 부자라면 모두가 부자가 아니게 된다. 그러면 부자가 되지 못한 - 혹은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정의다. 그것만이 선이다. 그것만이 삶의 목적이고 의미다. 가치다. 그래서 초기자본주의에서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그들을 징벌하는 것이 가능했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불이익과 차별은 그들이 다시 부자가 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게 하기 위한 채찍으로 여겨졌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베풀면 그들은 스스로 노력하기를 포기할 것이고 끝내 부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복지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일하며 누릴 수 있는 그 이하만 주어져야 한다. 가난이 죄가 되고 사회가 그를 징벌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모두는 부자가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가? 확실히 가상화폐로 가장 시끄러운 나라 셋이 미국, 일본, 한국이다. 정부는 제재하지만 중국인의 가상화폐 참여열기 또한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돌파구로 가상화폐를 이용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들은 모두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동기와 목적이 남다르게 강한 나라들이다. 심지어 돈을 벌지 못한 것에 대한 사회적 관습적 제재 또한 상당히 강력한 나라들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반대로 부자가 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며 그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부자가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실력에 대한 보상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채찍이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단지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의지를 포기하게 만들 뿐이다. 차별도 착취도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부야말로 정의이고 목적이고 가치이며 도덕이다.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사회에 죄를 짓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위에서 대다수가 같은 조건인 상태에서 출발해서 경쟁한 경험이 있었다. 부자가 되기보다 그저 당장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런 가운데 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부자가 되기도 했었다. 타고난 조건이 아닌 개인의 성실함과 노력만으로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억을 그런 가운데 다수가 공유하게 되었다.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자기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못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게으르고 못난 사람들을 굳이 사회가 도와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모두가 노력만 하면 자기처럼 부자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않았던 사람들을 자기 돈을 들여서 도와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만큼 더 그들이 고통받게 해야만 그들도 부자가 될 동기를 가지게 된다. 정이 많은 한국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것마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모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공포일 것이다. 이대로 가난한 채로 남겨질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부자가 되지 못한 채로 뒤쳐져 있을 수는 없다. 자기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도 남들처럼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존엄한 존재로써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사람들이 유독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남들 하는 것은 다 따라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의 존엄은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곧 도태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언제고 자기가 한 걸음만 늦어도 모두는 자신을 버리고 자기들끼리만 멀리 가버릴 테니. 어린 시절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탓에 버림받았던 기억이나 학교에서 단지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소외당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본능처럼 깊숙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남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로스쿨과 관련한 논란 역시 그런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직업상담사 자격증과 관련한 논란 역시 동기는 비슷하다. 공평함에 집착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불공평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자기에게만 불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만 유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원래 그런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런데도 굳이 특정한 분야에 대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고집한다. 자기에게 불리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거부하려 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기만 남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남들만 앞서 갈 수 있다는 무서움이다. 모두는 자신과 같아야 한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여러 주장과 경험담들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째서 가상화폐를 해야 하는가? 왜 가상화폐를 하고 있는가? 결국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다. 그보다는 자기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다. 남들은 돈을 버는데 자기만 벌지 못하는 것이 어쩐지 억울하게 느껴져서다. 남이야 돈을 벌든 말든. 얼마를 벌고 얼마를 잃든. 물론 나도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로또를 사고 있다. 다만 내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하고픈 일만 하면서 편하게 놀고먹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가상화폐는 맞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널뛰기하는 가격을 매번 확인해가며 한다는 것은 또 하나 노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돈버는 것 말고는 보람없는 노동이다.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을까?


돈만 벌 수 있으면 된다. 뭐가 되었든 돈을 벌 수 있으면 상관없다. 사실 가상화폐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같은 기대심리다. 가상화폐를 사면 돈이 된다. 가상화폐를 사서 가격이 오르면 자기들도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너도나도 가상화폐를 사고 그래서 가상화폐의 가격이 오른다. 어째서 가상화폐가 돈이 되고, 어떻게 가상화폐로 돈을 벌 수 있는가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상화폐로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을 비웃는다. 돈을 번 사람들은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을 비웃고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은 비웃음을 견디지 못하고 가상화폐시장으로 뛰어든다. 질투와 공포의 투기판이랄까? 그렇게라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랄까?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것이 있다. 복지란 모든 개인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정책이란 모든 국민을 부자로 만드는데 있어서는 안된다. 굳이 부자가 될 필요 없이 가난한 채로도 잘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아프면 병원 가고, 배고프면 굳이 좋고 비싼 것은 아닐지라도 배곯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작더라도 집이 있다. 가끔 영화도 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마음먹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렵더라도 일단은 시작해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이 가진 부와 상관없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아마 유럽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국사람이라고 모두가 가상화폐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만족한 삶이 현실에 있다면 가상화폐란 위험한 도박판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라 할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선이고 정의다. 도덕이고 윤리다. 가치고 규범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그 자체로 악이고 죄다. 응징하고 징벌하고 그래서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기에 항상 그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사기든 범죄든. 제국주의의 첨병은 바로 그런 돈을 벌고자 했던 시민들이었다. 남의 땅을 쳐들어가 그들을 약탈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저지르고. 혹시라도 뒤쳐질까 경쟁적으로 그렇게 침략에 앞장섰다.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건재한 동안 가상화폐 시장은 든든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누가 돈을 벌고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와는 상관없이 종교처럼 믿음이 떠받쳐 가상화폐 시장을 지탱할 것이다. 알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 전혀 가치없어 보인다는 것이 괜히 끼어드는 것조차 창피해지게 만든다. 물론 나만의 사정일 뿐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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