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예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야말로 유례가 없는 경우일 것이다. 기껏 비슷하다고 찾은 것이 조선시대 왕족은 고신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중세유럽에서 봉건영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왕에게 손잡고 항거한 정도였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 조선시대에도 왕족 간에 견제가 있었고, 중세유럽에서도 봉건영주들끼리 그야말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아니다. 최소한 한국 언론 사이에는 어떤 견제도 경쟁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언론이 전혀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오보를 내도 되는 이유인 것이다. 언론이 언론을 비판하지 않는다. 언론이 다른 언론의 보도를 전혀 확인하거나 검증하려 하지 않는다. 설서 오보가 있어도 그를 정정하는 방식은 아예 다른 이야기인 양 새로운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가 심지어 KBS 내부에서도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얼마전에는 저널리즘 토크쇼J를 공격하기 위해서 KBS 내부가 조선일보와 손잡기까지 했었다. 언론이 언론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언론이 언론의 보도를 검증하려 해서는 안된다. 언론의 사실확인과 비판은 오로지 언론 이외의 대상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의 원칙이다.

 

그래서 유시민 이사장도 저널리즘 토크쇼J에 출연해서 말한 바 있을 것이다. 언론은 다른 언론과 절대 논쟁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부를 향해서만 꾸짖고 가르치는 기사를 쓰려고 한다. 정작 다른 관점에서 서로 논쟁적인 내용들임에도 언론끼리 서로 마주보고 기사를 쓰기보다 나란히 서서 정부만 바라보고 기사를 쓰고 있다. 물론 여기서 정부란 민주정부다. 보수정부 아래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보았듯 정부가 시키는대로 그저 두 손 곱게 모으고 받아쓰기만 하는 것이 고작이었었다. 대신 그래서 보수정부에서는 민주당이 정부를 향한 불만까지 대신해서 배설하는 창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정부의 실정조차 모두 야당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다. 얼마나 서슬퍼런 비판인가. 야당이 잘했어야 정부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또 지금은 어떨까?

 

아무튼 그런 것이 언론의 본질이란 것이다. 분명 한겨레도 취재를 했었다. 안성 쉼터를 팔았던 당사자에게 실제 공사비가 얼마이고 원래 팔려 했던 가격은 9억 정도였다고, 오히려 손해까지 감수하며 좋은 일 해 보자고 싸게 팔았던 것이었다며 기사 안에 분명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의혹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에서 원가는 그보다 더 쌌을 것이라며 터무니없이 비싸게 산 것이라며 의혹을 보도하고 있었다. 비판해야 하지만 따라간다. 당사자가 그렇게 인터뷰했음에도 조선일보가 그리 주장했으니 정의연은 그에 대해 성의있게 해명해야 한다. 직접 취재까지 하고서도 다른 언론의 기사를 부정하고 비판하기보다 차라리 인터뷰내용을 부정한다.

 

코링크PE 사모펀드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도 익성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일찌감치 보도하고 있던 한겨레가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재판정에서 그와 관련한 증언들이 나왔음에도 철저히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칫 재판과 관련해서 다른 언론과 다르게 변호인측 심문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보도할 경우 다른 언론의 보도와 상충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아무리 다른 언론의 기사를 못믿을 거짓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자신들이 익성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이미 보도한 상태임에도 그래서 재판관련 기사에서는 철저히 그 사실을 숨겨야만 한다. 그러므로 어떤 언론도 편향되거나 왜곡된 보도를 한 것이 아니게 된다.

 

어째서 한겨레와 경향은 그토록 채널A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 철저히 입다문 채 아예 없는 일인 양 보도조차 거의 않고 있는 것인가. 한명숙 수뢰사건과 관련해서도 한겨레의 입장은 철저히 검찰에 맞춰진 상태다. 검찰의 해명이 더 논리적이고 타당성있다. 한겨레 기자들이 직접 자신들 채널을 통해 했던 말이다. 언론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15년도 더 넘은 것 같다.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들이 보수언론들과 기사를 통해 이념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분명 이념도 전혀 다르고 사회정치적으로도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르니 서로 비판하며 대립하는 모습도 때로는 보여야 했을 텐데도 그런 모습 같은 건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보이지 않았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보수언론과 보조를 맞췄으며 정부를 비판하는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그들은 그냥 언론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입장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싸워 그들을 굴복시키고 개조해야만 한다. 단, 만만한 권력에 대해서만. 그런 그들이기에 자칫 같은 언론에 상처입힐 수 있는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는 것조차 꺼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검언유착을 보도한 MBC야 말로 더이상 언론조차 아닌 그냥 친정부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은 반대해도 MBC에 대한 압수수색은 부추긴다. 채널A 기자에 대한 수사에는 비판적인데 MBC에 대해서는 수사가 소극적이라며 비판한다. 심지어 채널A 기자를 위해서 무려 대검이 전문자문단을 소집한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아무런 비판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은 하나다. 모든 언론은 하나여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카르텔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언론은 카르텔이다. 이미 언론 자체가 하나의 이익집단이다. 이념도 무엇도 없는 그냥 그 자체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어제도 한국경제에서 말도 안되는 기사가 하나 튀어 나왔었다. 보는 순간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환경부에서 묶음할인을 규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비판했어야 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마땅히 이런 기사에 대해서는 바로잡고 오보에 대한 비판이 나왔어야 했었다. 하지만 거의 없었다. 왜? 언론이니까. 그래서 차라리 그런 오보조차도 받아서 같이 오보를 내고 만다. 그렇게 모든 언론이 같이 오보를 내면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는 것을 이미 그들 스스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이 한 목소리로 같은 기사를 내면 행정부에서 반응하며 기정사실로 바뀔 수 있는 것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당히 오보를 낼 수 있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오보를 비판한다면 그들이 더이상 언론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언론에서 최근 열심히 하고 있는 팩트체크라는 것도 그래서 대부분 다른 언론의 보도보다는 유튜브 등 자신들이 언론이라 여기지 않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언론이 언론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언론이 언론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언론이 아닌 다른 어느 주체도 대상도 언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김어준이야 원래 무시당할 짓을 많이 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유시민이 그토록 언론으로부터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이유였다. 하필 유시민이 공작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검언유착에 침묵하고 있는 그 모든 언론들이 당시 협력을 약속했던 당사자들이라 보는 것이 옳다. 공범이기도 한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침묵해야만 한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언론 스스로는 언론의 오보를 절대 비판하지도 바로잡지도 못한다. 언론은 이미 언론의 오보에 대한 자정기는을 스스로 포기한 상태다. 오히려 오보를 기정사실로 만들려 협력하는 경우가 더 많을 지경이다. 카르텔이다. 그런 언론을 대상으로 오보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 것인가. 언론은 그냥 다 같은 언론이다. 다른 언론은 없다. 그 사실만 명심하면 된다. 언론은 언론이다.

경향일보야 더이상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참여정부시절부터 경향일보는 반민주라는 한 가지 노선을 확정하고 일관되게 그 방향을 추구해 왔을 것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민주당만 빼고 다른 어느 정당이라도 상관없다. 미래통합당이라도 좋다. 아니 미래통합당이라서 더 좋다. 반면 한겨레는 가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 정도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곧잘 보이고는 한다. 그래도 아직은 진보언론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것은 아닐까?

 

사실 한 가지 경우만 제외하면 한겨레도 제법 멀쩡하게 진보언론다운 기사도 쓰고 할 것이다. 진보언론답게 사회의 그늘진 곳을 비추며 약자를 위한 기사를 쓰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기도 하다. 다만 그 한 가지 경우가 문제라는 것인데, 바로 '언론'의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참여정부 시절 기자실의 폐해를 직접 확인하고 폐쇄하기로 결정했을 때 한겨레가 조중동과 한 몸이 되어 반대하고 나선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긴 그 전부터도 기자실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야마를 정해주면 한겨레 역시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을 것이다. 기자실이 폐쇄되면 더이상 조선일보의 야마를 받아서 기사로 쓰지 못한다. 정부를 비판하지 못한다.

 

작년 조국사태에도 역시 한겨레 기자들은 누구보다 날선 기사로 조국 전장관과 가족을 비난하고 조롱해야 하는 이유로 다른 언론사로부터 비웃음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앞세우고 있었다. 자칫 다른 언론사들과 다른 기사를 내거나 할 경우 그들로부터 어용언론이라는 조롱과 함께 따돌림까지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보수언론이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그들과 함께 조국 전장관과 일가족을 공격하는 기사를 써야만 했던 것이었다. 얼마전 정의연 논란의 경우에도 뻔히 내막을 아는 상태에서도 조선일보가 의혹을 제기했으니 정의연은 해명해야 한다며 따라가는 기사를 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었다. 자신들도 언론이기에 다른 언론사들과 보조를 맞추며 그들을 거스르려 해서는 안된다.

 

당장 그동안 다른 언론사들과 맥락이 다른 보도를 곧잘 내놓았던 MBC가 그들 언론사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본다면 바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MBC는 정부의 입장에서만 보도하는 어용언론이기에 그 보도의 신뢰성을 전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MBC가 첫보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언론도 받아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검찰의 사주를 받고 취재를 빙자한 협박을 일삼으며 특정한 개인을 음해하려 했던 채널A 기자에 대한 수사는 반대하면서, 정작 그 사실을 보도한 MBC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까지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마저 쏟아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MBC는 언론도 아니다. 그러므로 MBC에 대한 어떤 수사도 탄압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그러나 채널A는 같은 편에 선 언론이므로 어떤 정당한 수사조차 함부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성명을 낸 기자협회의 회장이 바로 한겨레 기자라는 것이다.

 

그렇게는 되기 싫다. 그러니까 언론으로서 언론의 입장에서 보도를 시작하면 한겨레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언론들이 나서서 언론의 이해를 걸고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어찌되었거나 무조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더라도, 중간에 다른 기사가 나가더라도, 절대 그 방향만큼은 거슬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코링크PE의 익성실소유주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도하고서도 이후 조국 전장관과 일가족과 관련한 기사들에서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언급한 적 없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 합심해서 조국 전장관과 그 가족들을 죽이려 하고 있는데 한겨레만 다른 길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 윤미향과 정의연을 죽이려 한다면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더라도 모른 척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대협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도, 위안부운동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가지는 의미도 모두 알지만 다른 언론과 맞춰야 하기에 모르는 척 따라가야 한다.

 

문제는 그러면 과연 누가 결정하는가? 지금의 사안이 언론 전체의 문제라고 누가 판단하고 모두에게 선언하는가? 그래서 기자들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으로 조선일보와 TV조선이 항상 꼽히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먼저 치고 나간다. 조선일보 기사를 아예 보지 않으니 정확히 어떤 키워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먼저 치고 나가며 이것이 언론 모두의 문제라 선언하면 그때부터 모든 언론이 달려들며 그야말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방향으로 기사들이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언론의 사명을 걸고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라며 비장하게 선언하면 성전에 임하는 기사들처럼 기자들 역시 조선일보를 쫓아서 아무거라도 기사를 쏟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차라리 자신들의 신념에 의해 반문과 반민주당을 선택했던 경향일보에 비해 한겨레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종속되어 버렸다. 스스로 같은 언론으로서 다른 언론과 다투거나 혹은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결심한 순간 조선일보가 주도하는 이슈에 스스로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더 헷갈리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한겨레는 멀쩡한 진보언론인 것이다.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들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여전히 적극적이고 열정도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가 앞서서 치고 나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 뒤를 쫓느라 어제 자신이 했던 이야기마저 뒤집기 일쑤다. 아니 오늘은 조선일보를 쫓아 그들이 만든 프레임 안에서 기사를 쓰다가 내일은 또 엉뚱한 소리를 딱 거스르지 않을 만큼 흘리는 경우마저 있다. 하긴 그러고보면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더 나은 조건의 직장에 경력직으로 들어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기는 할 것이다. 삼성에 가방셔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면 돈도 많은 보수언론에 경력직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하게 미래를 보장받는 길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 한겨레의 모습이다. 어떤 때는 진보적이다가 어떤 때는 조중동과 다르지 않다. 본질은 후자에 더 가깝다. 정작 중요한 순간은 바로 후자의 기사를 내보낼 때이니.

 

결국 '진보'언론이 아닌 진보'언론'이기를 선택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경향일보가 나을지 모른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지금의 노선이 진짜 '진보'라 여기고 있는데, 한겨레는 진보보다는 언론이기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기에 언론으로서 감히 보수의 프레임을 거부할수도 거스를수도 없다는 것이 지금 한겨레의 모순인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는 진보언론인가? 차라리 경향일보를 진보언론이라 부르는 게 옳겠다. 자칭이기는 모두 같지만.

그러고보면 보수정치인이나 보수지지자들이 언론에 대해 무어라 말하든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보수정치인이 특정 언론사의 취재를 막는다고 언론탄압이라며 반발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보수지지자들이 특정 언론사를 찾아가 시위하거나 비난한다고 파시즘이라 비판하는 경우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예외다. 심지어 명백한 범죄행위인 협박취재에 대해 수사하려는 것마저 언론탄압이라고 자칭 진보언론들마저 나서서 비판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하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한겨레가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 역시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한겨레를 신뢰하고 구독해 온 독자들이었을 텐데도 경력도 오래된 베테랑 기자가 나서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었다.

 

"덤벼라, 문빠들아!"

 

그 기자만이 아니었다. 최근 김용민tv에 출연해서 자기들은 아닌 척 입바른 소리를 떠들어대는 미디어오늘의 기자도 역시 참전했다가 도매급으로 욕먹고 있었다. 심지어 기사를 통해서 정작 욕을 들었던 지지자들의 분노와 반발을 '댓글폭탄'으로 매도하는 표현을 쓰기도 했었다. 경향일보도 끼어들었는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심정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 문빠 폭도새끼들. 저 깡패새끼들. 물론 나도 가끔 대놓고 블로그를 통해서 문빠들을 그렇게 욕하기는 한다. 다만 차이라면 나는 그냥 같은 시민의 입장이고, 저놈들은 언론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왜 저리 미쳐 날뛰는 것인가. 자칭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어째서 문재인 정부나 그 지지자들에 대해 저토록 적대적인 것인가.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것을 보면서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어째서 저토록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지식인이면 민주당의 편에서 어떤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듯한 모습이다. 우연히 누군가 링크를 건 한겨레의 어느 칼럼에서 진중권의 행동을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견제라며 애써 선의로 포장해주는 내용을 보면서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저 무도한 무지렁이들이 감히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자칭 진보들과 어울리며 느낀 것 가운데 하나다. 이놈들은 진짜 자기 학벌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대학을 나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배우고 알고 있는가에 대한 자부심이 그야말로 성층권을 넘어 우주를 노닐고 있다. 자신들만이 진실을 알고 올바른 판단도 내릴 수 있다. 대중이란 그런 자신들이 이끌어야 하는 대상이지 대중이 자신들을 넘보려 해서는 안된다. 진중권이 무시당하는 이유였다. 무식하다고. 일단 서울대이기는 한데 있는지도 모르는 미학과 출신에, 사실 글빨은 화려한데 논거는 상당히 빈약한 편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무지렁이 대중이라면 자신들을 우러르지는 못하더라도 두려워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가만 보니 오히려 자신들을 비웃고 무시하기 일쑤란 것이다. 과연 기분이 어떨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한겨레, 경향 기자들의 자랑은 명문대 출신이 보수언론보다 많다는 것 하나더라. 실제 명문대 출신들이 많기는 하다. 물론 그래봐야 대부분 월급도 더 많은 조중동 지원했다가 실력이 미치지 못해 떨어진 것들이기는 하다. 그래서 기자로서 경력을 쌓아서 다시 경력직으로 도전해 보려고 그나마 언론사인 자칭 진보언론에 몸담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패자에 낙오자인 자신들에 대한 보상으로써 과도하게 비대해진 자의식을 가지기 쉽다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다. 상처가 많고 열등감이 깊을수록 지나치게 자신을 포장하고 과시하려는 경향을 가지기 쉽다고. 그래도 사회정의와 진보적 가치를 위해서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신들인데 어찌 저따위 무지렁이 대중따위가 자신들을 모욕하고 조롱할 수 있는 것인가.

 

한겨레와 경향이 이른바 친노에 대해 가지던 뿌리깊은 적대감의 정체이기도 했었다. 감히 노무현이 언론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었다. 언론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언론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겼었다. 노무현과 함께 그 지지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던 당시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지식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언론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역시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이놈들을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노무현 자신도 민주화운동에서 철저히 비주류였거니와 이후 대통령이 되고 지지자들과 함께 보여준 행동들은 위협을 넘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언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언론은 항상 정의롭고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노무현이나 그 지지자들은 아니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 비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기는 했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얼마나 언론을 두려워하며 예우까지 해 주었었는가.

 

진중권이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한국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말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한겨레 기자가 스스로 자백한 바 있었다. 차라리 이명박근혜 시절보다 지금이 자신들에게는 더 어렵다. 대중이 검증하려 한다. 대중이 언론의 보도를 믿지 않고 일일이 검증하며 언론인들에 진실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예전에는 그냥 쓰기만 하면 기사가 되었는데 이제는 대중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검열까지 해야만 한다. 화가 나는 것이다. 자기가 그러려고 힘들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러가며 언론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진중권 역시 자신 정도면 더 대중들로부터 예우받아야 하는데 고작 최성해가 만들어준 대학교수 자리가 전부였었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상대로 아무말이나 쏟아내면 진지하게 다루어주는 보수언론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한국사회가 자신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정확히 저 무도한 문빠들이 감히 자신들을 전혀 인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있다. 저놈들이 악이다. 저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유독 거의 모든 언론들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만이 아닌 그 지지자들까지 적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공중파라고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 민주당 진영과 미래통합당 진영에 대한 판간의 기준 역시 다르다. 복수다. 너희들이 주장하는 그 공정함과 정의로움에 한 번 당해보라. 오로지 민주당 인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공정함과 정의인 것이다.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나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퇴행이다. 그러면 어째서 문빠들은 그들 지식인, 언론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조롱만 퍼붓게 된 것일까? 언론 스스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보도했으면 그것이 사실이고 정의여야 한다. 무지렁이 대중들은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고 조롱할 수 있는 정의당처럼. 엘리트라는 것일까? 과거 조선의 사대부들을 떠올리면 비슷할 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념은 다르더라도 같은 엘리트인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이 더 대화가 통하겠다.

 

그래서 파시즘인 것이다. 무지한 대중이 떼로 몰려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것이니. 아마 전제왕조시절 백성들이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려는 것을 보는 지배층의 태도가 저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이라 불렀다. 저들의 입장에서 지금은 '문빠들의 난'이 일어나는 와중인 것이다. 진압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다? 그 수괴인 문재인의 목을 베는 것이다. 구한말 조선조정이 동학의 교주였던 최재우와 최시형을 처형했던 것처럼. 한겨레나 경향이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실패에 올인한 상황이다. 그 최선두에 진중권이 있는 것이고. 그들의 목적은 같다. 동기도 같다. 자칭 진보들의 허튼 엘리트의식이 문재인을 중심으로 모인 대중의 의식과 충돌하는 것이 이유인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한겨레나 경향, 혹은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공격은 숭고한 성전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의 과거 군사독재와 싸우던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당시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전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모든 행위들은 성전이라는 이름 아래 정의롭게 된다. 다만 그렇더라도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라는 것이 소수자를 끌어들이는 진중권의 행동에 대한 사소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기와 목적은 같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저들이 폭도이고 악인 것이다. 조중동과 다르지 않다. 저들의 진심이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잠잠해진 정의연 논란 가운데 단 한 사람 이름이 제대로 거론되지 않은 이가 있었다. 사실은 그 사람이야 말로 지금 윤미향으로 대표되는 정의연의, 아니 정대협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고 이끌어 온 주인공일 것이다. 바로 김복동 할머니다. 윤미향은 그 김복동 할머니를 가까이서 모신 덕에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인물이었다.

 

수요집회도, 위안부운동을 세계보편의 인권운동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도, 그를 통해 일본 정부의 사실인정과 사죄, 배상을 이끌어내자는 생각도 역시 모두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비롯되었었다. 그리고 정대협 활동가들은 그런 김복동 할머니의 구상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역할이나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윤미향이라는 이름을 들을 일도 거의 없이 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위안부 운동을 이끌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와서 김복동이라는 이름안 간 곳 없이 윤미향이란 이름만 남았을까?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홍성일이나 임자운 같은 가짜 지식인들의 민낯이 바로 이런 곳에서 바로 낱낱이 드러난다. 이용수 할머니가 주위의 누군가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고 사실관계를 잘못 오해해서 주장을 펴고 있다는 김어준의 의혹제기에 대해 그들은 주장했었다. 만일 김어준의 주장이 사실이면 이용수 할머니의 주체성이 훼손되는 것이므로 자칫 위안부운동의 정당성마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용수 할머니의 모든 주장은 오롯이 이용수 할머니 본인의 경험과 판단에 의한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어째서 김복동 할머니의 그동안 활동에 대해 정의연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용당한 것이라는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는 한 마디도 않는 것인가.

 

그동안 정대협의 활동에 대해 모르지 않을 한겨레나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이나, 정의당 같은 자칭 진보정당, 그리고 방송에 나와 떠들어대는 자칭 지식인들이 지껄이는 소리들 보면 거의 한결같다.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김복동 할머니는 아예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대신 윤미향이 제단에 올려졌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의 이름으로 철저히 재단되어진다. 김복동 할머니가 추구하고 이루어낸 모든 위안부 운동의 성과들이 윤미향에게 덧씌워지며 윤미향과 함께 부정되고 그 자리를 이용수라는 이름이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대충 이용수 할머니가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는 이를 통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동안도 이용수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다만 김복동 할머니의 존재가 너무 컸기에 감히 그 앞에 나설 수 없었을 뿐이었다. 김복동 할머니도 떠났으니 위안부운동도 새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렇다면 이후 위안부운동을 정의하고 주도하는 것은 누구일 것인가. 윤미향이 비례대표까지 되는 것을 보며 어느새 주위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아직 생존해 있는 이용수 할머니를 앞세워서 윤미향과 정의연을 지우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그동안 자칭 진보언론들이 굳이 조중동의 프레임을 쫓아 김복동이란 이름을 지운 채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는데 앞장 서 온 것이 이해가 된다. 위안부운동의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면서 김복동이 아닌 윤미향을 대상으로 위안부운동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며 요구하고 있었다. 윤미향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김복동 할머니와 윤미향은 한 몸이었다. 윤미향은 절대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러니까 단죄되어야 한다. 윤미향과 정대협이 부정되고 그 자리에 새롭게 시작된 위안부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자칭 진보들 자신들이 된다. 그리고 냄새를 맡은 자칭 지식인들도 거기에 합류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요구했는데 어째서 윤미향이 감히 들으려 하지 않는가.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을 지우고 나면 윤미향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김복동 할머니가 그동안 정대협에 이용당했다고 말했을 때, 더구나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면서도 오히려 모르는 척 옮겨쓰기만 하는 언론들을 보면서, 더구나 오로지 이용수 할머니만 의심도 검증도 해서는 안된다면서 김복동 할머니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무리들의 모순적인 주장에서 무심코 느끼고 있던 위화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를 우연히 보고 나서 한 가지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진짜 더러운 놈들이 어떤 놈들인가를. 그래서 저들은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감추려 들었던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정대협의 활동은 활동가들이 아닌 피해자들 자신이 시작하고 주도했던 것이었다. 그 중심에서 한결같이 운동을 이끌었던 것이 김복동 할머니였고, 그 후광으로 윤미향은 오히려 정대협 대표가 되고 비례대표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지금 윤미향의 자리는 김복동 할머니의 것이어야 했었다. 그래서 이해한다. 어째서 윤미향은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를 거스르란 것인가.

 

이용수 할머니는 주체적인 존재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단지 정대협에 이용당한 타율적인 존재일 뿐이다. 저들이 만든 프레임이다. 이용수 할머니 자신의 의지인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의도가 그렇게 김복동 할머니의 존재를 철저하게 지우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누가 쓰레기일까? 자신들이 더 잘 알 듯. 더러운 것은 인간이란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그동안 가장 앞장서서 저지해 온 것이 한겨레와 경향이었을 것이다. 반대는 모든 언론들이 다 반대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입법하려 한 주체가 민주당 쪽 인사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아직 같은 편이라 여겼던 한겨레와 경향의 반대는 꽤나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회 기득권들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민감한 기사들을 주로 써왔던 이들 언론들이었기에 자칫 징벌적 손해배상이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자신들의 입을 막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겨레와 경향이 총대를 매고 앞장서서 막는 사이 지금껏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마음껏 가짜뉴스를 만들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해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한겨레와 경향이 그렇게 될 것을 몰랐었느냐? 이번 정의연 논란을 통해 보지 않았는가. 위안부운동의 취지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되지만 다른 언론들이 정의연을 공격하니 자신들 역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정의연을 공격해야만 한다. 뻔히 아는 사실들마저 오로지 조중동이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팩트체크를 하기보다 의혹을 그대로 전달하며 정의연에 해명의 책임을 떠넘긴다. '진보'언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칭 진보'언론'이었던 것이다. 알면서도 언론사 전부를 위해서 민주당의 입법을 막는 첨병으로 스스로 이용당해 준 것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국회에서 입법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한겨레 경향이라면 그래도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구기득권과 맞서며 진보와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같은 길을 가는 동지라 여기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조중동을 중심으로 보수언론이 대부분인 언론시장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몇 안 되는 언론이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그래도 한겨레와 경향에 더 불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입법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명박근혜를 거치면서,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겨레와 경향은 절대 민주당과 같은 길을 가는 동지가 아니다.

 

그냥 적이었다. 최저임금인상을 주장하다가도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하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반대한다. 근로시간단축을 주장하다가도 민주당 정부가 하려니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서 반대하며 나선다. 조중동이 어떤 주장을 펴면 바로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마저 보인다. 아예 민주당이야 말로 모든 악의 온상이라도 되는 양 '민주당만 빼고' 같은 칼럼까지 기재하며 오로지 민주당만 공격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180석의 압도적인 의석을 가지게 된 민주당에 어떤 진보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법안들에 반대하며 다수당이 되면 아예 폐기할 것을 천명했던 미래통합당의 편에서 그들에게 양보하라며 보수언론과 함께 압력까지 가하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한겨레와 경향이 민주당의 정책들에 대해 굳이 편까지 들지 않더라도 객관적인 평가라도 내렸던 적이 있었는가. 그런데 굳이 민주당 입장에서 한겨레와 경향을 배려해야 할 이유가 더이상 남아 있을 것인가.

 

이제는 더이상 한겨레와 경향이 자신들이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며 읍소해봐야 들어주는 사람조차 거의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언론이라고 정치인들이 들어주려 해도 지지자들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같은 편이라고 위장하는 성의는 보였던 것과 달리 아예 대놓고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를 적대해 온 시간들이 이제 비로소 자신들을 향해 돌아가게 된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도대체 누가 지금에 와서까지 한겨레와 경향을 같은 편이라 여긴단 말인가.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이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그런 게 있기는 한가?

 

효용가치가 다 한 것이다. 그동안 진보언론이라고 민주당을 등뒤에서 공격할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었다. 그래서 이명박근혜도, 조중동도, 검찰마저도 그동안 한겨레와 경향을 소중하게 여기며 예우해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써 먹었다. 조금 쉬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이명박근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민주당을 공격하는 용도로만 계속해서 써먹느라 너무 정체를 노출하고 말았다. 이제는 한겨레 경향을 앞장세워도 그냥 조중동의 하수인 하나, 혹은 검찰의 하수인 하나 이상으로는 거의 여기지 않는다. 이명박근혜가 그리워서 또 저 지랄들이구나.

 

한겨레와 경향부터 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돈 없는 언론부터 망하게 해서 언론의 수를 줄여야 한다. 쓸데없는 언론이 너무 많다. 어차피 수만 많을 뿐 배설하는 기사는 거의 거기서 거기다. 한겨레와 경향의 기사가 조중동과 그래서 얼마나 차이가 있다고. 그런 점에서 한겨레와 경향이 곤란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입법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 준다. 망해야 한다. 하나라도 더 많은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는 쓸데없다. 그동안 언론이 몸소 행동으로 전한 깨달음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그런 점에서도 더욱 도입되어야 한다. 시대의 과제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역사소설에서 유자광이 갓 즉위한 예종을 만나고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주 훌륭한 임금님이시로구만. 내 계책이 잘 먹혀 들겠어. 이제 앞으로는 입신양명의 길만 남은 게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남이의 역모를 고변하게 된다.

 

물론 소설이다. 실제로도 어떠했었는가는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만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의외로 저런 종류의 모함이 제법 아주 잘 먹히더라는 것이다.

 

역사상 군주들 가운데 모함이 유독 잘 먹히는 경우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는 열등감이 있고, 둘째로는 그런 열등감에서 비롯된 비대해진 자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은 의심조차도 어김없는 사실인 것이다. 사실이어야 하는 것이다.

 

무오류가 오류를 만드는 것이다. 완전무결이란 그런 오류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류의 가능성조차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자신의 권위와 존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그런 부류들에게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스스로 가지게 만든다면 그로부터 확신은 사실이 되고 마침내 진실이 되어 어떤 변명과 반론도 듣지 않게끔 만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려 해도 아예 예단하여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죽어도 의심은 남고 아주 작은 단서로도 죄는 증명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결백이란 표현까지 쓰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다. 전혀 아무런 티끌만한 흠도 자신에게는 없다. 검찰의 별건수사는 그런 점에서 아주 역사도 유구하다 할 수 있다. 죄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 여기기에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있고 벌을 주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것이라도 벌을 줄 만한 이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고문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죄를 고발케 하여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모든 혐의들에 대해서도 자신은 전혀 무고하며 아무 잘못도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결백을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죄인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현대의 사법제도가 지금과 같이 발전해 온 이유인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 아닌 죄를 처벌해야 하는가. 어째서 무죄를 전제로 수사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인가. 사람을 처벌해 온 역사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단정짓고 수사와 재판을 해왔던 역사에 대해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되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해서 유죄를 입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고발을 당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모든 의혹들에 대해 - 심지어 자신과 관련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안들까지 일일이 대응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원래 무고하기에 전혀 상상도 못한 부분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고발이 이루어지면 그에 대한 반박근거나 논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벌써 10년은 넘게 지난 타진요 사태에서도 확실히 그것을 느꼈었다. 네티즌이란, 아니 현대의 대중이란 멍청한 전제시대의 군주와 같다. 자기가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생각한다. 명석하게 깊이 꿰뚫고 있다 착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은 항상 어김없이 옳다. 근거야 얼마든지 머릿수도 많으니 스스로 납득만 할 수 없으면 아무거라도 찾아서 들이밀 수 있다. 판단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결론도 자기가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자신이 제기한 모든 의문들에 대해 대답하고 해명하라. 도저히 터무니없는 질문들이기에 대답을 궁리하는데조차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질문했으니 바로 대답해야 하고 아니면 너는 유죄다. 유자광이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래도 설마 역대 조선의 국왕 가운데 이정도로 멍청한 왕은 없었다.

 

아무튼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으니 정의연은 무조건 해명부터 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누군가 의혹을 폭로했으니 윤미향은 무조건 그에 대한 대답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해명하고 답을 해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눈과 귀는 다른 누군가가 터뜨린 또다른 의혹으로 향해 있다. 그러니까 해명하라. 그러니까 답을 하라. 아니면 유죄다. 그런데 정작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의혹에 대해 다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대충만 봐도 근거도 불확실한 불완전한 의혹들이었다. 대개는 무지에서 시작된 의심이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속된 의혹들이었다. 사실과 사실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문제제기에 어떻게 바로 구체적인 답까지 들려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지금 정의연 논란을 보면서 얼마나 대한민국 대중들이 위안부문제에 관심이 있는 척 하면서 정작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앞장섰던 자칭 진보들 역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지한 상태였었다.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벌써 정의연의 편에서 정의연을 대신해서 많은 사실들을 해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기에 그런 해명들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의심하며 의심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웃긴다는 것이다. 아무라도 되도 않는 주장이라도 내지르면 당연하게 정의연과 윤미향은 그에 대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주장의 근거를 대기보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도 그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대답을 정의연과 윤미향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미 사실로 확정짓고 통장을 까라, 계좌를 까라, 영수증을 내놓으라. 그럴 주제도 안되는 것들이.

 

오죽하면 이용수씨가 그리 주장한다고 수요집회의 의미마저 부정하고, 그동안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실인정과 반성을 요구한 사실마저 부정하려는 이들까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런 것 상관없이 이미 1995년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받고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끝까지 일본이 조성한 민간기금으로 위로금을 받는데 반대했던 정대협을 비판하며 박근혜정부의 위안부합의에 반대했던 사실마저 비난한다. 어째서 위안부가 아닌 성노예라는 표현이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조차 없이 피해자들이 반대하니 써서는 안된다. 그것이 과연 위안부 피해자들과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에서 나온 것들인가. 과연 위안부문제에 대해 평소 관심을 가져왔다면 그런 주장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진짜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진 위안부합의가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하지만 자신들이 틀릴 리는 없으니까. 언론이 시작했어도 이미 자신들이 결론을 내린 이상 결과도 그렇게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자신들은 틀리지 않았다며 타블로를 비난하는 타진요 찌그러기들이 인터넷상에 기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은 옳다. 국민은 옳다. 그러므로 자신도 옳다. 절대 틀릴 리 없다. 그래서 선동하기도 쉽다. 선동당한다는 생각조차도 없다. 이미 그렇게 자신은 믿고 있고 결론까지 내린 뒤이니까.

 

길원옥 할머니의 의손녀라는 여자가 이번에 돌아간 쉼터 소장에 대한 어떤 의혹을 제기했다. 근거같은 건 없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명 역시 정의연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다. 과연 지금 상황에서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저들이 바라는 것은 조선시대 옥사에서처럼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의 근거일 텐데.

 

위안부운동은 이렇게 끝난 것이다. 한겨레의 최근 기사들을 보면서 토악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자신들도 열심히 도왔으면서 이제와서 위안부운동의 취지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빠져나가고 싶은 것이다. 마치 자신들은 아니었던 척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미 위안부운동은 끝났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니까. 더이상 이어갈만한 무엇이 남아있기는 한가. 보완하고 고쳐서 이어나갈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가.

 

무서운 것이다. 사람의 선입견이란 것은. 더구나 자기가 무척 잘났다 여기는 인간들이 가진 예단과 확신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상 그리 훌륭하고 뛰어난 이들조차 되도 않는 모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족까지 몰살당하고 했던 것이다. 그 반복을 보게 된다. 대중에 대한 혐오다. 참 대중적이다. 더럽다.

사실 별로 비판할 거리도 없다는 것이, 신혜선 이사장과 동아일보 인터뷰어의 말을 각각 요약하면 이 한 마디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신혜선,

 

"정대협을 떠난지 오래되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잘 모르겠다."

 

동아일보 인터뷰어,

 

"그동안 언론이 보도한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머지는 아무리 그래도 정대협의 그동안 활동의 취지나 과정들에 의미가 있었으니 그마저 훼손하지 말라는 취지인데, 더불어 현정부에 대한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뻔한 비판까지 더해서.

 

어차피 세세한 내용 같은 건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다 말하고 있고, 더구나 언론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상당부분이 허위이거나 과장이거나 심지어 무지로 인한 것임이 드러난 상태고, 그런데도 그것을 기정사실 삼아서 상식적인 대답을 정의연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당당히 기사로 내보낸다. 원래 이놈들 하는 짓거리가 이렇다.

 

하긴 이런 상황에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것부터 다른 의도가 의심된다 할 수 있겠지만. 이제와서는 조중동과 인터뷰하는 자체에 대해서마저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자기가 공동대표일 때 윤미향은 상근직원이었다고 하고 있었으니 그런 점도 고려되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별 내용도 없는 인터뷰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전 공동대표와 언론의 보도만 사실로 간주한 언론사 인터뷰어의 뻔한 상식적인 대화였으니. 인용하는 놈들이 병신들인 것이다. 딱 속아넘어가기 좋게 써놓기는 했다.

하여튼 평소 아예 아무 관심도 없던 것들이 느닷없이 아는 척 관심있는 척 하려니 이런 모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이 가지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단정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용수씨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위안부운동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아무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히 알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용수씨는 첫째 위안부운동을 주도하던 단체로써 정대협의 존재와 자격 자체를 부정했었다. 정대협은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을 그동안 앞장세워 이용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정대협에게는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장설 자격조차 없었다. 바로 위안부운동을 시작했고 주도했던 그 정대협에 대해 하는 말이다. 위안부운동은 출발부터 부정한 존재에 의해 부정한 의도로 시작된 잘못된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위안부운동에 앞장 서 왔던 피해자들의 역할을 부정했었다. 위안부 운동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던 김복동 할머니조차 사실은 자신의 의사가 아닌 정대협의 강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용당한 것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었던 상당한 성과까지 봤었던 모든 그동안의 활동들이 정대협의 일방적인 강요와 강제에 의한 왜곡과 조작으로 전락하고 만다. 피해자 자신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제 3자일 정대협의 입장과 주장만이 강제된 것일 텐데 그런 활동에 새삼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차라리 할머니들을 강제로 끌고다니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위해 이용했다면 마땅히 부정되고 단죄되어야 할 죄악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어떤가? 근로정신대문제의 해결에 위안부문제를 끼워넣는 바람에 오히려 해결만 더 어려워졌다. 일본정부는 벌써부터 사죄도 하고 배상도 하려 했는데 정대협이 근로정신대문제를 끼워넣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만 드러내느라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훼방놓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용수씨의 편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이 이용수씨의 주장처럼 위안부운동을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그동안의 위안부운동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출발부터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모두 잘못된 위안부운동을 이제와서 계승할 의미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무엇보다 정대협이 같은 위안부피해자임에도 무궁화회 피해자들과 갈라서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같은 위안부 피해자임에도 정대협의 활동방향은 무궁화회에 속한 피해자들이 아닌 그 밖의 피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없는 보상은 의미가 없다. 보상조차 아닌 위로금은 더욱 받을 수 없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어야지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정대협이 시작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당시 민간기금으로 조성한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위로금을 받기로 동의했던 피해자는 소수였었다. 아니 설사 다수였어도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보다, 배상금조차 아닌 위로금으로 만족하고 끝낼 수 있는 피해자들보다는 어렵더라도 배상을 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대협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대협과 뜻을 함께하며 활동까지 같이 했던 피해자들이 얼마이고, 그 분들이 남기고 간 유지가 있을 텐데, 이제 와서 이용수씨의 한 마디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뒤집으라고? 한 마디로 늬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다 틀렸으니까 지금 와서 다 뒤집고 새로 시작하라?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 지금까지와 다른 위안부운동을 하고 싶으면 자기들끼리 나서서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정의연도 나락이고 더이상 앞으로 위안부운동을 주도할 동력도 사라진 상태다. 누가 지금 이 지경에 놓인 정의연을 믿고 지지도 하고 기부도 하겠는가. 새삼 운동의 목적과 방향을 바꾼다고 해도 한 번 찍힌 낙인이 지워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책임질만한 일을 아무것도 한 적 없는 늬들이 나서서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쉼터도 대신 관리하고, 할머니들도 직접 보살피고, 운동방향이나 방법등도 직접 고민해서 구상하고, 그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도 호소한다. 딱 10년만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의연보다는 나을 것이다. 피해자가 수 백 명이던 시절부터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지금껏 운동을 지켜오고 이끌어 왔었다. 이제 남아계신 분도 몇 분 안 되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입바른 소리나 태연히 지껄여대는 그 정의감과 양심에 따르면.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인용해서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고는, 이용수씨의 주장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그러면서 위안부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헛소리와 함께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새로운 요구까지 더한다. 그래서 내가 어제 그런 글을 썼던 것이다. 시민이 벼슬이 아니다. 국민이 곧 시민단체에 채무자는 아닌 것이다. 자기들이 뭐라도 대단한 존재나 되는 듯 여긴다. 자기들이 그리 주장하면 시민단체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 모든 국민을 대신한 시민단체가 아니다. 정대협이 대신하던 시민들은 위안부문제가 돈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역사와 인권의 문제로서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다. 그동안도 그렇게 위안부운동과 함께 정의연은 존재해 왔던 것이다.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떠들 일이 아니란 것이다.

차라리 위안부운동 자체를 처음부터 부정하며 정의연의 해체를 주장하는 조중동과 보수진영이 더 일관되고 솔직하다 여길 정도로 자칭 진보, 자칭 중도, 자칭 개혁, 자칭 양심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란 거의가 추악한 개소리들 뿐이다. 그나마 김민웅 정도가 쓸만한 소리를 했다. 내가 더이상 이용수씨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 오랜 세월을 자신들의 곁에서 도우며 보살피며 함께 지낸 이를 뒤에서 칼을 꽂아 죽이는 행위까지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인정이 있어야 한다. 심미자 할머니도 이렇게 등뒤에서 칼을 꽂고 헤집지는 않았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과연 누구를 더 동정해야 할까?

새벽부터 잠도 오지 않는데 어디서 누가 헛소리 지껄인다기에 찾아가 보고 다시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정의연 해체하고 윤미향도 사퇴해야 한다니까. 자기 살 길 찾아 알아서 흩어지는 것이 옳다. 버텨봐야 상처만 입는다. 이용수씨가 전면에 나선 순간부터 지금 상황을 예상해 왔을 터다. 고마움을 모른다. 피해자든,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돈이나 조금 보내주던 대부분 시민들이든. 강한 사람들이기는 하다. 나라면 벌써 다 때려쳤을 것이다. 욕먹으면서까지 그 고생을 더는 못한다. 아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똥이 똥중에 제일 더럽다더만. 기분도 더러운 요즘이다.

원래 시민단체란 한 사회에 있어 공공의 문제라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 소수의 활동가들이 나서면 동의하는 시민들이 후원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한 사회, 한 국가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문제라 여기는 환경문제에 대해 활동가들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면 그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후원 등을 통해 그를 지원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힘과 영향력은 그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시민의 수와 비례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뒤집어 보면 결국 그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자기 돈과 시간까지 들여서 지지하고 후원까지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문제라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이미 시민단체가 활동하기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시민단체의 활동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결국은 시민단체가 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그 방향이 자신을 위해서도 이로운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돈까지 들여 그를 돕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활동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를 지지하고 후원까지 하는 시민들 자신을 위한 것인가?

 

물론 대부분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어떤 대가를 바라기보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또 쉽게 그만두기도 한다. 하긴 일이란 자체가 그렇다. 일 자체가 좋아서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흥미가 사라지면 바로 일을 그만둬 버리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만큼 더 쉽게 그만두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열정페이란 딱 열정 만큼, 열정을 시효로 주어지는 대가인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안다. 딱 더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떠날 때까지만 주어지는 비용이라는 것을. 대부분 시민단체의 사정이 그렇다.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대가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활동가들의 열정에 기대서 대부분 시민들은 아주 적은 후원만으로 그 성과들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과연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관계에서 채권자는 누구이고 채무자는 누구인가?

 

아마 시민단체를 후원한다고 해서 한 해에 2, 3천만 원 씩 후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이 후원해봐야 한 달에 10만원 정도도 사실 대부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에 반해 활동가들은 거의 자신들의 시간 전부를 그 일에 쏟아부어야 한다. 더구나 그 가운데 또 상당수는 자신들의 활동에 반대하는 상대편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나서서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더 교묘하게는 소송을 걸거나, 아니면 언론을 동원해 음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활동가들 자신이 활동의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다달이 얼마간 후원하며 생각날 때마다 잠시 자원봉사나 나가는 것은 얼마나 쉽고 마음편한 일인가.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정의연이, 정대협이 앞장서 온 위안부 운동이란 정대협이란 시민단체와 활동가들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대부분 국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였었는가?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묻고 싶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정대협 말고 누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그렇게 그동안 자기 시간과 노력까지 들여가며 앞장서고 있었느냐고. 지금 이용수 할머니의 주위에 있는 그들이? 주위에서 듣기 좋은 소리로 자신의 편만 들어주고 있는 그들이? 무려 30년 동안 수 백 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돌보고 그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은 과연 어디의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그런 수고와 노력들에 대해 과연 한 번이라도 제대로 대가를 지급한 적이 있었는가?

 

이번에 돌아간 마포 쉼터 소장이 한 달에 고작 80만 원 받고 일했었다 한다. 현재 최저임금 기준으로 주휴수당 빼고 한달에 고작 100시간 일한 시급에 불과한 돈이다. 퇴근시간도 주말도 따로 없이 항상 할머니들과 함께 하며 받은 돈이 그 만큼이다. 그 돈 받고도 일할 사람이 쌔고 쌨다고? 있으면 한 번 정의연에 소개해 주라. 더불어 빈 건물에 상주하며 관리하면서 한 달에 120만 원 받겠다는 사람 있으면 한 번 정의연에 소개해 주기 바란다. 빈 건물인 티가 나지 않도록 언제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게끔 항상 신경쓰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마 윤미향 의원도 정의연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한 달에 300만원이나 받았었는지 모르겠다. 윤미향 의원의 올해 나이가 56세다. 1960년대 출생으로 대학교육도 받고 석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30년 동안 줄곧 한 가지 일만 해 왔음에도 한 해 연봉이 4천도 되지 않는다면 그마저 많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면 그 알량한 돈을 받고 윤미향 의원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양병원만 봐도 너무 분명한 것이다. 한 10년 전 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들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받았었던 모양이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씩 교대로 일하는데도 그마저도 부족하다며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매일같이 정대협 직원 몇 명이서 한 때 수 백 명이 넘던 피해자들을 돌보는 일을 해왔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돌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활동들도 해 나가야 했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을 위해서 30년을 하루같이 위안부운동을 해왔는데 고작 통장에 3억 있고, 2억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적게 받고 더 없이 살면서 위안부운동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리 하라면 당신이 하겠는가? 그리 주장하는 자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설사 위안부 피해자 자신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사람의 가치란 고작 그것 밖에 안되는 것인가?

 

그러고보면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정의연 논란에서 윤미향 의원의 재산을 가지고 문제삼는 대부분이 노동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던 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와 경향, 그리고 정의당이 윤미향 의원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던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어느 개인이 한 가지 분야에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일해 왔다면 과연 3억도 안되는 집과 3억이라는 현금이 그렇게 문제가 될 만큼 많은 재산인가 하는 것이다. 혼자서 번 것도 아니고 남편도 따로 지역신문사를 차려서 사업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간첩사건 보상금으로 2억 넘는 돈을 받았다는데 딸의 유학자금으로 얼마를 썼다는 이야기 역시 없었다. 아니 다 떠나서 그래서 시민단체 하면서 집 사고 돈 억 대로 모았으니 문제다? 그러면 시민단체가 아니면 어떨까? 그러니까 시민단체에서 공공을 위해 일하려면 무료로 봉사해야 한다. 돈있는 놈들만 시민단체 하겠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수고를, 노력을 그 자체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모두 공짜다. 노동자의 노동력이 공짜인 것처럼. 저런 놈들을 진보라 하는 자체가 진보에 대한 모독이다.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대부분 시민들이 고작 얼마간의 기부금과 자원봉사만으로 소수 활동가들이 바치는 대부분 수고와 노력에 기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시민들이 후원하는 얼마간의 기부금이나 자원봉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수 활동가들의 수고와 노력에 기대어 그 결과까지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래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도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뭘 얼마나 해주었다고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해 빚을 갚으라, 아니 오히려 원수를 갚겠다 저리 난동을 부리는 것인가 말이다. 원래 자신들 것이었는가? 처음부터 자신들 것이었는데 정의연이, 활동가들이 그에 기생해 온 것이었는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금껏 받고 누려 온 모든 것들이 누구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권리처럼 보장되었는가? 그런데도 자기들 생각과 요구와 맞지 않으니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쫓아 모두가 정의연 잘못했다.

 

그래서 해체하라 주장한 것이다. 고마운 것을 모른다. 소중한 것을 모른다. 정의연이 사라져봐야 안다. 수요집회가 중단되어 봐야 안다. 그래서 만족한다면 오히려 그쪽이 처음부터 맞았던 것이다. 시민단체의 노력과 수고는 공짜가 아니다. 얼마간의 기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결과인 것이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나더러 그 돈 받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일하라면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고작 80만 원 받으며 개인의 생활조차 없이 헌신해 온 쉼터 소장의 죽음마저 모욕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를 또한 오히려 비판해야 할 자칭 진보들이 방관하며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모욕을 당해야지만 그들의 그동안 활동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기부금을 냈으니 정의연의 활동까지 자신의 소유여야 하는 것이다. 기부금도 안 냈고 자원봉사도 안했지만 그동안 지지해 왔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한 번도 지지한 적 없고 오히려 반대만 해왔지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시민이기에 정의연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내 마음과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죄인이다. 단지 단죄되어야 한다. 나라면 못 견딘다. 역시 윤미향 의원이나 정의연 활동가들이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기도 하다. 그 강함이 어느 한계를 지나면 파열로 이어질 수 있기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노력을 모두 활동에 기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모두를 대신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을 떠나서 사실이다. 명백하게 드러난 부정이 없다면. 그래서 과연 드러난 실제 범죄나 불법이 있기는 한 것인가. 그저 일방적으로 정한 자기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틀렸다, 잘못되었다. 다 의미없어진다. 언론은 똥이다. 시민도 똥이다. 심정이 그렇다.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다. 과연 JTBC와 한겨레가 박근혜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 반드시 진실을 밝히거나 정의를 실현하려는 언론으로서의 사명감에서 그리한 것이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이들 언론들이 보도하는 행태를 보면서 갈수록 그 의심은 커져만 갔고 지금에 와서는 확신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딱 JTBC와 한겨레가 보도를 쏟아내던 시점이, 심지어 조선일보마저 박근혜 정권을 공격하는 기사를 쏟아내던 그 즈음이 반기문이 UN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서 출마하려던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 의혹이 하나둘 밝혀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도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탈당해서 바른정당까지 만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섰던 것이 박근혜 정권 당시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손꼽혔던 김무성과 유승민이었었다. 역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철저히 버려졌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든 바른정당은 사실상 반기문을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었었다. 그래서 반기문이 대선출마를 포기하자 바로 오히려 소수만 남기고 대부분이 다시 원래 새누리당이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탈당하고 바른정당까지 만들었던 것은 반기문이 돌아와서 출마하면 가능성은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주체들은 어땠을까? 2017년 한겨레의 무비판적인 반기문 띄우기 보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참여정부 당시 김근태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던 이유 가운게 가장 컸던 것이 다름아닌 자기도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데 대놓고 정동영을 미는 듯한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이후 민주당을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도 정동영이 노무현을 등에 업었다면 김근태는 사실상 동등한 위치에서 노무현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자기가 도운 과실을 모두 정동영에게 몰아주고 있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던 시절까지도 김근태를 따르던 운동권 출신들은 철저히 친노 친문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정치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 마냥 욕할 수만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역시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언급되었던 김무성과 유승민 입장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한 채 오세훈 따위를 차기로 염두에 두는 박근혜의 행보를 어떻게 여겼었겠는가.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박근혜가 자신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소수만을 일방적으로 선별하여 밀어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진영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친박을 넘어 진박이네 뭐네 구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그 무렵이었었다. 그러면 당시 박근혜로부터 선택당하지 못하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차기 정권까지 선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 어떻게 여겨졌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칫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반기문이 UN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박근혜의 후계로 선택된다면 자신의 앞날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로 박기문 이상의 대안이 없다 가정했을 때 반기문을 박근혜로부터 떼어낼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비밀스럽게 다루어졌을 최순실의 태블릿PC가 공교롭게도 하필 그 시점에 우연찮게 JTBC로 전달된 배경 역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를 공격하던 언론들이 지금에 와서 한결같이 당시 정대협이던 정의연을 공격하며 위안부협상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이유도 역시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는 그래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죽하면 한겨레 기자 스스로 그리 토로하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명박근혜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처음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란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당시에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폭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차기 대통령에 문재인이 당선될 것을 알았다면 한겨레나 JTBC나 판단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조차 재평가할 수 있는 그들이라면.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을 다시 평가하자고 보수언론이 만든 판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지금의 그들이라면.

 

지난 대선에서도 그래서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서는 안된다는 한 가지 목적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홍준표를 지지하고, 누군가는 안철수를 지지했지만, 결국 목적은 같았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칭 진보언론들에서 그 지지자들을 모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겠는가 말이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부터 다수 진보언론 기자들이 공공연히 혹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하어영이 KBS의 검언유착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보를 터뜨렸던 정황도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 윤미향 의원과 관련한 논란도 그 연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언론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지금 청와대와 민주당은 그야말로 범죄의 온상이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과 관련한 모든 의혹들은 그 자체로 사실로 간주된다. 오죽하면 코링크PE에 대해 익성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도한 한겨레가 지금까지도 정경심 혹은 조범동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검찰로부터 받아 충실히 보도하고 있겠는가. 그러니까 민주당의 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정의연도 잘못되었고, 정대협도 잘못되었고, 위안부 운동도 잘못되었다. 위안부운동이 출발부터 과정과 결과까지 모두 잘못되었다는 이용수씨의 주장을 전혀 아무 검증도 비판도 없이 고스란히 전하는 이유다.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한겨레의 민주당에 대한 태도가 지금과는 조금은 달랐었을까?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적인 의도로 야권의 유력인사를 몰아갔던 한명숙 전총리의 뇌물사건에 대해서도 오로지 검찰의 편만을 들고, 검찰이 현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유시민과 노무현 재단을 목표로 진행하던 채널A와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오로지 언론의 자유만을 부르짖고, 그리고 정의연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아니 취재하려면 얼마든지 취재할 수도 있는 입장에서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협상과 이전 보수정부의 위안부정책을 재평가하려는 의도에 지금도 충실히 놀아나고 있는 중이다. 의도가 없다면 한겨레 기자것들이 모두 뇌가 없는 병신들이란 뜻이다. 나름대로 좋은 대학도 나와서 기자씩이나 된 인간들이 아무 의도없이 그렇게 철저하게 보수정권과 언론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놀아날 리 있겠는가.

 

그동안 JTBC에 속아왔었다는 것이다. 한겨레야 참여정부 이후 더이상 속지 않겠다며 아예 보지 않은 지 오래다. 한겨레 기사는 누군가 가져와서 링크하면 거의 보는 수준이다. 가끔 한겨레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것들을 보면 역시 내 판단이 그렇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만 가지게 된다. 과연 2016년 12월 반기문이 UN사무총장에서 퇴임하지 않았고, 더구나 유력대선후보도 아니었다면 당시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아니 결국 그로 인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알았다면 언론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보도하려 했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은 박근혜의 잘못이란 것이다. 주변을 잘못 관리했다. 그래도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김근태를 홀대하고 정동영에게 배신당한 끝에 아무것도 못하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던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박근혜 역시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박근혜를 공격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언론으로서 한겨레와 JTBC가 선택되었던 것이고. 그리고 한겨레와 JTBC 역시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박근혜를 공격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까지는 했겠지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란 예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후회하는 마음에 다시 보수진영에서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함께 칼춤을 춘다.

 

특히 진보언론의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보면 증오 이외에 표현할 적절한 다른 단어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보수언론보다도 더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듯 느껴진다. 차라리 박근혜가 낫다. 차라리 이명박이 더 낫다. 그래서 차마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피해가 돌아갈 과거의 일들에 대해 보수언론과 입을 맞추거나 최소한 그럴 수 없으면 침묵을 선택한다. 검찰과 유착했다기보다는 그냥 문재인 정부가 싫었던 것은 아닐까. 한명숙 전총리가 참여정부의 총리였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은 할수록 더 깊어진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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