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정치와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유시민이 정당까지 직접 만들어가며 정치에 뛰어들게 된 이유도 자칭 진보들의 지랄맞은 학벌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대 출신에 지식인으로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있는 자신이 노무현 당시 후보의 곁에서 직접 지지를 표명하면 대하는 태도들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 말은 곧 그만큼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치인이 대학도 못 나온 고졸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폄하하는 인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 임기 동안, 그리고 2007년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주위에 쓸데없이 많은 자칭 진보들을 통해 대통령의 고졸학력이 왜 문제인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는 이론적인 토대가 부실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대학에서 충분한 지적 훈련과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판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었다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이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다. 검사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정치인들만 그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졸 출신 노무현의 무지와 무능력이 보수세력에 다시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의심이란 것이다. 아마 언젠가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서울대 출신들 가운데 서울대 대통령을 진심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 제법 된다고. 서울대 출신인데 고졸 밑에서 일하고 경희대 밑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이들이었다. 조국사태 당시 기자들이 '조국이 어떻게 이러느냐'며 항변했다는 내용은 조국사태 당시 불거진 의혹들에 대한 것이 아닌 단지 서울대 출신으로 저명한 지식인인 조국이 경희대 출신 대통령 밑에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 대한 반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국사태에서는 언론이 검찰과 손잡고 조국을 잡았었고, 이번 검언유착 의혹에서는 언론이 검찰과 손잡고 유시민을 잡으려 했었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한명숙 전총리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으로 보내던 당시 과연 여성주의자들 가운데 누가 여성운동의 대모라는 한명숙 전총리의 편에 섰던가.

 

역시나 그동안 줄곧 주장해 온 내용들의 연장인 것이다.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은 학벌이 좋다. 당연히 집안도 좋다. 독신인 경우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 나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며,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 역시 모두가 엄지손을 치켜들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동안 좌파들이 주장해 온 계급론을 따를 경우 이들은 과연 누구와 연대하며 이해를 같이하고 있겠는가. 불과 얼마전까지 보수정당에 인재가 많다고 사람들이 여겨왔던 이유도 바로 보수정당에 그같은 명문대학 출신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검사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가 자기와 똑같은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자란 것들이 가지게 될 감정이라는 것도 쉽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많은 이들이 진보라 착각하는 여성주의가 오히려 민주진영에 적대적이며 보수진영과 연대하는 경우가 더 많은가. 보수정당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기만 하던 여성주의자들이 심지어 자신들의 옛동지이기도 했던 민주진영의 지자체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인정조차 남기지 않은 채 가혹하고 잔인하기만 하다. 여성인 변호사에 대한 검증과 비판조차 용납하지 않겠다. 아마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무차별로 2차 가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그동안은 미투를 하더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증언 정도는 앞세우고 있었다. 논쟁을 꺼리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어떤 논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건 전쟁이다.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주의자들이 유독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한겨레의 또다른 박원순이라는 제목이 그 이유를 바로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좋아하는 언론들의 태도가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이명박근혜 시절이 더 나았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 한겨레의 강희철은 그리 당당히 인터뷰했고 미디어오늘은 어떤 비판없이 그대로 지면에 실어주고 있었다. 김어준과 나쁜 사이가 아니었던 김완 역시 검찰출입기자들을 비판하는 김어준에 불만을 드러내며 검언유착을 폭로한 유시민을 악의적이라 비난한 뒤 자기가 직접 취재했던 익성 실소유주 가능성 자체를 묻어버린 바 있었다. 검찰과 한겨레를 분리하려는 시도가 그리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하어영의 자해성 오보가 나왔다. 한겨레가 그렇게 무릎꿇고 머리까지 조아리며 잘못했다 비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기준대로라면 조국 전장관이나 청와대에 대해서는 집단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배라도 갈라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검찰을 공격하고 있다. 좋은 대학 나와서 그에 어울리는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기 편 검찰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참을 수 있겠는가. 여성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지현 검사의 경우 검찰조직 전체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나서서 비판하는 모습 같은 건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보이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검찰의 힘을 빌어 자신들에 비판적인 진혜원 검사를 징계하려 나서고 있었다. 김재련을 앞세워 검찰총장 윤석열과 맞서는 중앙지검장을 공격하려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그림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겨지지 않는가. 한겨레가 감히 조선일보를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설사 의견이 다르더라도 조선일보와 맞서 논쟁을 벌이며 여론을 만들기보다 그냥 같이 다른 방향에서 청와대와 여당을 공격하는 편을 선택한다. 

 

결국은 대부분 기자들 역시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들이란 것이고, 검찰이란 조직 역시 그렇게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 집단이란 것이고, 여성주의란 역시 좋은 대학 안 나오면 끼워주지도 않는 무리들이란 것이다. 일단 논쟁하다 말고 상대방의 대학을 걸고넘어져도 빌미가 될 만큼 안좋은 대학을 다니고 나온 자신이 잘못한 것이지 학벌을 문제삼은 쪽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평등을 추구한다는 자칭 진보들이 이럴진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감히 서울대도 못 나온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부와 여당이 자신들의 카르텔을 공격하려 한다.

 

아마 민주당 소속 여성주의자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고 보라. 문재인 정부 지지율 떨어지면 가장 먼저 칼을 꽂고 박근혜 사면을 추진할 것이 바로 그런 여성주의자들이다. 박원순 시장 덕분에 더욱 확실해진 것이다. 기득권이란 단지 행정부의 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 사회의 카르텔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은 수구를 지지한다. 언론들 역시 필사적으로 수구의 편에 선다. 자칭 진보조차도 오히려 수구세력과 더 깊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경우가 많았을까? 보수정당과 공조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까?

 

안티페미를 주장하던 놈들이 유독 박원순에 대해서만 페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회적 규범에서 예외가 되는 불가촉적인 존재란 것이다. 민주당이란 것은. 그들은 정당한 이 나라 이 사회의 지배세력이 아니니까. 정당한 권리가 있는 것은 오로지 수구세력일 테니까. 여성은 남성 이하지만, 민주진영은 그 여성 이하다. 모르면 민주당에게도 미래가 없다. 하긴 민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새어나오는 자기부정적인 발언들을 떠올려 보라.

 

아무튼 이로써 확실해진 것이다. 진정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혁파해야 할 적폐란 어디의 누구이며 어떤 이들인지가. 어째서 유시민은 그토록 서울대 폐지를 주장했던 것일까. 서울대가 사라져야 나라가 바로선다고 주장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저들은 그렇게 듣기 싫었던 것이다. 모든 언론이 유시민을 싫어하더라. 이동재의 고백은 언론의 자백이기도 한 것이다. 그게 바로 저들의 정체인 것이다. 적이 참 더럽게 거대하기는 하다.

김어준은 그냥 지지자들 사이에서나 알아주는 동네깡패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진중권만도 못한 개좆밥이란 것이다. 클릭장사 하려 해도 김어준으로는 도저히 장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시민은 다르다.

 

김어준과도 당연히 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김용민, 이동형이나 기타 이름을 말해도 알아먹지 못할 나머지 떨거지들 모두와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인물이란 것이다. 내가 괜히 민주당이 유시민을 저격해서 몰아내려는 꼬라지에 분노한 것이 아니다. 김어준이 아무리 떠들어보라. 언론이 기사 한 줄 써주나.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J가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준희가 저널리즘 토크쇼J로 제법 이름을 알렸다지만 역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듣보잡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만으로 누군지 알고 신뢰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일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유시민은 심지어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조차도 어쩔 수 없이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유시민을 민주당에서 알아서 내쳐 버렸으니.

 

김어준이나 다른 자칭 진보스피커들이 죽어라 떠들어대는 동안에는 꿈쩍도 않더니 유시민이 라디오에 나와 한 마디 한 것 가지고 언론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한다. 조중동도 예외는 아니다. 클릭장사질인데 뒤쳐질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비판할 때 비판하고 반박할 때 반박하더라도 남들 쓰는 만큼 따라가 주기는 해야 한다.

 

진중권이 입맛에 맞게 이용하기 좋은 대상이라 페이스북까지 가져다 쓴다면 유시민은 그야말로 진짜 장사가 되기 때문에 일단 가져다 쓰고 본다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유시민이 등장해 한 마디 한 것 만으로도 그 서슬퍼렇던 윤석열 검찰까지 들썩였을 정도이니.

 

윤석열도 관련되었을 것이다. 누가 모르는가? 대부분 알면서도 이해관계로 인해 차마 입밖에 내서 말하지 못한 사실일 것이다. 똥걸레가 유시민의 말을 받아쓰는 것을 보니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까지 드는 것인지.

 

공개된 녹취록과 녹음파일을 보고서도 검언유착이 없다 주장할 것이라면 뇌가 없거나 양심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똥걸레가 그 지랄 하고 있다. 논란이란다. 그게 자칭 진보란 벌레들인 것이겠지만. 웃기지도 않는다.

하여튼 민주당 쪽 인사들에 대해서는 라면을 몇 개나 붙여가며 의혹이라 떠들어대더니 검찰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기만 하다. 현직 검사와 현직 기자가 만났다. 그리고 현정부에 대해 적대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민주진영의 유력인사 가운데 하나인 유시민을 타겟으로 취재를 진행하는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심지어 한동훈은 그 과정에서 유시민이 신라젠에서 강연한 자체가 주가조작의 의혹이 있다며 코치까지 해 주고 있었다. 실재 이동재는 이철 전대표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계속해서 유시민의 강연료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이해한다. 죄다 공범이기 때문이다. 이동재가 그랬다지 않은가. 아무튼 진술만 하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누구이겠는가? 당장 의도된 오보로 오명을 쓰면서까지 한동훈에 명분을 쥐어주려 했던 KBS부터, 여전히 양비론으로 검언유착 자체를 물타기하려 시도하는 한겨레, 미디어비평을 하겠다면서 은근슬쩍 검찰의 편을 들고 있는 미디어오늘, 그 밖에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조중동에, 매경한경에, 국문세경서에, 뉴시스, 뉴스원, 연합뉴스 기타등등등등... 지금 철저히 한동훈 편에서 물타기 기사를 쏟아내는 바로 그 놈들인 것이다.

 

어떻게 봐서 이 녹취록의 내용이 검언유착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는가. 그나마 한동훈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이동재가 먼저 그림을 그리고 한동훈이 따라갔던 정황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조차도 이동재가 전한 내용이 자기 생각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아무튼 이동재는 기자로서 취재와 관련한 내용을 한동훈에게 상세하게 설명했고 한동훈 역시 맞장구치며 적절한 조언까지 해 주고 있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언론과 검찰의 부적절한 관계를 입증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 비판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다른 언론도 다 똑같을 테니까. 성재호와 김귀수의 KBS 사회부와 법조팀이 아무것도 없이 인터뷰를 조작해서 내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겨레의 하어영은 아무것도 없이 오보의 멍에를 써가며 검언유착을 가리기 위한 단독을 냈었을까.

 

박원순 시장과 관련한 논란은 물론 검언유착 수사에 대한 보도를 보면 언론들의 정체를 낱낱이 살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가. 정연욱의 변명을 들었다. 그러나 단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말이 아닌 행동이고 결과인 것이다. 언론의 마지막 발악이다. 조국 전장관을 시작으로 박원순 시장의 유족부터 그동안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야 했던 모두가 이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할 차례인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언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오로지 망하는 한 가지 뿐이다.

 

그냥 대충 읽어도 기자와 검사가 만나서 이런 대화를 나누어도 좋을까 싶은 내용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적으로 만난 자리가 아니라 기자이고 검사로서 각자의 신분을 가지고 만나 대화를 나누던 자리라는 것이다. 기자가 아닌 이동재와 검사가 아닌 한동훈이 과연 당시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래서 그들이 그런 대화까지 나눈 것은 과연 무슨 이유때문이었을 것인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일 게다. 그보다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일 터다. 여름이라고 벌레가 이렇게나 많다. 그런 언론의 눈속임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KBS가 참 큰 일을 했다. 개새끼들이다.

젊은 여자 좋아했다며? 젊고 예쁜 여비서라 그런 거라면서? 그런데 평균연령 36살이면, 더구나 자칭 피해자의 나이가 20대인데 어디까지 나이가 올라가는 것일까? 그냥 실력과 업무평가 기준으로 아무나 뽑았구만. 그런데도 문제...

 

결론은 아무 일 없으려면 남자의 경우 비서는 여자로 안 쓰는 것이 답이란 것이다. 평균연령 36살이면 정년 60세 기준으로 부장급 아래로는 다 포함일 텐데, 야 이거 진짜 누구를 데려다 써도 다 문제가 될 만하다. 

 

더이상 여자 비서는 없다. 아니 다른 업무에서도 혹시 모르니 여자는 배제하는 것이 낫겠다. 여직원들은 여자 상사 아래서만 일을 하게. 아주 제대로 미친 년들이란 생각이다. 기자가 기사로 쓰니 문제가 된다. 언론이 언론한다.

바로 작년까지 나 또한 여성할당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미투가 처음 시작되던 무렵에는 어렵게 용기를 낸 여성들의 고발에 남들처럼 크게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물론 한 번에 바뀐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성주의자들이 하는 짓거리 보면서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인권보다도 위에 있다며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성인지감수성을 보면서도 사람으로서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번을 계기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이미 그 자체로 사회의 해악이며 죄악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한때 한겨레나 경향의 기사를 읽고 노무현을 욕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겨레나 경향이 진보언론이라 여겼었고 기자들도 조중동과는 양심과 사명감에서 남다른 참기자들이라 믿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지금 와서 한겨레와 경향이 조중동이나 국문세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의문스럽기만 할 뿐이다. 방향만 다를 뿐 이념과 지향이 다르다고 서로 토론을 통해 경쟁하며 여론을 만들기보다 그냥 다른 관점에서 민주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는 하나에만 힘을 모으고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언론과 맞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기보다 최저임금을 자기들 뜻대로 올리지 않았다고 정부와 여당을 욕하는 기사들만 열심히 써대는 언론인 것이다. 뻔히 취재까지 하고 오보인 것을 알면서도 조중동의 보도를 그대로 따라갔던 조국사태와 정의연 논란을 보라. 익성실소유주 의혹은 한겨레를 통해서 가장 크게 제기되었던 것이었다. 한겨레가 그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원래 조중동은 언론취급도 안했고, 조중동 기자것들은 사람취급도 안했다. 그런데 한겨레와 경향도 그와 다르지 않다. KBS 역시 한때 매일같이 챙겨보며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시절이 무색하게 인터뷰를 왜곡하고, 검언유착을 가리기 위해 자발적인 오보를 내는 등 전혀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취재도 안하고, 설사 취재를 했더라도 다른 언론과 보조를 맞추느라 자기들이 취재한 사실조차 무시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타인에 상처가 될 기사를 집단으로 쏟아내기만 한다. 이런 놈들은 과연 언론이라고 기자라고 인정하고 예우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까 그 좋다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이런 놈들에게 적용되면 얼마나 사회에 해악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놈들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역시 최근 몇 년 크게 바뀐 것들 가운데 하나다. 한 때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이 자유롭게 자기들이 취재한 바를 바탕으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여기던 시절이었었다. 언론의 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발벗고 지지하던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의 자유 같은 건 밤새 술마시고 토한 위에 우글거리며 달라붙은 파리떼나 다름없는 그저 흉물스런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똑같은 소리를 서로 베껴쓰느라 바쁜 것들인데 굳이 언론사가 몇 개 씩이나 필요한가 하는 생각까지 가지게 된다. 그냥 모든 언론사 통폐합해서 정부에서 운영해도 지금보다 더 크게 나빠질 것은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손석희를 제외하고 다른 보도를 내보내는 언론이 있기는 했었는가.

 

물론 어떤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 전혀 변함없이 일관적이기는 하다. 한겨레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반성한다고 했던 것이 한명숙 전총리의 기획수사를 그대로 받아쓰며 동조하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는 것이다. 조국이나 윤미향이나 이번에 박원순이나 역시 한겨레의 행동패턴은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정확히 언론이다. 그러나 당시는 오해했다 하더라도 진실을 알고 나서 그런 언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일 것인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은 커녕 그냥 벌레새끼들일 뿐이었다. 차라리 밟아 짓이겨 버리는 쪽이 세상을 위해 좀 더 유익한 일을 터였다. 그런데 전처럼 언론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원래 유명한 사상가나 저술가들도 생애주기에 따라 주장하는 것이나 쓰는 내용들이 약간씩 다 다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험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지면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모두 달라지게 되어 있다. 결혼하기 전과 자식을 낳은 뒤와 자식마저 먼저 떠나보낸 뒤의 생각이나 글이 아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썼던 글들과 지금 행동이 맞지 않는다? 과거 했던 말들과 지금 하는 말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뭐? 그냥 달라졌나 보지.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법에 과거와 말이 바뀌면 처벌한다는 조항 같은 건 없다. 대신 거짓된 보도로 당사자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고 피해를 입혔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거의 인류보편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어차피 이제와서 말 바꿨다고 더이상 실추될 명예도 없을 텐데 말바꿨다고 비난을 듣는 대신 법적인 책임을 지게 한다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웃기는 것이다. 그래서 조국 전장관이 과거 언론에 대해 했던 말과 지금 고소하는 행동이 다르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비난할 만큼 언론들이 조국 전장관에게 최소한의 인격이나 명예 같은 것을 남겨두기나 했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태연히 조국 전장관과 그 가족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인 양 조롱하고 비하하며 모욕하는 것이 바로 그들 언론들인 것이다. 새삼 말바꾼 사실 하나 더해진다고 조국 전장관이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기자들에게만 남아 있다. 잘만 모으면 원래 있던 재산에 더해 강남 건물주는 물론 따님 포르쉐도 모델별로 장만해 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기사만 무려 100만 건이 넘었으니 죄다 받아낸다면 재계서열까지 바뀌게 될 지도.

 

언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병신들인 것인가. 진중권은 진짜 여전히 병신인 것이다. 새삼 말바꿨네 뭐네 하는 소리가 타격이 되기에는 너무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린 뒤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론 조국 전장관 입장에서도 일관된 자신만의 입장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길고 복잡하니까. 그냥 자신들이 놓인 처지를 일깨우는 정도로 그치려 한다. 말을 바꿨어도 처벌받는 것은 기자들 자신이다. 말바꿨다고 비난을 들어도 배상액을 물어내야 하는 것은 기자들 자신들인 것이다. 기자 너희들은 그냥 욕해라. 조국 전장관은 너희를 처벌하고 배상금을 챙기면 그만일 테니. 진중권도 걸리는 게 꽤 있을 텐데.

 

신이 나서 지켜본다. 물론 요즘 기자것들은 돈이 많다. 한겨레 경향마저 부동산 정책에 저리 미쳐 날뛰며 비판기사를 내는 이유일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라. 그 고통을 겪었는데 조국 전장관도 번듯하게 건물 몇 채 장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사를 망하게 할 수 없다면 기자라도 망하게 할 밖에. 아무튼 윈윈일 것이다. 기자들은 말바꿨다 비난하고, 조국 전장관은 기자들로부터 받아내서 한 재산 만들고. 그리고 조국 전장관을 본받아서 고소고발로 대가를 치르게 할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을 위한 시간이다. 기자들의 시간이다.

작년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전장관이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호소한 바 있었을 것이다. 아직 20대인 자기 딸이 혼자서 사는 오피스텔에 건장한 남성 기자들 몇이 밤늦게 찾아와서 취재한답시고 문을 두드리는데 제벌 그것만은 말아달라. 당연히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도 밤늦게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하면 마음이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출연한 여성 기자에게 그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대답이 재미있었다.

 

"기자라면 취재를 위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서에게 속옷심부름 시켰다고 저리 미쳐 날뛰는 여자 기자란 년들이 지껄인 소리들인 것이다. 낮잠 자는 것 깨우게 했다고, 혈압 재도록 시켰다고, 기분 맞춰주라 주위에서 시켰다고 저리 돌아서 날뛰는 기자란 년들이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조국 딸이어서. 그리고 기자라서. 아마 속옷심부름도 남자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그리 한 것이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웃어 넘기지 않을까. 여자 혼자 사는 집 문을 밤늦게 떼로 몰려 찾아가 두드리는 것과 속옷심부름 가운데 어느 쪽이 당사자 입장에서 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울 것인가.

 

기자란 년들의 이른바 성인지감수성이란 것에 대해 전혀 공감도 동의도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자기들이 스스로 고백했는데. 기자는 예외다. 취재대상도 예외다. 그러니까 장자연씨의 죽음에 대해서 언론사에도 여자 기자들이 있을 텐데도 정작 지금처럼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경우를 보지 못한 것이다. 김학의는 어떨까? 서지현 검사는? 그나마 김지은 씨는 대상이 안희정이라 마음놓고 여성주의를 부르짖을 수 있었다. 그런게 바로 언론의 여성주의라는 것이다.

 

새삼 당시의 기억의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도 라디오 듣다 보면 그때 그 기자가 나와서 여성 어쩌고 잘도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 번 그 집 문을 밤 늦게 덩치도 큰 남자들과 함께 떼거지로 찾아가 두들겨 보고 싶다. 혼자 살든 가족이랑 살든 상관없다. 아마 신고도 안하겠지. 나 역시 취재를 위해 하는 일인데. 박원순 시장이 기자가 아니라 저 지랄들이란 것이다. 이소정이라는 KBS 앵커 역시. 기자였어도 저들은 저리 용감하게 여성을 부르짖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더욱 여성주의를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물런 여성과 관련한 모든 이슈들에 대해서도 최소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성들 자신이 타인의 어려움을, 심지어 같은 여성의 억울함마저 외면하고 있으니까. 여성 스스로 문제라 여기지 않는데 남성들이 나서서 거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에서 보듯 어차피 뒤도 좋지 못하다. 여성 문제는 여성들끼리. 아 그조차도 못되는가? 여성주의란 참 버러지같다.

이재명이 아주 정확하게 봤었다. 맞다. 사람 아닌 것들을 사람이라 여기고 대하면 오히려 더 크게 당하는 법이다. 여성주의자들을 사람이라 여기고 동지라 여겼던 박원순 시장이 죽어서까지 그 가족마저 짓밟고 짓이기려 드는 당장의 모습들을 보라. 여성주의자는 사람이 아니다. 짐승도 아닌 그냥 벌레다. 그러면 괜히 뒤통수맞고 억울할 일도 없어진다.

 

작년 이른바 조국 사태의 첫째 원인은 조국 전장관이나 청와대에서 상황을 너무 낙관하고 느긋하게 대처한 것에 있었다. 나경원을 보라. 바로 언론보도가 불리하게 나오니 고소고발부터 들어가지 않던가. 나경원이 언론사와 기자를 고소하니 바로 기사들이 사라진다. 진짜 작심하고 대응에 나서면 언론의 자유고 나발이고 바로 꼬리내리고 입다무는 것이 언론의 속성이란 것이다. 언론의 자유란 만만한 대상을 만났을 때 마음껏 찧고 까불 수 있는 자유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언론의 보도가 어떠했었는가. 되도 않는 근거들로 정부를 공격하는 의혹보도를 쏟아내는 한겨레가 당시 정부들을 상대로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박근혜 앞에서 두 손 곱게 모으고 그저 받아쓰기만 하던 기자것들 가운데는 그 잘난 자칭 진보언론 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떨어졌다고 저리 좋아 날뛰고 있는 것이다. 강희철이 자백하지 않았는가. 이명박근혜 시절이 차라리 더 좋았다고.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정부보다 언론의 자유따위 화장실 변기에 넣고 내려버린 정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어차피 언론의 자유따위 언론이 진정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준다고 언론이 좋아해주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를 아무리 존중해준다고 언론이 마주 존중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이 대상을 존중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 공포 뿐이다. 이명박근혜가 그랬던 것처럼, 혹은 홍준표나 나경원이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 찍어누르거나 불이익을 주어 이래서는 안된다는 기억을 본능레벨에 각인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자칭 진보언론들조차 감히 보수정당과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는 민주당을 대할 때처럼 무례하고 무도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만 보면 민주당 정치인들은 지나가다가도 한 번 씩 걷어차 주어야 하는 비루먹은 똥개들이고, 미래통합당 정치인들은 감히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존귀하신 분들이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이해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마 조국 전장관도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마지막으로 몇 번 더 경고를 했었던 모양이다. 제발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켜달라. 재판정에서 나온 발언들을 균형있게 사실 그대로만 다루어 주기라도 해 달라. 그런데 개무시했지. 아마 믿었을 것이다. 민주진영 인사이니 감히 언론을 상대로 언론탄압이라 부를 만한 폭압적이고 강제적인 수단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통합당은 고소당할까봐 무서워서라도 기사를 쓸 때 조심 또 조심해야 하지만 민주당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정부에 대한 오보조차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내도 정부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선을 넘은 순간 조국 전장관도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저놈들은 좋은 말로 달래서 들을 놈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언론을 길들이던 방법 그대로를 그대로 따라하려 한다. 정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더이상 장관도 뭣도 아니니 언론이 뭐라 반발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일반인인 가족을 앞세운 조국 전장관의 행동에 언론이 더이상 무어라 할 말이 있을 것인가. 그동안 자기들 마음대로 기사를 써 왔으니 그 대가를 치를 때가 돌아 온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신나게 기사를 썼던 만큼 그에 대한 대가는 당사자였던 조국 전장관이 직접 청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조국 전장관만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 역시 한겨레의 오보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예고한 바 있었다. 하긴 운좋게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게 된 얼치기들 제외하고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 가운데 언론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김해영이나 전재수 같은 찌그래기들이야 민주당이 언론에 의해 혹독하게 다루어질 때 원내에 있지도 않았었다. 그로 인해 억울하고 원통한 일들을 수도 없이 겪는 동안에도 그들은 원외에서 구경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최소한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놈들은 인간으로서 존중할만한 자격조차 없는 버러지 새끼들이란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죄다 잡아다 동해바다 한 복판에 헤엄쳐 돌아오라고 던져버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 가능한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더이상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올가미를 죄려 한다.

 

당장은 그동안의 기사들에 대한 법적대응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그래서 더이상 두려워서라도 그런 식으로 막나가는 기사를 쓸 수 없도록.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것이 언론의 자유라는 사실을 더욱 새삼스럽게 깨닫게 만드는 언론들이란 것이다. 저런 버러지 새끼들에게 언론의 자유 같은 걸 주어봐야 세상에 해악만 더 커지는 것이다. 언론정상화? 내가 그래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KBS가 저 지랄 할 것을 알고 아예 파업하던 당시에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YTN놈들이 설마 바뀔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이 있기는 하던가. 기자를 기자답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공포고 억압이고 강제 뿐이란 것이다. 슬프지만 현실이고 사실이다.

 

아무튼 조국 전장관도 이제는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훨씬 전부터 깨달았을 테지만 그래도 신사라 행동까지는 조금 늦었다. 속옷심부름도 성추행이라는 버러지들이 오밤중에 여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 찾아가서 남자 여럿이 문두들기는 행위조차 그럴 수 있다고 변호한다. 그것도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기자들이 하는 소리다. 지금 열심히 박원순 욕하면서 2차 가해를 떠드는 것들이 같은 기자들의 행동에는 항상 우호적이다. 만일 기자가 아닌 다른 남성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데도 그런 기자들을 존중하며 신사적으로 대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버러지는 그냥 버러지다. 모기가 앵앵 거리면 일단 때려잡고 보는 것이다. 차라리 민정수석이던 시절 그런 사실을 알고 대처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언론은 일단 때려잡고 보는 것이다. 기자것들은 그냥 조져버리고 시작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역시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다. 언론은 악이다. 원래부터 그랬다. 진실이며 명제다.

내가 586선배들을 보면 하는 말이 있다. 민주화운동 같은 것 왜 하셨어요? 민주주의 따위 개나 주라 그러고, 오히려 민주화운동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처럼 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비난하고 떠밀어내려고만 하는 사회분위기를 보면서. 남들처럼 돈 벌어서 자식 좋은 대학 보내고, 유학도 보내고, 자기도 건물 사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려 하면 늬들이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나마 내가 만날 수 있는 선배들이라 해봐야 그런 논란의 대상조차 못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박원순 시장이 유독 죽어서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성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피해와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면 그냥 정계은퇴하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정도로도 오히려 동정론이 나올 것이 박원순 시장이기 때문에 죽는 것조차 2차 가해라며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까지 난도질하려 한다. 아니 아예 유가족이나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마저 연좌하여 단죄하려 한다. 거의 영락제가 했다던 10족멸을 보는 듯하다. 사상검증까지 한다. 그래서 박원순을 욕하겠는가? 아닌가?

 

그래서 드는 생각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쓸데없이 여성들을 돕겠다고 나서지 않고 남들처럼 변호사해서 열심히 돈이나 벌면서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비난을 들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을 하더라도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아예 모르는 일인 양 여겼더라면 여성주의자들도 죽어서까지 저리 가혹하게 책임을 물으려 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오로지 박원순이기 때문에 고소당한 순간 이미 유죄가 확정되고, 죽음까지도 더한 비난의 이유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서 안된다는 것인가.

 

나경원의 아들이 무슨 돈으로 유학을 갔는가 궁금해 하는 대중이나 언론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나경원의 아들이 어떻게 대학에 갔는가 일부러 파헤치려는 언론들도 없다. 장제원이나 홍정욱의 자식들이 어떻게 법의 선처 아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문제제기하는 언론들 역시 아예 없다시피 하다. 조국 전장관에 대해서는 저리 분노하는 정의당이 이들에 대해 공개적인 논평을 내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왜? 정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정의롭게 살려 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남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그조차도 죄가 된다. 반대편에서는 그보다 더 한 일이 있어도 절대 죄가 될 수 없다. 진중권 나부랭이들 떠드는 소리들을 보라.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박원순 시장이 잘못 살았다 생각한다. 여성의 인권따위 애써 신경쓰며 도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굴레가 되고 족쇄가 되어 떠나는 마지막 길까지 편치 못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특히 남성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진짜 쓸데 없는 일이고 자기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일이다.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여성주의란 것이다.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정의롭게 살려 했기에 더 가혹해지고, 정의롭게 살아왔기에 더 잔인해지며,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에 더 관대해지는 사회. 그러면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자기 자식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과 언론들이. 지식인이란 것들이. 더럽게 살아라. 추악하게 살아라.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살아라. 다행인 것은 그 수가 절대적인 정도까지는 아니란 것이다. 그래도 조금 줄었다. 얼마나 더 죽어야 더 줄어들까. 개같은 것이다.

사실 사주가 있는 기성언론들처럼 여성주의와 거리가 먼 존재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마초 그 자체인 검찰조직이 여성주의와 가까울 수 없다. 성폭행마저 자체적으로 은폐하고 넘어가려 한 집단이 바로 검찰이란 것이다. 여성검사들을 대상으로 수도 없이 성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들이 외부로 거의 알려지고 있지조차 않다. 사주가 있는 기성언론들은 여성에 대한 가해자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과연 여성주의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들을 비판하고 있었는가. 아니 보수정당의 경우만 해도 수많은 성추문이 있었지만 그 태도는 지금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여성주의자들이 나서서 조금의 이론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며 2차 가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검찰과 언론과 협력하고 있는 지금에 비해 보수정당이나 언론, 검찰과 관련한 이슈에서는 단지 당사자만 조금 비판하고 마는 정도가 전부였었다. 그나마도 당이나 조직에서 조치를 약속하면 거의 바로 인정하고 물러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보수정당에서 성추문이 일어났다고 대통령에게 입장표명을 요구하거나, 혹은 검찰내부에서 성범죄가 일어났다고 검찰총장의 사과까지 요구한 경우가 과연 있었는가. 장자연씨의 경우도 엄연히 가해자 가운데 보수언론 관계자가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왜이겠는가?

 

자칭 진보들이 보수진영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민주진영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일관하는 이유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는 그래도 된다. 왜? 기득권이니까. 저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 사회의 정통성있는 지배세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규준이 되고 그 규준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저들의 동의와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감히 저들을 거스르려 해서는 안된다. 반면 민주진영은 정통성없는 찬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찬탈자이기에 더욱 엄격한 규준을 적용하여 저들의 자격을 심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왕의 아들은 단지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자격 없이 왕위에 오를 수 있지만 왕의 아들이 아니라면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시험까지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보수권력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가며 관대하지만 민주정부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자격을 시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보수권력과 입장을 같이 하며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진중권만 하더라도 언제 진중권이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아 본 적 있었는가. 거의 모든 언론이 진중권의 말 한 마디를 받아쓰기 위해 그의 SNS에 상주하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자사의 이름을 건 기사와 사설에서조차 진중권의 말들을 인용해서 근거로 삼고 있을 정도란 것이다. 진보정당이 가장 크게 높은 대우를 받을 때도 바로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대열에 함께 하게 되었을 때였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던 당시와 민주당에 보다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지금의 모습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비교해 보라. 그러니까 더욱 자신들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보수의 편에서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그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라고 다를 것인가.

 

제법 목소리도 크게 내는 여성주의자 가운데 사회적 약자라 할 만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에, 좋은 대학 나와서, 남들 부러워 할 만한 배우자에, 남들이 우러르는 직업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란 것이다. 아니더라도 여성운동을 통해 쌓은 명성으로 정치인이나 언론이, 지식인 등 그래도 저명한 사회의 고위인사들과 교류도 나누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박원순 시장도 이런저런 경로로 인연을 맺은 여성주의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곧 여성의 지위이며 여성주의의 현주소다.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받는 대우야 말로 현실에서의 여성의 지위이며 권리다. 그러면 과연 그런 여성주의자들이 여성과 여성주의를 위해 연대해야 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이겠는가. 진보를 자처하는 여성주의자 가운데 검찰이나 언론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이가 거의 없는 현실도 이를 반영한다. 오히려 검찰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같은 여성 검사를 억압하려 할 뿐이다. 왜이겠는가.

 

지난 2012년에도 여성주의자들은 민주와 진보, 정의, 인권과는 거리가 먼 박근혜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한 바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 여성주의자들이 여성대통령에 기대서 정부의 요직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박근혜가 탄핵당하던 당시 역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한 바 있었다. 여성 대통령 아래 자신들이 대우받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남성 대통령이 집권한 지금보다 여성대통령이 계속 집권했으면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김재련이 여성주의를 지금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여성주의자들이 총궐기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언론과 검찰까지 함께 손잡고서.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과연 우연이겠는가.

 

언론이 힘을 실어준다. 검찰이 손을 빌려준다. 보수정치권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그 순간 그동안 여성의 인권을 위해 함께 해 온 시간들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과거의 동지마저 버려야 할 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보다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시절이 과거에 과연 있었는가. 이 모든 것이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주의가 나가야 할 바는 하나다. 기성언론과 검찰과 보수정치권과 손잡고서 기득권이 되어 정통성없는 찬탈자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여성주의를 위한 시대가 돌아온다.

 

기생페미니즘이라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시작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권력에 기대려는 민주진영의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기성언론에 기대고, 검찰에 기대고, 가부장적인 보수권력에 기댄다. 그들의 힘을 빌어 여성주의의 성장과 향상을 이루려 한다. 뒤바리나 퐁파두르가 누리던 지고의 지위와 권력이 마치 여성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대변하는 양 여기는 모습들이다. 그냥 기성 권력에 기대어 그 힘으로 찍어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논쟁하며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겠는가.

 

내가 얼마나 높은 사람과 가까운가. 내가 얼마나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가. 권력이 얼마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가. 얼마나 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내가 말한 대로 그 권력이 움직이며 나 자신의 의지를 대신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일제강점기 하층민 출신의 친일파들이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그렇게 완장을 찬 하층민 출신들이 많았었다. 연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않으면 어찌 그나마라도 권력이란 것을 누려 볼 수 있겠는가. 다만 당장 내가 성가시니까. 나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당연한 것이다.

가만 보면 한겨레나 kbs나 검찰과 관련해서는 사과도 빠르고 아주 정중하기까지 하다. 한겨레는 거의 오체투지를 넘어 육체투지로 자궁환관의 경지를 보이는 듯했고, kbs의 사과는 당사자들의 고발이 이루어지는 순간 바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면 엄연히 인터뷰가 왜곡당해 방송되며 자산관리인으로서 명예가 실추되었던 김경록씨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 인터뷰 왜곡이 노린 당사자인 조국 전장관에 대해서는 또 어떨까? 유시민 이사장이나, 민주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는 어떠했는가. 너무 비교가 되지 않는가?

 

더구나 기시감까지 든다. 막 유시민 이사장이 알릴레오에서 김경록씨의 인터뷰가 왜곡되어 내보내진 사실을 알리고 검언유착이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려는 무렵 한겨레는 마치 윤석열 검찰총장을 저격하듯 내용도 불확실한 보도를 단독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환호했지만 검언유착 의혹은 철저히 묻히고 말았었다. 이번에 탁현민과 관련해서 오보를 냈던 김완이 유시민더러 악의적이라 말했던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사실은 의심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덕분에 조국 전장관을 무리하게 수사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던 윤석열은 갑자기 정권과 진보언론의 희생양이 되었고 여론의 지지 속에 당시 국면을 돌파하며 더 강경한 수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윤석열이 여러 논란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자 바로 무릎꿇고 용서를 빌어 그 체면을 살려주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과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우연이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프레임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래 한동훈이나 이동재 등이 주장하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권력과 언론이 손잡고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렸다.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린 결과 지금의 검언유착 의혹이 시작된 것이었다. 자신들은 권력과 언론의 희생양이고 피해자다. 아니나 다를까 공영방송인 kbs에서 자신들과 관련해서 오보를 내고 범죄자로 단정짓는 보도까지 내고 있었다. 여러 언론들이 kbs의 보도를 받아 쓰는 가운데 kbs에서 공개적으로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까지 하고 있었다. 검언유착의 가해자가 오보의 피해자가 되고, 나아가 권력과 언론이 유착한 공작의 희생자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시 과연 이 모든 것이 우연이기만 하겠는가. 너무나 구조가 닮아 있지 않은가. 당시 한겨레와 지금 kbs가. 역할극 하기에도 좋다. 한겨레는 그래도 진보정부에서 자칭 진보언론이었고, kbs는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공영방송이다.

 

이래서 내가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나 '저널리즘 토크쇼J'같은 면피용 방송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알리바이 만들기다. 저들이 그렇게 자사의 보도마저 비판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kbs는 검찰을 제외한 다른 대상에 대한 모든 오보에 대해 반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투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소수가 이런 목소리도 있다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정황까지 보이고 있을 정도다. 뭐가 달라졌을까? 그래서 결론은 그래봐야 kbs는 kbs일 뿐이다. 아니 언론은 그냥 언론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언론과 검찰의 유착이란 얼마나 끈끈하고 단단하기만 한 것인가. 이렇게까지 자사 보도의 신뢰성까지 희생해가며 지켜야만 할 정도로 그렇게 절실하고 절박한 가치이기까지 한 것인가. 내가 기자가 아니니 알 수 없다. 다만 앞으로도 절대 kbs의 보도따위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확신만 가지게 된다. 언론의 보도따위 믿을 것이 못 된다. 더욱 정부와 검찰과 관련해서는. 그냥 kbs가 kbs한 것이다. 언론이 언론한 것이다. 어째서 여성주의자들이 언론과 결탁해서 박원순 시장을 공격하는데 하나가 되어 있는가. 쓰레기는 쓰레기고 벌레는 벌레다. 당연한 사실이다. 추악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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