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이 보좌관을 부당하게 해고했을 때 자칭 진보언론들은 누구의 편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는가. 단 하나의 언론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은 끝에 해고까지 당한 보좌관의 편에서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낸 적이 있었는가.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야당의 당대표에게 성추행당했을 때는 또 어떠했었는가? 지방지 언론사 기자가 자치의회 의원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인터넷언론사 기자가 성추행을 당할 당시 자칭 진보언론들은 누구의 편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는가? 무엇보다 말로 하기도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김학의와 그 피해자 가운데 누구를 더 동정하며 기사를 쓰고 있는가. 김학의 문죄판결은 입다물고 오히려 김학의를 수사할 수 있게 출국금지한 사실을 정권차원의 범죄로 규정짓고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 자칭 진보언론이다. 그래서 자칭 진보언론이라도 과연 약자의 편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고 지금 이 순간 자신할 수 있는 것인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정권차원의 사찰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결론을 냈을 때 자칭 진보언론은 어디에 있었는가? 가습기살균제 무죄판결이나 인보사 무죄판결 당시에 자칭 진보언론은 어디서 어떤 기사를 내고 있었는가? 한 번이라도 수사를 한 검찰이나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적이 있었는가? 특히 인보사 판결은 논리적으로도 어이없는 내용이었음에도 조국 전장관의 부인을 재판한 재판부이기에 한 마디 비판 없이 그대로 지나가고 말았었다. 하물며 자칭 진보란 것들도 조선일보 따라가기 바쁜 상황에서 뭘 어쩐다고 새삼 강자에게 무기를 쥐어준다는 말이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인상도 반대, 근로시간단축도 반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반대, 진정 자칭 진보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해 온 일이란 것이 무엇이더란 것이다. 주장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 실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있기는 하던가.

 

오마이뉴스가 충실하게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입을 빌어 내놓은 기사를 보면서 어이가 다 없었다. 딱 환경을 앞세워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는 정의당의 모습 그대로다. 국민의힘이 정면으로 반대하기 곤란한 입장이니 원리적인 위치에서 대신 강경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통해 반대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진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정의나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과 이해를 공유하며 그들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때로 국민의힘의 논리를 자신들을 위해 빌리기도 한다.

 

세상에 가장 웃기는 것이 자칭 진보들이 사회적 약자 운운하는 것이다. 너무 높은 곳에서 굽어보며 판단하기에 일본군위안부나 일반 성매매여성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정의연을 무력화하는데도 앞장섰던 것이 바로 자칭진보들이었다. 무려 20년을 기다려 공격을 퍼부은 것이었다. 그런 고담준론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나는 오늘도 그들을 혐오한다.

 

한경오가 망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한경오가 망해서 한국에 자칭 진보언론이 사라지면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다. 수구언론을 돕는 손발도 못되는 손가락 발가락 몇 개 더 잘라내면 그만큼 세상은 더 좋아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바퀴벌레가 싫어한다고 가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난 환경주의자가 아니다.

검찰이 세월호 유족 사찰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을 때 자칭 진보는 조용했었다. 가습기살균제와 인보사와 관련해서도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한 마디 비판조차 못하고 있었다. 탄소배출이 많다고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는 바로 그 자칭 진보다. 방사능물질이 유출되어도 경제성 평가에서 수치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권차원의 범죄라던 바로 그 자칭 진보인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해서도, 유가족에 대해서도, 인보사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나 법원의 판결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당연하다. 동지인 것이다. 반정부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자칭 진보의 가치다. 세월호보다도, 가습기살균제보다도, 인보사보다도 더 우선하는 절대의 가치인 것이다. 그런 정부를 상대로 상처를 주는 수사와 판결을 보여주는 검찰과 재판부를 향해 감히 자칭 진보가 비판같은 걸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정당하고, 가습기살균제와 인보사에 대한 재판부의 결론도 정당하다. 그냥 민주당과 민주정부에만 불리한 수사와 판결을 내리면 그것만으로 나머지 모든 수사와 판결이 정당화될 수 있다.

 

흥미로웠다. 김학의의 범죄보다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자치에 더 분노하는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에 대해서. 월성원전의 위험성보다 월성원전의 조기폐쇄를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자칭 진보를 보면서. 류호정이 새삼스러운 게 아니란 소리다. 오래전에 말했었을 것이다. 언론이 마음먹고 털기 시작하면 정의당이 아주 재미있어질 것이다. 류호정 건도 당시 대표가 미투로 물러나면서 애써 무마해 오던 것이 터져나온 결과였었다. 조선일보처럼 되고 싶다. 국민의힘처럼 되고 싶다. 그래서 자칭 진보인 것이기도 하다.

 

염치가 사라졌다. 자기들도 어떻게든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조선일보처럼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쳐야겠다. 결론은 뭐다?자칭 진보를 지금도 소비하고 있는 그놈들도 공범이란 것이다. 조선일보처럼 가짜뉴스를 내고, 국민의힘처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와 사회에 얼마든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자칭 진보는 한결같았었다. 국민의 힘을 위해 가덕도 신공항 반대에 목숨을 거는 모습에서 그 실체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버러지는 버러지다. 다른 논리는 필요없다.

벌써 수 십 년은 지난 것 같다. 삼성에서 아직 HDD를 만들던 무렵 삼성은 두 가지 사실로 유명했었다. 두번째가 바로 AS가 진짜 좋더라는 것, 그리고 첫번째가 바로 AS받으러 갈 일이 많더라는 것. 그만큼 삼성 HDD의 품질이 개떡이었다는 건데 AS를 잘해준 덕분에 아예 무상기간 끝날 때 쯤 표 안나게 망가뜨려서 새 제품으로 바꾸는 게 팁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과연 고장나면 그때그때 바로 교체해주는 AS와 AS받으러 갈 일 자체가 없는 제품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 것인가.

 

몇 달 늦게 백신을 접종하게 된 덕분에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금 세계에서 접종 중인 백신들에 어떤 효능과 부작용이 있고 또 접종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혼란과 오류들이 생겨났으며 그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역시.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레기놈들의 선동이 이번에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건 그만큼 세계적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상당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부작용이 어째서 한국에서만 빈번하게 나타나는가. 아스트라제네카가 그리 문제라는데 오히려 유럽 여러나라들에서는 1차접종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확인한 상태다. 기자놈들만 무시한다. 왜? 반정부만이 언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병신들은 많다지만 워낙 확진자와 사망자가 넘쳐나서 당장 아무 백신이라도 접종하고 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나라들과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지켜보면서 준비를 마치고 접종을 시작할 수 있는 우리나라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려 한다. 싱가포르는 아예 도시국가 수준이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백신을 접종한 나라들에서 확진자가 얼마나 줄었고 사망자는 얼마나 줄었는가? 우리보다 환자수나 사망자수가 더 적은 나라들인가? 일본은 아예 주사기도 백신도 부족해서 오히려 더 난리더만.

 

20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계의 뉴스들이 바로 실시간으로 들려온다. 그래서 백신을 먼저 접종했다고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에 가서 살고 싶다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접종률이 높다고 그리로 이민가고 싶은 것인가? AS 잘해준다고 좋은 제품이 아니란 것이다. AS센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좋은 제품이다. 대개는 그런 정도로 품질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누가 지금 더 잘하고 있는가? 백신을 서둘러 먼저 접종하는 나라들인가?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인가?

 

언론의 자유란 필요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어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모든 언론이 조선일보를 닮아 버린다. 아예 조선일보처럼 하게 해달라고 젊은 기자들이 선배기자들에게 덤비는 언론들마저 있을 지경이다. 조선일보처럼 되고 싶다고 파업하는 방송사도 있다. 그때 내세운 명분이 언론정상화였다. 그때 파업했던 언론들 지금 꼬라지가 어떠한가. MBC만 유일하게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이야 말로 백해무익이다. 내 신념이 바뀌었다. 대단한 언론들이다.

과학은 데이터가 전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어진 데이터를 통해 결론을 유추하고 이론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자 수가 전세계적으로 2억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게 다 데이터다. 그래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자 가운데 부작용을 경험한 이들은 몇이나 되고 그 가운데 위중한 지경에까지 이른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코로나19 면역에 효과가 있었는가.

 

조선시대에는 왕이 농사를 짓고 왕비가 길쌈을 했다. 특별한 신분에 있는 이가 솔선수범하여 백성들에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그저 수많은 국민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5천만 국민 가운데 하나이지 특별한 하나가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수많은 데이터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2억 명의 실제 사례가 있는데 대통령 한 사람 맞고 안 맞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백신이 불안하면 기존에 이미 접종한 사람 가운데서 부작용을 찾으면 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맞는다고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이해한다. 기자들이다. 정치인들이다. 한국 교육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 새삼 깨닫게 된다. 공부 많이 한 놈들이 과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2억 명이란 데이터가 가지는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대통령만 바라보고 대통령이 접종만 하면 안심하고 맞아도 되겠다. 집단으로 조선시대에서 타임슬립해 온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과학의 방법론만 알고 있어도 해결될 문제란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맞으면 문제가 없는가? 병신은 답이 없다.

한국 원자력발전의 안전문제는 심각하다. 온간 비리와 부정이 판치고,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사고가 빈발한다. 그러나 월성원전의 조기폐쇄는 명백한 잘못이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김학의는 성폭행이 아닌 단지 성상납을 받았을 뿐이다. 여성의 성과 인권을 유린한 것이 아닌 사업자와 부정한 관계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죄질은 나쁘지만 그를 처벌하기 위해 대통령이 재조사를 지시하고 출국금지까지 시킨 것은 중대한 정권차원의 범죄다. 마땅히 청와대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고보니 후자는 정신분열이 아니네. 일관되다. 어차피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여성의 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성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김학의의 범죄는 여성과 상관없는 것이다. 여성주의와도 상관없는 것이다. 진보와는 더욱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도 박원순 시장을 욕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겪었던 수모와 모욕은 여성들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원자력발전의 안전에 문제가 있어도 조기폐쇄는 범죄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으면 일반인이고 그에 대한 수사는 인권침해일 뿐이다. 바로 한국의 자칭진보들인 것이다.

 

라임과 옵티머스에 혹시라도 정치권이 연루되어 있으면 큰 문제지만 검찰이 연루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향응을 제공받고 지검장이 직접 무혐의 처분으로 피해를 키웠음에도 누구도 그에 대해 문제삼는 경우가 없다. 하긴 국민의힘 관계자가 연루되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 연루되었을 때 뿐이다.

 

표창장은 업무방해인데 실험결과 조작은 그를 감수할 관청이 검수를 잘못한 것이므로 무죄다. 그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칭 진보에 대한 나 자신의 증오와 혐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를 근거한 판단이 오히려 예언이 되어 버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뇌가 둘이다. 영혼이 둘이다. 정신이 둘이다. 그나마 여성주의는 하나다. 60년대 유명한 판결을 떠올리게 만든다.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여성은 따로 존재한다.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다. 욕나오는 이유다.

 

여성주의만이 아니다. 자칭 진보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자칭 진보는 여성주의에 포섭된 지 오래다. 여성주의의 뿌리는 친일 친독재 친기득권이었다. 단지 착각속에 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래서 자칭이다. 버러지새끼들이다.

어디 단기계약직이라도 좀 괜찮은 자리 하나 알아보려 하면 신원조회부터 하게 된다. 동의서부터 써야 한다. 내가 전과도 없고 그동안 큰 문제없이 성실하게 잘 살아왔음을 경찰기록을 통해 입증해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에 무기계약직 되면서도 그래서 서류접수할 때 동의서부터 써주었었다. 예전 직장에서도 동의서를 작성한 적 있었다.

 

어차피 그냥 몸쓰는 일이란 것이다. 대단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없이, 그렇다고 크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만한 자리도 아닌 몸쓰며 일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는데도 전과기록이 중요하다. 어딘들 안 그럴까? 그런데 의사는 아니었다. 살인을 저지르든 강간을 저지르든 시간만 지나면 다시 의사면허는 복구된다. 사람의 생명을, 더구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에게 전과기록이 아무 의미가 없다.

 

재미있는 건 그런 의사들의 범죄에 대해 의사면허를 박탈하고 재발급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는데 의사들의 반발을 고스란히 옮겨주는 언론의 존재일 것이다. 의사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면허까지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니 코로나19로 위급한 상황에 백신접종을 보이콧하겠다. 문제가 될만한 발언인데도 비판 한 마디 없이 오롯이 야당의 노골적으로 편드는 발언까지 긍정적으로 옮기고 있다. 언론의 정의란 무엇일까? 언론의 가치란 것은? 그리 입바른 소리 잘하던 자칭 진보까지도 역시 반정부가 진보고 정의이기에 철저히 침묵한다. 시험으로 얻은 권력이야 말로 진짜 권력이라는 의미일 것인가. 백신접종을 보이콧하는 것도 의사의 권리다.

 

바로 실력중심 사회가 만든 암묵의 카르텔이란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갔고 시험 잘봐서 좋은 직업 얻었으니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검사든, 판사든, 의사든, 기자든, 그래서 장혜영이나 류호정이 그리 국회의원을 우습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깟 무지렁이 국민들로부터 표 조금 더 얻었다고 배지나 달았을 뿐인 놈팽이들따위. 대통령인들 하찮게 여겨지지 않겠는가. 자기들은 시험으로 지금의 자리를 얻었고 대통령은 그냥 무지렁이들의 인기투표로 당선되었다. 하물며 표를 준 것이 비국민을 넘어 비인간으로 취급해야 할 문빠들 아니던가. 문빠는 국민도 인간도 아니다. 그러니 의사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협박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런 의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악이다.

 

누가 의사의 행동을 비판하고 누가 의사들의 행동에 최소한 침묵하고 있는가. 너무 명확해서 굳이 더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내가 전과기록조회 동의서를 써 보았기에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누가 진정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인가. 내 앞에서 노동자 권리 운운하는 자칭 진보 새끼들은 뇌를 파버리는 게 맞다. 버러지들.

내가 자칭 진보들 보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것이 윤석열이 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이미 옵티머스에 대한 고발을 무혐의처분내린 사실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면서 오히려 정부와 여권의 유착의혹만을 불지피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그렇게 라임과 옵티머스가 중대한 범죄이고, 그와 연루된 인사들의 면면과 혐의가 중요하다면 윤석열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만 빠진다. 심지어 라임의 김봉현으로부터 향응을 받은 검사들이나 그들의 존재를 은폐하려 했던 윤석열의 행동도 비판의 대상에 오르지 않는다. 왜일까?

 

한겨레나 경향이나 정의당이나 자칭 진보들은 항상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두고 문빠라며 비하하고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 왔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문빠라 그런 것이다. 문재인 따위나 지지하는 50대 남성 기득권들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자기들을 적대하여 그러는 것이다. 그러면 묻는다. 자신들 자칭 진보를 비판하는 것이 문빠라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윤석열 개인이나 그 주변의 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자신들은 무엇인가? 심지어 검찰이 판사사찰을 한 사실조차 정당화하며,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낸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정부를 공격한다. 이미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월성원전을 조기폐쇄한 것도 정권차원의 범죄다. 왜? 윤석열이 그리 주장하니까. 자칭 진보를 공격하는 이들이 문빠라서 그런 것이라면 그들은 윤빠라서 저따위 주장을 하는 것인가?

 

자칭 진보가 아예 묻어 버린 윤석열의 범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판사를 사찰해도 무죄, 주가조작에 사기까지 쳤어도 무죄, 그런 범죄를 검찰총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묻으려 해도 무죄, 한 사람을 언론과 검찰이 결탁해서 범죄를 조작하려 했어도 무죄, 그를 은폐하려 했어도 무죄, 금융사기에 검찰이 가세하고 그를 은폐하려 했어도 무죄, 오히려 그를 징계하려 한 장관과 대통령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 진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작년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을 징계하려 했을 때 정의당의 논평을 기억한다. 한겨레와 경향이 어떤 식으로 기사를 냈는가도 기억한다. 검찰의 범죄는 범죄가 아니다. 윤석열의 범죄는 그 자체로 정의다. 수사해서도 처벌해서도 징계해서도 안된다. 

 

윤석열 없이 과연 진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 것인가. 그런 정당을 지지하고 그런 언론을 믿고 보는 자칭 진보란 어떤 존재일 것인가. 예전에는 그래도 지지자와 정당을 따로 구분해 봤지만 최근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장관청문회에서 따지겠다는 게 바로 정의당이란 것이다.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그에 대해 한 마디 비판이라도 햇었는가. 오히려 류호정에게 부당하게 해고당한 보좌관에게 몰려가 욕설이나 퍼붓는다. 자칭 진보가 자칭 진보인 이유다. 저런 놈들이 진보를 떠든다? 나경원이 애국을 말하겠다.

가장 순수한 감정은 공포다. 여기에 증오를 더해야 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공포와 증오에는 끝이 없다. 대개는 시작도 없다. 공포라 여기니 공포가 되고, 증오하게 되니 증오가 된다. 상대가 완전히 말살된 이후에조차 공포와 증오는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 공포와 증오는 단순하다. 논리가 필요없다. 공포는 공포이면 되고 증오는 증오이면 된다. 공포영화에 설명이 너무 많으면 곤란한 이유도 그래서다. 스릴러에서 악역에 대해 너무 많은 설명을 하다 보면 이야기는 깊어지겠지만 대신 스릴러로서 긴장감은 떨어지게 된다. 악은 그냥 악인 것으로 족하다.

 

이른바 보수유튜버에 비해 반대편의 리버럴 유튜버들은 진짜 말이 많다. 너무 많이 많고 논리도 복잡하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만큼 복잡하니까. 반면 보수유튜버들은 논리가 참 단순하다. 저새끼 나쁜 새끼다. 저새끼 하는 짓거리 전부 나쁜 짓이다. 하긴 검찰 관련해서 리버럴 유튜버들의 논리도 거의 비슷하다. 최근 이낙연에 대한 발언들도 거의 비슷한 맥락을 이룬다. 똥파리들이 이재명에 대해 떠드는 것이나 비슷하다. 복잡할 필요가 없다. 저 새끼는 나쁜 새끼고 저 새끼 내버려두면 반드시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저 새끼 조져버리자. 더 이상 필요한가?

 

어째서 유튜브에서는 보수유튜브가 리버럴유튜브에 비해 더 극성인 것인가? 선택적 미디어의 한계인 것이다. 보편적 미디어는 어찌되었거나 보고 싶지 않아도 정해진 내용은 끝까지 지켜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선택적 미디어는 그냥 지 보고 싶은 것만 그 안에서도 골라서 볼 수 있다. 그러면 대중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포와 증오를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계산 없이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케 만들기 때문이다. 저 새끼 죽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자기 목숨까지 내던져가며 테러에 나설 수 있다. 저 새끼로 인해 내가 내 가족이 내 나라와 내 민족이 위험하다는 두려움 하나만으로 어린아이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강간하고 고문하고 학살할 수 있다. 그래서 선동은 공포와 증오로 하는 것이다. 그 공포와 증오를 풀어내는 논리는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하고 치밀한 반면 무력하다. 

 

그래서 무언가? 내가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에 기반해 쓴 글들이 예언이 되는 이유다. 나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증오이기도 하다. 증오는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낸다. 내가 생각하는 자칭 진보와 부합하는 근거들이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자신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믿게 된다.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언론이 하는 짓거리다. 보수유튜버들이 생산하고 있는 공포와 증오를 위해 근거를 만들어 제공한다. 한겨레 기자들 가운데도 아마 신의한수나 펜앤마이크, 혹은 가세연 구독자가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면 그를 뒷받침할만한 기사를 자신들이 생산해서 보충해준다. 아주 악질적인데, 그래서 보수유튜버가 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증언보다 더 자극적인 더 믿고 싶은 더 체계적인 근거들이 제시된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공포와 증오에 맞서는 지성의 마지막 보루인지 모르겠다. 알릴레오가 심심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공포가 없다. 증오가 없다. 자극적인 그 무엇이 없다. 그저 온건하고 치밀한 치열한 지성의 유희만이 있을 뿐이다. 기자들도 관심이 없다. 아마 그 내용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기자도 이제는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내가 김용민 유튜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김용민의 조급함은 공포에서 비롯된다. 증오에서 비롯된다. 이동형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물러나 있고, 김어준은 아예 가지고 놀려 한다. 그래서 그런 선동이 얼마나 먹히느냐면 현재 집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고 집권당은 민주당이란 것이다.

 

도고일척마고일장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도가 한 자 자라면 마귀는 한 길을 자란다. 보편의 진리다. 그 이유이기도 하다. 공포와 증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드무므로. 아마도 아닐까?

한 쪽에서는 그리 코로나19를 걱정하며 정부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범죄자 동료 지키겠다고 코로나19 의 위협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백신의 접종을 거부하겠다 한다. 바로 의사새끼들이다.

 

작년 의사파업 당시 의사들의 선의를 강조하던 버러지 새끼들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시국을 틈타 코로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더라. 사람이 얼마나 뻔뻔하면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의협과 의사는 별개라는 주장은 작년 의사파업으로 개소리임이 드러났다. 작년 의사파업에 다른 목소리를 냈던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되었던가. 의협과 이해를 같이했었고 행동도 같이했었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동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았으면 면허도 박탈하고 재발급도 해주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법안인데 이 새끼들이 지금 사람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 바로 의사새끼들이란 버러지들의 민낯인 것이다. 하다하다 이제는 코로나19 백신접종까지 거부하는 지경에 왔는가. 아무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기자란 새끼들은 그를 비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세균이나 이낙연 같은 어중띤 인간들로는 안된다는 이유다. 확신이 생겼다. 다음 대통령은 보다 더 젊고 선명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아니면 총리라도. 버러지는 버러지일 뿐이다. 답은 명확하다.

자칭 진보는 내가 안다. 그런데 우습게도 자칭 여성주의자들까지 내가 거의 꿰뚫게 되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자칭 여성주의자들은 오히려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에 적극 찬동하는 입장일 것이라고. 김재련이 박유하와 주고받는 대화를 보라. 여성가족부장관이 논문을 읽고도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본군위안부는 매춘부다. 2000년대 초반 이미 자칭 진보에 자칭 여성주의자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란 것이다. 일본군위안부는 일반 매춘부와 다르지 않다. 민족의 희생양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민족범죄가 아닌, 그냥 남성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성매매특별법 이슈가 하필 비슷하게 불거지는 바람에 더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군위안부를 민족문제로 역사문제로 국가문제로 삼는 것은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도 588이나 자갈마당 같은 현실의 성매매여성들과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성주의자들이 화해치유재단에 적극 합류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과 한겨레, 경향이 뻔히 사정을 알면서도 조중동의 정의연공격에 동참했던 것이었다. 정의연을 무력화시키고 위안부문제를 국가와 민족, 역사로부터 분리해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바라는 진정한 문제해결을 시작할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민족의 꽃이 되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순결한 꽃으로 가공되고 있다. 일부 인정하는 바다. 다만 그 의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한다.

 

딱 이 사안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정의당과 민주당을 나누는 기준일 수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진짜 열성지지자는 차라리 잘되었다 기회로 받아들이려 할 지 모른다. 그동안 위안부에 대한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예상대로다. 저놈들은 진짜 발전이란 걸 모른다.

 

진보에 대한 편견을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 진보가 정의이거나 진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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