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법사위원장 윤호중은 개혁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반면 백혜련은 공수처법을 제외하고는 국민의힘과 다를 것 없는 보수적인 인사였었다. 이번에 법사위원장에 내정된 박광온은 반대로 온건파에 속하고, 박주민은 정의당 의원들과 더 친하다 할 정도로 진보적인 인사다. 

 

민주당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설마 박주민을 밥사위 간사로 내정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보면 보다 보수적인 인사를 법사위 간사에 앉혀서 협치네 뭐네 헛짓에 시간 보낼 줄 알았는데 법사위원장이 박광온이라는 점을 고려한 모양이다. 법사위원장이 적당히 견제를 할 테니 야당과의 협상은 박주민이 맡는 것이 좋겠다. 민주당이 아주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일까?

 

지지자들의 선택도 돋보인다. 상임위간사를 임의로 배제하는 것은 사실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딱히 명분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고위원이 되었다. 말이 최고위원이지 실제 의원총회에서는 국회의원 한 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최고원회의에서도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법사위간사는 야당과 협상하는 통로이고, 법사위원장으로 직접 가는 창구다. 최고위원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는 그동안 사례에서 수도 없이 보아 왔었다. 백혜련을 내보내고 박주민을 들인다.

 

일단 기대해 볼 만한 부분이긴 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박주민이 소신을 가지고 여러 법안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다른 상임위에서 어느 정도 보수적으로 후퇴한 안이 법사위로 올라오게 되겠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법사위가  될 것이란 뜻이다. 그나마도 후퇴시키던 것이 이전 백혜련이었던 것이고.

 

씨발 년놈들 때문에 열받던 것이 이제는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다. 주제를 알아야 한다. 민주당 지지율이 대통령보다 높으면 모를까 한참 낮은 주제에 대통령 무시하고 노는 놈들은 다음 선거 때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당헌당규는 당원들 동의가 있어야 개정할 수 있다. 한 놈 씩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다. 써글것들.

원래 정의당이란 정당이 그렇다. 박원순과 조국에는 그리 분노하면서 김학의는 단지 검찰이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이라 인권을 지켜주어야 한다 주장한다. 박원순과 조국을 그리 물어뜯던 정당이 주호영, 박형준, 오세훈의 부정과 범죄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오히려 지지한다. 오세훈이 용산참사는 철거민들 잘못이라 발언하던 그 날 정의당의 논평은 박주민이 올려받은 월세에 대해서만 나오고 있었다.

 

외교행랑도 아니고, 신고와 납세까지 모두 끝난 것들이고, 더구나 그 가치라고 해봐야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 말이 도자기지 마트에서 간단히 구입할 수 있는 찻잔, 접시, 그릇 등도 불리기는 도자기란 것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보다 그저 국민의힘이 주장하니 따라가며 믿는다. 아마 지금 정의당 안에는 광주민주화운동도 남파간첩들이 주도한 것이란 국민의힘 주장에 동조하는 놈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당에서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 지금 국민의힘인데.

 

작은 문제에는 - 아니 문제라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리 엄격한데 정작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하거나 혹은 관대하다. 소인배라는 것이다. 작은 잘못에는 그리 민감하면서 큰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나마 지금 민주당이 정의당보다 낫고 더 큰 지지를 받는 이유인 것이다. 입으로는 진보라는 거대담론을 떠들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좁쌀보다 작게 작은 이슈만을 쫓는다. 작은 이익을 쫓으면 당연히 큰 이익을 놓치는 법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진짜 깨끗하고 훌륭한 인물은 더러운 진흙탕에 발을 딛으려 하지 않는다. 하필 법무부장관에 김명수가 임명된 이유인 것이다. 다른 사람 이리저리 알아봤더니 모두 고사하고 김명수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 아싸리판에 일조하는 놈들이 자기들만 깨끗한 척 하는 정의당이란 점에서 그저 웃을 뿐. 내가 평생 정의당을 지지할 일 따위 없을 것이란 이유다. 요즘 유시민도 아주 정을 뗀 모양이다만. 진짜 더러운 것들이다.

원래 도박에서 돈 잃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흔한 패턴이다. 따기만 하면 저 돈이 내 돈일 텐데. 이번 판만 이기면 저 돈이 모두 내 것이 될 텐데. 그로 인해 자기가 잃을 지 모른다는 계산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그동안 자기가 잃은 돈과 딸 돈만 생각하지 지금 자기 가진 돈과 잃게 될 돈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 놈들에게서 보이는 흔한 패턴이다. 자기에게 표를 준 지지자는 그냥 원래 당연하게 표를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표를 주지 않은 나머지에 더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쓰게 된다. 지지자들은 당연히 표를 주는 놈들이니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도 저 표만 가져오면 나는 안정적으로 더 오래 더 높은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언론이 전부 나서면 시장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한다. 지금 기회에 언론에 잘 보여야 다음 선거에서 자기가 낙선하지 않을 것이다. 잘하면 다음 선거에서도 이기고 더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박영선과 김영춘은 과연 언론에 의해서만 낙선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렸던 지난 대선과 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은 매번 압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언론의 힘에 의해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것이라면 그 전 선거에서는 언론의 도움이 있었기에 압승했던 것인가?

 

터무니없는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은 정동영을 그야말로 압도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작 받은 표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득표율은 높았는데 투표율 자체가 낮았던 탓이었다. 정동영을 찍을 수 있었던 유권자들마저 차마 정동영은 찍기 싫어 문국현이라도 찍거나 아니면 기권하고 말았다. 그동안 민주당이 보수정당들과 치른 선거에서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이유였다. 저 놈 새끼들 도저히 찍지 못하겠다는 유권자들이 그만큼 많았다. 그런 유권자들이 비로소 민주당으로 모이고 나서야 2016년 총선부터 민주당은 보수정당과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유권자들이야 말로 민주당 다수가 주장하는 강경한 지지층인 것이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 과연 민주당은 이후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을 찍는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따라가면 어차피 원조는 국민의힘이므로 중도층 역시 국민의힘을 찍는다. 그동안 민주당이 져 왔던 선거들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중도로 확장한다고 한나라당 새누리당 따라하면 국민들은 오히려 한나라당 새누리당에 더 큰 지지를 보냈었다. 국민의힘처럼 하지 말라고 표를 주어 180석 만들어 놨더니만 국민의힘을 따라하겠다는 정당을 누가 믿고 표를 주겠는가. 그리고 원래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다수는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상태다. 이길 수 있겠는가.

 

당장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10% 넘게 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째서 민주당은 그런 대통령의 지지율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않고 있는 것인가. 과연 대통령의 지지율이 온전히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민주당 다수 국회의원들이 지금 하고 있는 너무나 큰 착각인 것이다. 자신들을 낙선시키는 것은 언론도 있지만 지지자도 있다. 민주당에 분노하고 실망해서 그들을 적대하게 될 지지자들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적의 언어로 싸우지 말라는데 지금 지지자를 정작 적대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 자신이란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놓고 도전하고 있는 검찰을 두고 오히려 부화뇌동하는 민주당 최고위원이란 도대체 뭐하는 작자인가. 대통령의 뒤에 칼을 꽂겠다. 노무현 전대통령 죽을 때 등뒤에서 죽으라 떠민 인간 가운데 민주당 놈들이 적지 않았었다.

 

더 웃기는 건 과연 민주당 정치인이란 것들이 조중동에 아부한다고 과연 조중동이 민주당을 위해 좋은 기사를 써주려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지금 민주당이 조중동에 아부하면 선거 때 조금이라도 민주당에 유리하게 기사를 내 줄 것 같은가. 그래도 상관없다는 놈들이 대부분이란 점에서 이건 그냥 선거에서 한 번 지고 지레 겁먹은 나머지 정신줄을 놓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상황판단이 안되는 것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진정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또 한 번 지난 열린우리당처럼 언론 눈치보느라 할 것 못하고 시간만 보내 보라. 그래서 다시 지금 국민의힘처럼 100석 미만으로 떨어져도 자신의 자리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이소영 오영환 등 이번에 국회에 들어간 초선 나부랭이들은 거의 대부분 낙선하게 될 것이다. 백혜련은 과연 경선이나 통과할지 모르겠다. 최고위원은 이종걸도 거쳤던 자리다. 그래도 변호사 개업하면 되니 상관없으려나.

 

송영길이 조무라기라는 이유인 것이다. 그만큼 경험을 했으면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 좋아하는 정치가 민주당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할 때가 되었다. 맞아가면서도 배우는 것이 없으면 그건 그냥 아메바 수준인 것이다. 갈수록 선을 넘어서고 있다. 다시 2015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싶은 모양이다. 시간이 없다.

원래 국민의힘도 한나라당 시절까지 상당히 중도까지 아우를 수 있었던 정당이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김진표만 해도 국민의힘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보수적인 인사이고, 백혜련이나 조응천 또한 성향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나누는 차이라면 결국 국가와 권력의 운용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클 것이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민주당과 그런 것 상관없다는 국민의힘의 차이가 국민의힘에 가도 좋을 인사들을 민주당으로 모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보수화는 대한민국의 보수화처럼 정반합의 필연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진보가 대세를 쥐었으면 한 번은 보수가 대세를 쥔다. 착각하는게 환경운동한다고 다 진보가 아니란 것이다. 인권운동한다고 다 진보가 아니다. 독재에 저항했다고 다 진보가 아닌 것과 같다. 그런 인식의 괴리가 민주당을 진보로 여기게 하지만 언론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중도와 합리가 민주당 안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때로 보수로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지금 민생론을 들고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그랬었다. 민주당이 민생론을 들고 나올 때는 진보적 의제로서의 민생이 아닌 보수적 의제로서의 민생을 추구할 때다. 이를테면 집 있는 사람들 세금 깎아주고, 집 사려는 사람들 대출 쉽게 해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대재해법의 후퇴도 그런 민생의 일환인 것이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는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민생론이 나오는 순간 경계하게 된다. 이건 신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더 가까워지려 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지지자들을 저버리려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을 골라내야 한다. 백혜련은 사실 허상이 좀 있다. 공수처법 통과를 주도한 탓에 검찰개혁에 적극적인 인물로 대중들에 여겨지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정작 검찰개혁의 완성에는 조응천과 함께 매우 적대적이다. 여러 법안들을 처리하는데 국민의힘 입장을 적극 반영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런 사람들을 걸러서 국회의 구조를 바꾸면 민주당도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복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맞는 사람을 더 많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민주주의의 투쟁방식이다.

 

아무튼 돌아가는 꼬라지 보아하니 열린우리당 시즌2는 확정인 듯하다. 180석 가지고 개혁하랬더니 책임이 무겁다고 다 때려치고 국민의힘과 손잡고 놀아나려 한다. 그러면 과연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지금 민주당을 선택해 줄 것인가. 민주당이 잘해서 180석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것들이 자기가 잘나서 국회의원 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등뒤에 칼을 꽂는다. 검찰이 청와대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상황에 검찰개혁을 그만두겠다. 아마 대선도 이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망하면 변호사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지지자가 뭐라 해도 그다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백혜련이나 조응천이나 국회의원 낙선하면 변호사하며 먹고 살면 된다. 이소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배에 기름이 낀 것들이라 지지자의 목소리도 귓등이다. 더구나 최고위원도 되고 대변인도 되었으니 간덩이가 배밖으로 나오기 쉽다. 역시 한 번은 망해 봐야 하는 것일까.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망하고도 배운 것이 없다면 망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듯하다. 지지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음 총선 경선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맞지 않는 것들은 쳐낸다. 절대 남겨서는 안된다.

책임이란 행위에 따라오는 것이다. 당연하게 무언가를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유권자들 앞에서 수많은 약속을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국회의원이 되고자 유권자 앞에 나선 만큼, 그리고 유권자가 선택하여 당선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지기 싫다? 

 

어이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되고 싶은데 국회의원이 되어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 원내 다수당은 되고 싶은데 다수당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싫다. 하긴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되기 전까지 민주당은 대권도 원내 다수당도 다 싫다고 일부러 선거에서 태업을 일삼고는 했었다. 딱 그 시절 국회의원인 것이다. 기동민이라 했던가?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원내 다수당으로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보다 단지 언론의 비난을 듣는 것만이 두렵다. 그럴 거면 국회의원을 왜 하는 것인가?

 

저따위 소리 하는 놈들은 모두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권한과 의전만 누리려는 버러지라 보면 될 것이다. 굳이 민주당일 필요도 없이 그저 공천만 주면 아무 정당이라도 상관없는 놈들인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고 그 의지가 너무 간절하면 책임 이전에 뭐라도 하나 더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텐데 그런 주제가 되지 못한다. 도대체 민주당 안에 저런 버러지 새끼들이 - 아, 그 대빵이 이낙연이었던가. 책임은 지기 싫고, 그러나 대통령은 되어야겠고.

 

다른 건 다 그냥 넘어가도 저따위 개소리만큼은 도저히 이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내가 사는 지역구였으면 어떻게든 낙선운동이라도 할 텐데. 저런 놈들 잘 걸러내야 민주당이 제대로 정책을 낼 수 있는 정당이 된다.

 

역시 문재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 사람이 좋아서 때로 독해야 할 때 독해지지 못한다. 악해야 할 때 악해지지 못한다. 그랬으면 저런 놈들이 과연 민주당에 발을 붙일 수 있었을까.

 

새삼 열받는 개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국민의힘으로 그냥 넘어가기를. 원래 국민의힘에 갔어야 할 인간들이 민주당에는 너무 많다. 버러지들이란 뜻이다. 민주당은 아직 멀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한다라... 재미있어졌다. 과연 여성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뒤에도 자칭진보들은 국민의힘의 편에 서려 할 것인가.

 

지난 보궐선거에서 자칭 진보들은 용산참사와 관련한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박주민을 핑계삼아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지 않았었다. 한겨레는 오세훈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자발적으로 오보를 내는 자기희생까지 감수하고 있었다. 철거민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여성주의는?

 

대부분 2030 남성들에게 비난을 넘어선 적대의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민주당이지만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의 선택은 국민의힘이 여성주의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지 민주당과 손잡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민주당을 공격함으로써 국민의힘이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주려 했었다. 여성주의가 바라는 여성주의 정책이란 국민의힘을 통하는 것이지 민주당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여성주의를 적대하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어 국민의힘에서 여성주의 정책을 모두 후퇴시켰을 때도 자칭진보는, 아니 여성주의는 여전히 국민의힘만을 지지할 것인가.

 

그건 여성주의의 DNA이기도 한 것이다. 친일과 친독재와 친기득권. 지금 자칭 진보가 친기득권으로 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재미있어졌다. 이준석을 응원한다. 국회의원은 못돼도 당대표는 해봐야지. 잘 해 보라!

엄밀히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적시했을 때 지금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권리가 남성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을 이루었는가 묻는다면 회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30대까지 젊은 남성들이야 느끼지 못할 테지만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대부분 여성들은 그런 현실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괜히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천장이 부딪히기까지 얼마든지 남성을 추월해 앞서 달려갈 수 있지만 천장과 마주하는 순간 현실의 절망과 좌절을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현재 권력관계에서 여성은 약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강자는 전체 여성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의 여성주의자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수많은 혜택을 누리며 남들과 다른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극히 일부의 여성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과대표되고 말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닌 기득권 남성에 기대어 휘두르는 그 권력으로 인해 정작 여전히 버거운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더 많은 여성들의 처지가 가려지고 만 것이다. 더 목소리도 크게 낼 수 있는 기득권 남성들과 결탁한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정작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처지가 잊혀지고 만다.

 

박원순 전시장 논란 당시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정작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어느 여성 방송인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작 남성들인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서 같은 여성인 검사들을 징계하려 시도한 예 또한 그런 일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미 앞서서 자신이 겪은 부당한 성폭력을 폭로한 당사자를 자신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며 폄훼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백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서 같은 여성인 피해자를 억압하는 그 어디에 여성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에 남성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마저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할 수 있는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여전한 현실의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은 배제한 채 그런 여성들마저 억압하는 권력으로써 여성주의는 여성을 대표하게 된다. 대부분 여성들의 처지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한데 그들과 상관없이 권력을 앞세운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여성이 권력으로 인식되고 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주의를 비판하는 남성이란 약자의 저항을 억압하려는 기득권의 연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남성주의라는 여성주의에 대한 저항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같은 남성조차 그런 것은 꼴사나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뀌었다. 소수 여성주의자들의 전횡이 여성을 권력으로, 기득권으로 여기게 만들며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기득권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여기게 만들고 말았다. 여성이란 이미 강자이고 기득권이기에 그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정당하다. 그래서 과연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 것인가? 

 

이를테면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내겠다고 동맹인 미국을 등에 업고 점령지에서 횡포를 부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열강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열강을 등에 업고 횡포를 부리다가 정작 열강이 물러나고 나서는 약자로 전락해서 억압과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한 소수민족의 예일 것이다. 약자라고 연민을 보이기에는 이미 그들 스스로가 강자로써 보인 모습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동정해야 할 선량한 약자일 것인가. 여성주의자들이 저리 강자로써 전횡을 일삼는데 여성이란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사회적 약자인 것일까.

 

전략의 실패다. 여성주의가 아닌 진정 여성을 위하려 했다면 벌써부터 칼을 빼들어서는 안되었었다. 남성들의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억압하려 해서는 안되었었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공격은 그나마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대부분 남성들을 돌려세운 최악의 한 수였었다.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외의 어떤 주장도, 심지어 침묵마저도 여성주의는 용납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이미 권력이다. 여성은 이미 권력이다. 이미 기득권이 되어 버린 여성을 위한 여성주의란 것이 보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GS25나 박나래 등을 향한 남성들의 공격이 전과 달리 더 큰 호응을 받으며 힘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이다. 더이상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남성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강자들인 것이다. 그런 강자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박나래는 그저 한 개인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배후에 있는 여성은, 여성주의는 동정도 연민도 이해도 동의도 필요없는 그저 강자이고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박나래를 봐주는 것은 그런 기득권에 굴복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냐면 결국 섣부르게 손에 넣은 권력을 휘두르는데 급급했던 여성주의자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대부분 여성들과 달리 자신들만 기득권과 결탁하여 편입되었는데 그를 과시하느라 대부분 여성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여성주의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런 일반의 여성들마저 함께 싸잡히고 만다. 정작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이 누리는 그런 모든 것들과 전혀 상관없는 여성들마저 그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너무 성급했다. 조금 더 오래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 때까지 여성을 약자로써 인식시켰어야 했다. 지금 여성이 사회적으로 약자인가 묻는다면 아마 여성 가운데서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마저 거의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약자로서 관용을 베풀기에는 이미 그들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 있다. 그렇게 여겨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최소한 남성들의 행동이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는 약자의 저항으로 비쳐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미 강자는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의 공적이다. 대단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바로 민주주의다. 당장 미국만 해도 그동안 대통령 지낸 인간들 모두 뒤져보면 의외로 멀쩡한 인간이 몇 되지 않는다. 20세기 이전에는 더 처참했고, 20세기 이후로도 진짜 별 한심한 인간들이 넘쳐났다.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란 탁월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다수의 체제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닌 특별한 역정을 거치고 대중의 선택을 받아 특별한 존재가 된 이들이란 것이다. 인간적으로 탁월해서가 아닌 그냥 수많은 구성원 가운데 하필 당시 가장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리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학습해 간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때로 잠시 멈춰서고, 때로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때로 엉뚱한 길로 갔다가, 어느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게 역사다. 이명박근혜의 존재가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는 이유인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학습했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 이후로는 국민의힘 정부일 것인가. 국민의힘이 그만한 가치를 보여줄 때만. 어째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동안에도 대선후보로서 이재명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는 것일까. 4년 전 나는 이재명은 절대 대통령감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송영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혜숙 백혜련 두 최고위원은 당장 다른 당으로 내쫓고 싶다. 그런데도 어째서 조응천이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가.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응천을 찝어 영입했는가 최근 발언으로 알겠다. 다만 성향이 다를 뿐이다. 인간은 신의가 있고 성실하기도 하다. 진심으로 검찰을 생각한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생각해서 단호하게 윤석열을 비판할 수 있다. 이런저런 개놈쌍놈버러지똥덩어리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탁월한 소수가 한 번에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인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 민주당은 잘하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180석을 가졌다고 자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민주적 절차에 의거 큰 혼란없이,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하지 않으면서 하나씩 차근히 처리해 왔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까지 완수하면 민주당은 해야 할 모든 걸 다한 것이다. 선거에서 졌으니 이런 원인도 찾아보고 저런 원인도 찾아보고 어찌되었거나 자신을 낮추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기 여기는 국민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나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원인을 찾고 대처했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금 민주당은 오만하지 않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비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선거 한 번 이겼다고 국민의힘은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낙연이 한때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손꼽히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편하고 때로 화가 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모든 당원과 지지자의 마음이 나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쌍욕하며 싸우는 것이다. 똥파리네 뭐네 서로 모욕하며 부딪히는 것이다. 그래도 당대표가 되었으니 일단 송영길을 믿어보고,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가 있다면 기대를 가지고 지지하기도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동지적 연대다. 민주당의 진정한 승리를 바란다면. 민주당의 이름으로 민주당의 정책을 계속 밀고가려 한다면.

 

그래서 한 편으로 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바라는 민주당의 정체와 지향과 정책들이 있다. 그렇게 욕하며 싸우는 사이 그래도 조금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게 또한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이니. 내가 자칭진보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다. 지금은 거의 유일한 진리일 것이다.

이런 게 전쟁이다. 약자를 상대로 집단의 힘을 빌리는 건 단지 린치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이 밉다고 일본인 여자아이를 건장한 남자들이 납치해서 폭행하면 그것도 항일운동이 되는 것인가. 일본이 패망했다고 일본인들을 잡아다 폭행하고 그 재산까지 빼앗는다면 그마저 독립운동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인가. 진짜 적은 여성주의자이며 그들과 결탁한 기득권인 것이다. 바로 GS25와 같은.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GS25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남성들이 결집해서 굴복시키고 여성주의로부터 이탈시킨다. 그 자체로 남성의 분노와 힘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남성들이 얼마나 어째서 여성주의에 분노하고 있는가. 여성주의를 용납하지 못하는가. 이미 대부분 남성들에게 여성주의란 메갈이고 워마드이며 일베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내 여성주의 세력이 엉뚱한 짓거리로 그런 분위기를 흐트리려 하는 것이다. 도대체 민주당 초선들이 만났다는 2030은 어디 사는 누구들인 것일까.

 

여성주의자들의 난장을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 아직 여성주의란 약자의 저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젊은 남성들의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박근혜를 지지하며 명분과 정당성을 잃은 여성주의자들이 현정부 들어서 여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실추된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가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진선미나 윤인순이 그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아무튼 덕분에 이번 정부 들어서 여성주의는 약자의 저항이 아닌 그 자체로 폭력이고 권력이 되었다.

 

하다못해 전두환도 침묵 자체를 처벌하지는 못했었다. 박정희가 자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일일이 색출해서 처벌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인민재판도 아니고 침묵마저 부정하며 명백한 성추행 피해자조차 침묵을 이유르 그 진실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보게 된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한 여성방송인은 직장을 잃었고, 여성검사를 징계하려는 시도마저 있었다. 자기들과 다른 어떤 주장도, 심지어 침묵조차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여성주의를 약자의 저항이라며 언제까지 관용하며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남성들의 주장이야 말로 대변해주는 이 하나 없는 약자들의 외로운 외침일 것이다. 김병기와 김남국이 편들어주는 소리 좀 했다고 당내에서까지 비난을 듣는 중이다. 조금 과격하면 또 어떤가. 조금 지나치면 또 어떠한가. 어쩌면 처음으로 다수의 남성들이 힘을 모아 여성주의에 점령된 대기업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박나래도 그런 일환이다. 여성들이 했던 그대로를 돌려주겠다. 모 유튜버의 경우와 다르다. 박나래는 직접 당사자이며 그를 둘러싼 논쟁은 또 하나 명분을 건 전쟁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성들도 당사자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묻겠다. 

 

웃기는 것이다. 그저 침묵했다는 이유만으로 2차가해 운운하던 버러지 새끼들이 직접 당사자임에도 다양성과 관용을 주장한다. 사람새끼 대가리에서 나올 개소리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관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약자의 입장에서 더 관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약자의 관용은 단지 비겁이고 굴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불관용이 가져온 또다른 반대편에서의 불관용이다. 불관용에 관용은 없다. 그래서 남성들의 불관용은 용인된다. 여성에게만 관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관용이란 존엄에 대한 존중이다.

 

민주당도 생각을 잘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꾸 조국을 걸고 넘어지는 이유를 안다. 여성주의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한명숙에 대한 재심에도 나는 부정적이다. 한명숙이 민주당을 여성주의 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직 여성이 약자이던 시절에는 그럴 수 있다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과연 아직도 여성은 약자인가. 오로지 폭력과 억압으로만 남성들에 여성주의를 강제할 수 있는 그들이 진정 약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을 넘었다. 도가 너무 지나쳤다. 그 반작용이다. 그리고 정당한 권리의 주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써 그들 또한 하나의 주체인 것이다. 교육과 계도와 억압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남성들과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더구나 자신들 것도 아닌 남성의 권력에 기대어 폭력과 강제로써만 그 모든 것을 이루려 했다. 반발은 당연하다. 저항은 권리다. 시작은 gs25부터. 전쟁은 시작되었다.

작년 박원순 전시장의 부고 당시 정의당을 비롯한 자칭진보와 여성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침묵조차 용납하지 않았었다.표현과 양심의 자유의 마지막 보루는 침묵할 자유다. 심지어 수사받는 피의자조차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거부할 수 있는 묵비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자칭 진보와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침묵하는 것도 2차가해라며 실제 현실의 불이익으로 협박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여성 방송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입으로 표현의 자유를 떠든다?

말 잘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독재다. 침묵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독재는 가장 악랄한 압재다. 어째서 남성들은 지금의 여성주의에 분노하는가. 정의당은 그 입을 닥쳐야 한다는 이유다.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세대를 부정한 그 주둥이로 독재를 말한다? 역겨운 것이다. 용산참사보다 월세 올려받은 게 더 분노할 일이라던 정의당인 것이다. 말하는 것만으로 입이 썩는 것 같다. 똥버러지는 전두환 똥이나 파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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