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메갈리아를 응징하기 위해 뭉친 여러 커뮤니티에서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진정한 페미니즘'이다. 과연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인가. 그렇다면 페미니즘이란 자신들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인가의 여부를 자신들이 판단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평가 역시 자신들이 결정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이번 메갈리아 사태에서 한결같이 메갈리아 편에 서려는 이유다.


여성들 자신을 위한 페미니즘이다. 여성들 자신에 의해 여성들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결권은자존과도 이어진다. 내가 결정한다. 내가 판단한다. 내가 책임진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 대신 정의하고 판단하고 강요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은 이런 것이다. 자신들은 이런 것들만을 페미니즘으로 인정한다. 그 밖의 것들은 페미니즘으로 인정할 수 없다. 먼저 자신들을 납득시키라. 자신들의 동의를 구하라.


간단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는데 조선총독부에서 독립운동의 방향이나 수단들을 정의한다.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일본제국의 법과 제도 안에서 독립운동은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인 자신들이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인 자신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취한다면 그때는 일본인 자신들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의 편에 서 줄 것이다. 그래서 과연 독립운동가들인 조선총독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독립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의 노선이나 방법이 정당하며 효과적인가의 여부는 자신들끼리 토론하고 논쟁하며 결정할 문제다. 무엇이 페미니즘인가는 자신들이 결정한다. 그에 대한 판단이나 행동 또한 자신들이 알아서 결정한다. 너희들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괜히 남성이 여성주의자의 논쟁에 끼어들어봐야 좋은 꼴 못 보는 이유다. 타인이다. 어떻게 해도 몇 다리 건너 남이다. 얼마나 여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가. 여성들 자신을 위한 토론에 남성들이 어째서 자신들의 시각을 강요하며 끼어들려 하는가.


메갈리아를 응징해도 여성주의자들 자신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리하면 되는 것이다. 전혀 남인, 심지어 대상이기도 한 남성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밀리게 되면 남성들이 여성운동의 방향과 방법을 결정하게 된다. 남성들이 동의하는 범위 안에서만 여성운동을 할 수 있다. 여성운동이 여성운동에 비판적인 남성에 의해 종속된다. 존재의 이유 자체를 부정당할 수 있다. 전쟁이다. 죽느냐 사느냐.


어째서 뻔히 보이는 여러 문제들에도 여성주의자들과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진보정당과 정치인들이 메갈리아의 편에서 네티즌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최소한 일베에 대해서 반대편의 네티즌들이 진정한 보수는 어떤 것이라며 그들을 정의하거나 강제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단지 일베라고 하는 커뮤니티의 평소 행동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보수 자체가 타겟은 아니었다. 보수주의자들도 그래서 일베를 쉽게 포기하고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메갈리아 사태에는 여성주의가 걸려 있다. 메갈리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여성주의적 성향에 동의하는 다수 개인들이 이 일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 발단이 되었던 성우 역시 메갈리아의 주장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일부 주장들에 공감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타겟이 잘못되었다. 처음부터 행동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았어야지 여성주의까지 전선을 넓혀서는 안되었다.


말 그대로 메갈리아사태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여성주의와 비여성주의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메갈리아라 할지라도 여성주의자로서 여성주의를 지키고 싶은 입장과 여성주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메갈리아를 이유로 여성주의를 문제삼으려는 이들의 싸움이 된 것이다.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말한다. 그런 것은 진정한 여성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여성주의는 이런 것이다. 진정한 여성주의자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 판단도 결정도 행동도 그들이 아닌 자신들이 직접 한다.


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너희들이 멋대로 단정짓고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 내버려두면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갈등과 경쟁을 통해 결론지어졌을 문제였다. 여성주의를 길들이려 한다. 나 역시 이번 사태를 보며 느끼는 것이다. 여성과 여성주의에 부정적이던 이들 상당수가 메갈리아 사태에 편승하여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고 있다. 집단이 여성주의를 강제하려 한다.


서로 보는 것이 다른 것이다. 비여성주의자들에게는 여성주의가 대상이다. 여성주의자들에게는 여성주의의 주체는 바로 자신들이다. 굳이 여성주의와 여성주의자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일방적인 믿음과 결정만을 강요하려 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여성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다. 자신들의 몫이다. 알아서 한다. 누가 간섭하지 않더라도. 끝없이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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