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적이 없었다.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가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하나가 되어 뭉쳤다. 심지어 일베마저 그 대열에 함께한다. 그야말로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는 지구연합군이다. 메갈리아라고 하는 악을 아예 뿌리째 뽑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보면 인터넷 커뮤니티 가운데 메갈리아만 과연 특별하게 여겨야 할 정도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이트인가는 회의적이다. 어디나 극단적인 사람들은 있고, 더구나 커뮤니티 자체가 극단적이다 보면 그 극단이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적잖이 있어왔었다. 다만 차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그같은 커뮤니티들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일 텐데, 그래서 거의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졌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어째서 유독 그 가운데 메갈리아만 인터넷 전체가 나서야 할 만큼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는가?


아마 그래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나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진보지식인들, 혹은 작가들이 메갈리아의 편에 서서 대중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기도 할 터다. 남혐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부분의 문제가 많은 사이트들은 거의가 남성이 주류인 남초커뮤니티였던 반면 메갈리아만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였던 것이다. 감히 여성이 남성을 혐오한다? 여성주의자들의 이상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성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단호한 자신감이야 말로 사회의 룰을 만드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오만에 가까웠다. 자기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여성과 여성주의자들의 바람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반란진압이라 할 수 있다. 중세유럽에 봉건영주들이 서로 칼들고 창들고 열심히 싸우다가도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하면 하나가 되어 진압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봉건영주들은 모두가 귀족이다. 지배신분이다. 그리고 농민들은 그같은 귀족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피지배신분이었다. 그것이야 말로 당시 시대의 정의이자 질서이자 가치였다. 그것을 부정한다. 적대하는 영주와의 싸움이야 이해에 따른 것이라 하겠지만 신분이라고 하는 신성한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응징하는 것은 시대의 정의를 따르는 것이었다. 여성들에게 그 주제를 알도록 한다. 여성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알게 한다. 자신들이 주류이고 주체임을 모두에게 확신시켜준다.


그냥 개별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지나가면 되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 큰 이슈도 아니었다. 넥슨에서 메갈리아를 한다는 이유로 성우 하나를 바꿨다. 단지 메갈리아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어떤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메갈리아의 주장 가운데 공감하는 것들을 퍼나르고,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티셔츠를 사서 입었다. 그리고 그같은 넥슨의 결정에 대한 언제나와 같은 논쟁이 불거지게 되었다. 누가 옳네, 누가 더 잘못했네, 그런데 그것이 그만 메갈리아와 남혐과 여성주의의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성우를 옹호하고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모두는 적이다. 사회의 악이다. 십자군이다. 마땅히 자신들은 그 악을 응징해야 한다.


사실은 심심한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좋고 특히 네티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청년들은 여러가지로 안좋은 일들이 누적되어 있었다. 분노를 발산할 대상이 필요했다. 항상 그 먹이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타진요부터 적우, 그리고 얼마전에는 설현이 그 대상이 되었다. 물어뜯고, 잡아 짓이기고, 그렇게 끝내 무릎꿇려 굴복시키고 만다. 자신들의 승리를 확인한다. 승자의 우월한 위치를 즐기려 한다. 그런데 하필 여성들이 여성주의라는 불편한 근거를 가지고 남성들을 비판하고 나서고 있었다. 그 가운데 상당히 부적절한 것들이 있었다. 참고로 미러링이라 하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한 편으로 남성들이 여성을 향해 일상적으로 보이는 모습 가운데 하나였다. 아니라 말하면 섭섭하다. 일베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 것이 아니다. 의외로 일베는 인터넷에서 그 뿌리가 아주 깊다.


그것이 일견 마녀사냥으로까지 보이는 메갈사냥으로 번지고 만 이번 메갈리아 사태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메갈사냥에서 보듯 인터넷에서 저들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 수에 있어서도 힘에 있어서도 현실에서보다 더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자신들끼리 화력을 모았다. 그리고 가볍게 응징해 주었다.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토벌은 계속된다. 지리멸렬하여 흩어졌어도 잔적까지 모두 뿌리를 뽑는다. 즐기고 있다. 이처럼 쉽고 승리가 확실한 싸움은 항상 모두에게 최상의 유희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토벌에 가까운 소란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이유다.


만일 메갈리아의 구성원들이 여성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앞세우는 것이 여성주의가 아니었다면?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이 평소 여성과 여성주의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면? 메갈리아의 남혐을 비난하면서 슬금슬금 메갈리아를 타겟으로 여혐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메갈이아라는 절대악이 그같은 부적절한 사고와 발언들까지 정당화시켜준다.


그냥 토벌인 것이다. 힘의 과시인 것이다. 그리고 메갈리아를 비롯한 그를 옹호하던 이들마저 모두 지리멸렬 흩어졌다. 그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인터넷에는 쓰레기도 많고 메갈리아 역시 그런 쓰레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일베마저 손을 잡고 함께 행동한다. 일베는 그나마 이해가 간다. 메갈리아가 정확히 미러링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 일베였을 테니까. 입장이 같다.


아무튼 보기 지겹다. 당신들 옳은 것 안다. 당신들 강한 것도 안다. 바보가 되어야지 미친 짓을 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정의인가. 어디까지가 정의인가. 멈출 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이성이다. 지겹다. 악의는, 서로에 대한 증오는 그렇게 재생산된다. 날이 만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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