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같은 경우 여성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이나 발언에 대해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방향을 잃고 극단으로 치닫던 90년대 학생운동의 일단을 맛본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래서 때로 극단적이 되고는 하기에 다른 사람이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고 그 자체로 문제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 현실이 불만스럽고 화가 난다면 표현의 정도야 그에 비례해서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과연 주장만 하고 말 것인가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낼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같은 주장과 행동들이 얼마나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고보면 과거 미국에도 그런 극단주의적인 집단이 있었다. 어차피 백인중심의 미국사회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면서 흑인만의 독자노선을 걸을 것을 주장하던 흑인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나마 말콤엑스마저 온건하게 여겨질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던 그들은 마침내 블랙팬서라는 무력투쟁을 천명한 단체까지 만들기에 이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극단적인 주장을 앞세운 여성주의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고작해야 미국사회에서도 차별받는 흑인 몇몇이 총으로 무장하고 덤벼봐야 미국은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백인이 바로 그 막강한 힘을 손에 틀어쥐고 있다. 지금은 블랙팬서라는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인정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은 기득권이다. 어떻게 포장하고 에둘러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려는가? 그런 남성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당시 흑인운동가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다. 시위를 통해 아무리 극단적인 주장을 해봤자 그것은 결국 기득권인 남성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들어달라는 하소연에 지나지 않는다. 기득권인 남성들의 관용과 아량에 기대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 사정하는 것이다. 진짜 남성을 적으로 여기고 실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전쟁을 해야 한다. 스스로 총을 들고 남성위주의 대한민국 사회와 실력으로 부딪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정도 각오가 되었을 때 과격한 주장도 의미가 있다. 과거 학생운동의 황혼기에도 학생운동가들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가운데서도 기꺼이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가 정부와 맞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연 지금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솔직히 비웃고 있다. 그래봐야 남성들에게 들어달라 사정하는 것 아닌가. 이미 이 사회의 기득권을 틀어쥔 남성들에게 들어달라 알아달라 하소연하는 것 아닌가. 남성들의 관용과 아량에 기대서 제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 아니던가. 그것 말고 지금 하는 시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남성들이 만든 제도 아래에서 남성들이 만든 질서 위에 이루어지는 시위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기득권 남성들의 배려에 기대서 응석부리듯 의미없는 과격한 주장만을 일삼는다. 어린아이 떼쓰는 것도 아니고 그런 행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남성들과 달리 그들의 시위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럴 가치조차 없다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정 남성중심의 대한민국 사회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면 최소한 손에 화염병이든 죽창이든 들고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 남성들의 관용과 아량에 기대 이루어지는 시위다. 여성운동가들조차 그같은 남성이 만든 제도와 질서 위에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갖는다. 그러면 선택해야 한다. 그같은 기존의 제도와 질서, 즉 기득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그마저 거부하고 차라리 혁명과 전쟁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 용기는 솔직히 없다. 어차피 남성들이 자기들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것이 자신들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정도라면 그냥 무시할 뿐이다.


선택해야 한다. 전쟁인가? 대화인가? 전쟁은 무섭고 대화는 시시하고 그래서 하는 것이 바로 투쟁놀음이다. 실제 싸우는 것도 아니면서 싸우는 척만 한다. 달려드는 척 어차피 상대하지 않을 것을 알고 연기를 한다.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은 모든 말은 결국 장난이다.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은 단지 장난에 지나지 않는가. 그런 시위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고작 그런 시위로 얼마나 그같은 과격한 주장들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가. 깨닫는 것이 없다면 그냥 그 정도가 한계인 것이다. 웃으며 지켜본다. 참 한가한 사람들이 많다. 경멸조차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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