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이 공인인 이유는 개인과 구별되는 공적인 영역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인 공적인 역할과 책임, 그리고 기대가 개인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두환과 노태우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고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고문한 호로쌍놈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을 지지하는 영남의 여론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예우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정치란 것이다. 정치는 선악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타협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김종필이 쿠데타의 주역이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잘못이건 간에 그 김종필을 지지해 온 수많은 국민들이 존재한다. 정치인으로서는 더이상 지지하지 않아도 그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느끼는 국민 역시 대한민국에는 적지 않다. 대통령이란 그런 국민들까지도 모두 아울러야 하는 자리다. 다만 그렇다고 대통령으로서 그 빈소에 조문까지 가지는 않는다. 선을 긋는 것이다. 정치인 김종필에 대한 예우는 한때 그를 지지했고 혹은 지금도 지지하고 있으며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있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개인이 선악을 나누는 것은 쉽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너무나 쉽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국 선을 긋고 편을 갈라 끝없이 대립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에는 선악이 없다. 아니 모든 공적인 행위에는 선악이란 있을 수 없다. 공산주의는 나쁘지만 파시스트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기꺼이 손을 잡아야 한다. 독재는 분명 나쁜 것이지만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용해야만 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최악의 세습왕조인 북한과도 얼마든지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국민의 갈등과 대립을 줄이고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김종필이란 개인에 대한 판단도 뒤로 미룰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훈장을 다시 몰수하든 어쩌든 지금은 김종필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DJP연합을 통해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 김종필 개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역사적 판단이 아닌 김종필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정치인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인 것이다. 물론 빈소에 조문하지 않는 것도 그같은 정치적 판단의 일환이다. 논란은 부질없다. 필요하다면 박정희 묘소에도 참배할 수 있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서 참배한 바 있었다. 개인으로야 당연히 김종필은 빌어먹을 자식이라 생각하지만.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판단하고, 시민은 시민으로서 판단하고. 하긴 이같은 논란이야 말로 사회가 건전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시민은 시민의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논쟁하고 투쟁하고 갈등하며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은 이것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적인 평가는 결국 시민 자신이 내리게 될 것이다. 논쟁은 필요하다. 그냥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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